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정권 수립 73주년을 맞은 9일 최신 전략무기를 선보이는 대신 민간 병력 중심의 다소 축소된 심야 열병식을 개최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열병식에 참석했으나 이날 대미·대남 메시지는 나오지 않았다.
북한이 한미연합군사훈련 이후 로키(low-key) 대응을 이어가자 대북 전문가들은 “남측 대선 국면을 앞두고 북한이 긴장감을 조성하지 않는 선에서 군사력을 과시하고 내부 결속에 나선 것”이라고 평가했다.
9일 조선중앙통신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창건 73돌 경축 민간 및 안전무력열병식이 수도 평양의 김일성광장에서 성대히 거행됐다”며 “0시 환영곡이 울리는 가운데 김정은 동지께서 열병식 광장 주석단에 나오셨다”고 보도했다. 이번 열병식은 ‘민간 및 안전무력열병식’이라는 명칭에 맞게 북한 정규군 대신 우리의 예비군에 해당하는 ‘노동적위군’과 경찰 병력에 해당하는 ‘사회안전무력’이 동원됐다. 이는 지난해 10월과 올해 1월 열병식에 비해 축소된 병력과 장비 규모로 시간도 1시간가량만 진행됐다. 아울러 북한이 사실상 핵무력을 거의 완성한 단계로 알려졌지만 이날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등 최신 전략무기는 등장하지 않았다. 청와대는 이와 관련해 “한미 정보 당국 간 긴밀한 공조하에 정밀하게 분석하고 있다”고 밝혔다.
북한은 이번 열병식이 한미연합군사훈련 이후 열린 큰 행사임에도 불구하고 대외 메시지 대신 내부 결속에 집중했다. 김 위원장은 회색 양복 차림으로 주석단에 올랐지만 연설을 하지 않았다. 대신 리일환 당 비서가 “전체 인민이 한 손에는 총을 잡고 다른 한 손에는 마치와 낫과 붓을 잡고 조국수호와 사회주의 건설에서 영웅성을 발휘해왔다”며 코로나19·제재 장기화 등의 내부 위기를 극복하자는 메시지를 강조했다. 박원곤 이화여대 교수는 “이번 열병식은 코로나19·제재 장기화 등으로 지친 북한 주민들을 평양으로 불러 사기를 진작하기 위한 축제 형식으로 진행됐다”며 “그만큼 북한이 당면한 내부 상황이 심각하다는 신호”라고 해석했다.
일각에서는 북한이 내년 3월 대선 전까지 한반도 내 긴장감을 조성하지 않고 한미 동향을 주시하는 전략에 돌입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유호열 고려대 교수는 “우리나라 차기 대권을 주목하는 상황에서 굳이 전략무기 카드를 꺼내 긴장감을 끌어올리는 것은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한 것”이라며 “군사력은 과시하되 위협으로 비쳐지지 않을 수준의 민간 병력을 선보였다”고 분석했다. 노동적위군 등은 군 무력의 보조 역량이자 비정규 준군사 조직이기 때문이다. 유 교수는 이어 “미국이 계속 대화를 요구하는 상황에서 갑자기 전략무기로 도발할 명분도 약하다”고 부연했다. 앞서 성 김 미 대북특별대표는 한미연합훈련 기간인 지난달 23일 방한해 “미국은 북한에 적대적 의도를 가지고 있지 않다”며 대화를 재차 촉구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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