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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休]'용이 뜯어먹은' 해골바위서 '인생샷'···BTS 흔적따라 위봉폭포서 '인증샷'

■ 여행지도 달라진 전북 완주

완주 위봉폭포를 찾은 여행객들이 폭포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상하 2단으로 나뉜 위봉폭포는 하단 폭포가 더 아름답다. 위봉폭포는 최근 국가지정문화재 명승으로 지정됐다.




계절이 바뀌면 풍경도 달라지듯 2년 가까이 일상이 멈춰선 동안 대한민국 여행 지도도 하루가 다르게 바뀌어가고 있다. 발길이 뜸했던 오래된 여행지가 새롭게 주목 받기도 하고, 유명인이 다녀가면서 인기 관광지로 떠오르거나 여행지로의 매력에 역사적 가치가 더해져 재조명되는 등 다양한 경로로 여행지 재발견이 이뤄지고 있다. 코로나19 이후 바뀐 여행 지도를 따라 전북 완주에 다녀왔다. ‘해골바위’부터 ‘위봉폭포 일원’ ‘초남이성지’까지 한 번쯤 다녀올 만한 곳들이다.

등산객들이 기차산에서 주변 산세를 감상하고 있다. 장군봉이라 불리던 기차산은 10여 년 전 처음 이름이 지어졌다. 등산객들이 딛고 올라 선 바위는 기차산의 명물 해골바위다.


-이름 없던 기차산 '해골바위'로 명소

앞면에만 크고작은 10여개 구멍 송송

등산로따라 야생버섯도 지천에 깔려

완주 최고의 명산을 꼽으라면 맨 처음이 대둔산일 것이고, 다음으로 모악산·운장산 정도를 떠올리게 된다. 하지만 요즘 가장 인기 있는 산이라면 단연 기차산(738m)이 첫손에 꼽힌다. 기차산은 마을과 연결되는 산 진입로가 수십 년간 군사 지역으로 묶여 있어 일반인의 발길이 뜸했던 곳인데 언제부터인가 등산객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며 알려지기 시작했다. ‘기차산’이라 불리기 시작한 것도 불과 십여 년 전의 일이다. 등산객들이 정상 암벽을 오르기 위해 밧줄에 매달려 이동하는 모습이 멀리서 보면 마치 기차 같다고 해서 이름 붙여졌다. 그 전까지는 최고봉을 ‘장군봉’이라 불렀을 뿐 제대로 된 산 이름도 없었다고 한다.

기차산 등산객들이 돌다리를 밟으며 계곡을 건너고 있다. 특전사 산악 훈련장으로 사용하고 있는 기차산은 등산객들에게도 잘 알려지지 않았다.


기차산이 유명해진 것은 장군봉 옆 해골바위 덕분이다. 동네 사람들에게 ‘용 뜯어 먹은 바우’라 불려온 바위의 구멍이 마치 해골 같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해골바위 등반은 동상면 신월리 구수마을에서 시작한다. 마지막 인가인 사과 과수원을 지나면 본격적인 등산로가 나온다. 첫 번째 갈림길에서 ‘해골바위’ 방향으로 진입하면 계곡을 따라 완만한 경사로가 한동안 이어지는데, 산속에는 다양한 모양을 한 바위와 함께 야생 버섯이 지천이다. 길이 점점 가팔라지면 정상에 가까워졌다는 의미다. 마지막 구간은 밧줄에 거의 매달리듯 암벽을 타야 할 정도다.

등산객들이 기념사진을 찍기 위해 해골바위 입 부분 구멍으로 들어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 해골바위에는 구멍이 10여 개 있는데 모두 풍화작용에 의해 자연적으로 생겨난 것이다.


정상에 도착하면 집채만 한 크기의 해골바위가 길을 막고 서 있다. 해골바위에는 성인 두 명이 한 번에 들어갈 수 있는 큰 것부터 손가락 굵기의 작은 것까지 10여 개의 크고 작은 구멍이 있다. 바위 표면에 생긴 구멍은 풍화작용에 의한 것으로 진안 마이산 암마이봉과 유사한 형태다. 한쪽으로만 바람이 부는 것도 아닐 텐데 신기하게도 바위 앞면을 제외하고 뒷면이나 측면에는 구멍이 없다. 해골바위 구멍으로 들어가 눕거나 가부좌를 틀고 앉아 사진을 찍는 등산객들의 모습이 눈에 띈다.

