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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4·7 참패 잊지 않았다면 꼼수 접고 언론재갈법 폐기해야


정권 비판 보도에 징벌을 내리는 악법으로 지목돼 국내외 언론 단체와 전문가들이 일제히 반대해온 ‘언론재갈법’ 강행 처리에 일단 제동이 걸렸다. 여야 원내대표는 31일 언론중재법 개정안의 국회 본회의 상정을 9월 27일로 미루고 8인 협의체를 꾸려 논의한다는 내용의 합의서에 서명했다. 윤호중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처리가 한 달 남짓 지연되지만 협의 기구를 통해 원만하게 토론하겠다”며 법안 통과가 기정사실인 양 말했다. 반면 김기현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표현의 자유와 국민의 알 권리는 어떤 경우에도 보장해야 한다”며 법안 처리 저지 쪽에 무게를 실었다.

이날 합의는 여당의 꼼수일 가능성이 크다. 시간을 벌면서 국내외 비판이 수그러들기를 기다렸다가 ‘징벌적 손해배상’과 ‘고의·중과실 추정’ 관련 독소 조항 일부를 수정하는 방식으로 언론의 비판 기능에 재갈을 물리려 할 것이 뻔하다. 송영길 민주당 대표는 당내에서 “언론중재법을 포함한 모든 결정은 정권 재창출에 도움이 되는지 안 되는지로 판단할 것”이라고 말해 정권에 비판적인 보도를 막으려는 의도를 드러냈다. 여당의 한 강경파 의원은 당장 법안 통과에 성공하지 못했음을 개탄하면서 페이스북에 “모든 직을 걸고 꼭 제대로 더 세게 통과시키겠다”고 적으며 국회의장을 겨냥해 쌍욕을 연상시키는 ‘GSGG’라는 표현을 덧붙였다. 여당 인사들의 언행에서 ‘소나기(여론 악화)’를 일단 피한 뒤 양보하는 척하면서 핵심 독소 조항을 밀어붙이려는 위장 전술의 증좌가 드러나고 있다.

여당의 법안 밀어붙이기에 침묵하던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뒤늦게 “여야가 숙성의 시간을 갖기로 한 것을 환영한다”면서 법 남용 우려가 없어야 한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말로만 ‘언론 자유’를 외칠 게 아니라 언론재갈법 철회를 주문하는 행동을 실제로 보여줘야 한다. 여야는 협의 과정에서 ‘최대 5배의 징벌적 손해배상’과 자의적인 ‘고의·중과실 추정’ 등의 조항이 있는 한 위헌적 악법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분명히 깨달아야 한다. 비판 기사를 ‘가짜 뉴스’라고 주장하면서 기사 열람 차단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한 조항도 삭제돼야 한다. 미국기자협회 등은 한국의 언론 통제 입법이 강행될 경우 해외의 권위주의 정권에 언론 탄압의 근거를 제공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유인태 전 국회 사무총장은 여당 지도부에 4·7 재보선 때 여당이 참패한 교훈을 일깨우면서 “(대선일인) 내년 3월 9일이 같은 밤이 안 되려면 4월 7일을 잊지 말라”며 법안 강행을 만류했다. 아무리 ‘동굴의 우상’에 갇힌 여당이라도 원로들의 고언을 귀담아듣기 바란다. 미국은 수정 헌법 제1조에 ‘의회는 언론의 자유를 제약하는 어떠한 법률도 만들 수 없다’고 못 박았다. 언론이 권력을 감시하는 게 아니라 권력이 언론을 감시하면 신(新)독재가 된다.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괴물법이 탄생해서야 되겠는가. 거대 여당은 ‘다수의 폭정’을 이쯤에서 접고 언론재갈법을 즉각 폐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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