권력의 입맛에 맞춰 언론에 재갈을 물릴 수도 있는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두고 사회적 갈등이 지속되는 가운데 문재인 대통령이 여야가 합의를 이룬 뒤에야 처음으로 입을 뗐다. 지난 6월 23일 강경파인 김용민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이 개정안의 뼈대가 된 법안을 대표 발의한 지 두 달 만이다. 다만 문 대통령은 첫 입장을 내는 과정에서도 ‘언론 자유’와 ‘피해자 보호’를 모두 강조하며 모호한 태도를 유지했다.
박경미 청와대 대변인은 31일 춘추관 브리핑을 통해 “국회에서 여야가 언론중재법 개정안에 대한 추가적인 검토를 위해 숙성의 시간을 갖기로 한 것을 환영한다”는 문 대통령의 말을 전했다. 문 대통령이 언론법 개정안을 공식적으로 언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청와대는 그간 관련 입장을 묻는 기자들에 “국회에서 논의할 사안”이라는 말만 수 차례 반복한 바 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언론 자유는 민주주의의 기둥이고 국민의 알 권리와 함께 특별히 보호받아야 한다”며 “관련 법률이나 제도는 남용의 우려가 없도록 면밀히 검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도 “악의적인 허위 보도나 가짜 뉴스에 의한 피해자의 보호도 매우 중요하다”며 “신속하게 잘못된 보도를 바로잡고 정신적·물질적·사회적 피해로부터 완전하게 회복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언론의 각별한 자정 노력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여당의 언론중재법 개정안의 취지에 대해 공감하는 듯한 발언도 한 것이다.
일각에서는 문 대통령의 이 같은 양비론적 입장을 두고 180석 의석으로 무엇이든 강행하라는 열성 지지자들과 4·7 재보궐선거 참패에서 확인된 중도층 민심을 모두 눈치 본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왔다. 이철희 청와대 정무수석은 전날 저녁 언론중재법 개정안 논의가 한창이던 국회를 직접 방문하기도 했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문 대통령이 해외 언론의 여러 비판적 반응에는 특별한 언급을 하지 않았다”며 “언론의 자유와 피해자 보호 모두 중요하기 때문에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협의 과정에 대한 입장을 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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