기차산은 등산객보다 버섯 채취객들에게 더 유명하다. 산행 도중 주변에서 다양한 야생 버섯을 손쉽게 찾아볼 수 있다. 사진 왼쪽부터 노란대망그물버섯·민달걀버섯·흰가시광대버섯·가지외대버섯.


구수마을 입구에서 해골바위까지는 왕복 3시간(2.6㎞) 거리다. 거리상으로는 가벼운 트레킹 코스 수준이지만 중간에 갈림길이 여러 개 있고, 정상에 가까울수록 미끄러운 구간이 많아 어린이를 동반한 가족 산행 코스로는 무리다. 등산화는 필수다.

위봉폭포는 주변 숲에 가려져 상단과 하단을 한꺼번에 볼 수 없다.


-'BTS 성지' 소양면 일대 위봉폭포

총길이 60m로 장대완주 9경 중 하나

물줄기·자연경관 어우러져 '물멍' 제격



소양면 일대는 몇 년 전 그룹 방탄소년단(BTS) 화보집 촬영지로 알려지면서 사진 여행의 성지로 떠올랐다. ‘아원고택’ ‘위봉산성’이 BTS 팬클럽 아미들의 성지라면 위봉폭포 일대는 BTS 후광 효과를 톡톡히 누리고 있는 곳이다. 위봉산성에 대한 열기가 점차 주변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면서 전통 관광지인 위봉사와 위봉폭포까지 덩달아 주목을 받게 된 것이다. 얼마 전 문화재청이 ‘위봉폭포 일원’을 국가지정문화재 명승으로 신규 지정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사실 위봉산성과 위봉사·위봉폭포는 한몸이나 다름없다. 위봉산성이 사찰과 폭포를 품고 있는 모양새다. 특히 위봉폭포는 조선시대부터 완산8경으로 꼽히던 명소로 완주를 방문한다면 꼭 들러볼 만한 곳이다. 완산(完山)은 과거 완주가 전주와 하나였을 때 불리던 옛 지명이다. 일제강점기에 두 도시로 분리되면서 위봉폭포를 비롯한 3경은 완주로, 나머지 5경은 전주로 떨어져 나갔다. 현재 위봉폭포는 완주9경에 속한다.

위봉폭포가 완주 여행의 중심으로 재부상하면서 동선도 달라졌다. 그동안 산성길을 따라 위봉산에 올랐다면 이제는 반대편 동상저수지에서 위봉산에 올라야 한다. 위봉폭포는 위봉산에서 발원한 물줄기가 위봉산성을 거쳐 빠져나가는 북방 수구처다. 총길이 60m의 장대한 폭포는 아쉽게도 주변 나무에 가려져 겨울이 아니고는 한눈에 볼 수 없다. 상단 폭포는 도로변에 차를 세워두고 멀리에서 감상해야 하고, 하단 폭포는 데크를 따라 폭포 바로 앞까지 한참을 걸어 내려가야 만나볼 수 있다.

압권은 하단 폭포다. 고생스럽더라도 폭포 바로 앞까지 내려가면 폭포수가 바위에 부딪히면서 일으키는 바람과 물보라를 온몸으로 느껴볼 수 있다. 요즘같이 수량이 풍부한 시기에 찾아가면 장쾌하게 쏟아지는 물줄기와 주변 자연경관이 한데 어우러져 장관을 연출한다. 조선시대에 명창이 득음한 장소로 유명했다면 요즘에는 시원하게 쏟아지는 폭포수를 넋 놓고 바라보기 좋은 ‘물멍’ 여행의 성지로 부족함이 없다.

위봉사는 평소 찾는 사람이 거의 없어 한적하게 둘러보기 좋다. 사진 속 정면에 자리한 보광명전은 보물로 지정된 위봉사의 대표적인 문화재다.


위봉폭포를 지나 위봉터널을 넘으면 차로 2~3분 거리에 위봉사가 있다. 신라 604년(무왕 5) 서암대사가 창건한 이 사찰은 비구니 선원이다. 한때 전국 사찰 31본산의 하나로 50여 개의 말사를 둘 정도로 대가람을 이뤘지만 수차례 화재로 소실돼 지금은 그 규모가 크게 축소됐다. 다행히 보광명전(보물)과 요사채(전라북도 유형문화재)가 남아 있고, 사찰 중심에 자리한 수령 500년 된 소나무와 배롱나무도 볼거리다. 관광객들이 찾는 대중 사찰은 아니지만 한적한 분위기를 원한다면 근처 송광사보다 오히려 위봉사가 적당하다.

위봉산성 서문 옆으로 이어진 산성을 따라 여행객들이 여유롭게 걷고 있다.


위봉산성 서·동·북 3개의 성문 가운데 유일하게 남은 서문은 BTS 화보 촬영지다.


연대순으로 나열하면 1675년(숙종 1) 축성된 위봉산성이 맨 마지막이다. 전쟁 시 방어 목적이 아니라 전주 경기전에 있는 태조 어진을 모셔오기 위해 세운 곳이다. 위봉산성은 둘레가 16㎞로 서·동·북 3개의 성문 가운데 현재 서문만 남아 있는데 BTS 화보가 이곳에서 촬영됐다. 서문 위에 있던 3칸의 문루는 붕괴돼 사라지고 지금은 아치형 석문만 남아 있다. 석문 위에서 성 밖을 바라보고 찍으면 인생 사진을 건질 수 있다.

초남이성지 연못은 파가저택형에 처해진 복자 유항검 집터에 남은 웅덩이의 일부다. 초남이성지 인근 바우배기에서는 최근 한국 천주교 최초의 순교자 유해가 발견됐다.


-천주교 첫 순교자 유해 안치될 초남이성지

230년만에 윤지충·권상연 유해 발견

내일 '조선 첫 교리당'서 안치식 거행

위봉폭포 일원이 BTS 덕분에 유명해졌다면 이서면 초남이성지는 최근 한국 최초의 순교자 유해가 발견되면서 한국 천주교 성지순례의 중심으로 떠오른 곳이다. 초남이성지 담당 신부가 성역화 작업을 하다가 무연고 묘지에서 유해와 유물을 발견했고, 유전자 검사를 통해 이들이 신해박해(1791) 때 처형된 천주교 첫 순교자 윤지충과 권상연의 유해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한국 천주교는 이 유해 발굴을 ‘순교 역사의 첫 자리를 찾은 기념비적 사건’으로 평가하고 있다.

그동안 초남이성지는 순교지나 천주교 발상지가 아니라 ‘호남의 사도’ 유항검(1756~1801)의 생가 터로 알려졌던 곳이다. 유항검은 신유박해(1801)로 순교하기 전까지 한국 천주교 초창기에 호남 지방을 중심으로 전교 활동을 벌인 인물로, 대역 죄인으로 몰려 처형됐을 뿐만 아니라 집을 헐고 집터에 웅덩이를 파 연못을 만드는 형벌인 파가저택(破家?澤)에 처해졌다. 시간이 흘러 웅덩이를 메운 자리에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 살기 시작했고, 마지막 남은 웅덩이를 메워 성지가 됐다.

초남이성지 교리당에는 순교자 유해 3구가 안치될 예정이다. 유해 안치식을 며칠 앞두고 공사가 한창이다.


유항검 생가터에서 800m가량 떨어진 교리당은 조선 천주교 최초의 교리당이 있던 자리다. 우리나라에 들어온 첫 외국인 선교사 주문모 신부가 이곳에서 미사와 성사를 집전했다. 천주교 전주교구는 오는 16일 초남이성지 교리당에서 한국 천주교 첫 순교자의 유해 안치식을 거행한다. 유해가 안치되면 교리당은 조선의 첫 교리당이자 천주교 첫 순교자가 안치된 역사적 장소로 거듭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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