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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칼럼]올바른 아동 양육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

영양부족·교육 사각지대의 빈곤아동

성인되서도 취약층 벗어나기 어려워

부양아동 세액공제 영구화 조치 등

정부가 나서 '빈곤의 굴레' 끊어내야





미국인들은 어린 시절의 가난을 뛰어넘어 성공 신화를 쓴 성인들의 자수성가 스토리를 좋아한다. 하지만 현실에 무지하지 않다면 이것은 정해진 ‘규칙’이 아니라 ‘예외’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별로 없을 터이다. 부실한 영양 섭취와 의료 혜택, 헐벗은 환경, 금전적 궁핍에 대한 부담스러운 자각 등 어린 시절에 겪은 쓰린 경험은 평생에 걸쳐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

이 정도는 누구나 아는 상식에 속한다. 하지만 경제학자들이 유년기와 성장기의 빈곤이 가져오는 손실을 수치화한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은 적지 않을 성싶다. 알다시피 푸드 스탬프와 메디케이드 같은 빈곤 퇴치 프로그램은 동시에 시행되지 않았다. 예컨대 푸드 스탬프는 지역별로 시차를 두고 시행됐다. 수차례에 걸쳐 변화를 거듭한 메디케이드도 마찬가지다. 이처럼 각양각색의 일관성 없는 접근법은 의도하지 않은 인간 실험의 한 형태에 해당한다. 지금 우리는 어릴 적 빈곤 퇴치 프로그램의 지원을 받은 미국인들과 그렇지 않은 동시대인들의 삶의 궤적을 상호 비교할 수 있다.

힐러리 호인스와 다이앤 휘트모어 샨젠바흐는 이 같은 자료를 이용해 어린 시절의 빈곤이 그들의 삶에 얼마나 큰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지 보여줬다. 지난주 호인스와 샨젠바흐가 이끄는 450명의 경제학자는 그들이 분석한 자료를 의회 지도부에 공개서한 형식으로 전달했다. 이들이 지적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빈곤 속에서 성장한 어린이는 인생의 초반부터 불이익을 겪는다. 평균적으로 교육 수준이 낮고 심각한 건강 문제에 봉착할 가능성이 높으며 성년에 도달한 후 안정적인 고임금 일자리를 잡는 데 큰 어려움을 겪는다.”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책으로 공개서한을 작성한 경제 전문가들은 2021년의 부양 아동 세액공제 확대 조치를 영구화할 것을 제안했다. 이들의 제안이 받아들여지면 6세 이하 자녀는 1인당 300달러, 6~17세 사이 자녀의 경우 1인당 250달러가 매월 부모에게 지급된다.

부양 아동 세액공제 영구화는 워낙 탁월한 발상이라 이를 반대하는 보수 진영의 논객들조차 변변한 반박 논리를 제시하지 못한다.



이에 따른 비용을 걱정하는가. 금리가 거의 기록적인 저점에 접근한 지금이야말로 미래에 투자해야 할 최적의 시점이다. 공화당은 인프라 투자를 도로 및 교량 수리와 같은 물리적 투자로 좁게 해석한다.

하지만 아니다. 어린이들을 빈곤에서 끌어내는 것 역시 미래를 위한 진정한 투자에 해당한다. 어린이들에 대한 인적 투자가 물리적인 인프라 투자에 비해 훨씬 큰 효과를 가져온다는 객관적인 증거는 차고 넘친다. 물론 물리적 투자도 대단히 중요하다.

사실 어린이를 지원함으로써 얻는 이익이 워낙 크기 때문에 좁은 금전적 측면에서 따져봐도 소요 비용은 상대적으로 극히 미미한 수준에 불과하다. 어린이들이 보다 생산적이고 건강한 성인으로 성장한다면 궁극적으로 세수 증가와 의료 비용 감소 효과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부유층 감세와 달리 빈곤 아동 지원은 자체적으로 소요 비용을 충당한다는 얘기다.

혹시 이로 인한 근로 의욕 감퇴를 우려하는가. 소득이 상승하면 곧바로 중단돼 (다소 과장이 섞이기는 했지만) 근로 노력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다른 많은 빈곤 퇴치 프로그램과 달리 중산층 가정은 부양 아동 세액공제 혜택을 지속적으로 받을 수 있기 때문에 근로 의욕 감소 효과 역시 최소화될 것이다.

세액공제를 취업 노력과 연결시키자는 제안은 도덕적으로나 실질적으로 대단히 나쁜 발상이다. 부양 아동 세액공제의 목적은 어린이들에게 공정한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설사 부모에게 ‘죄(sin)’가 있다고 하더라도 아무런 잘못이 없는 자녀들까지 벌을 줘야 마땅할까. 게다가 취업 노력을 의무화하는 것은 서류 작성 능력이 가장 떨어지는 사람들에게 어마어마한 부담을 얹어주는 것을 의미한다. 가장 중요한 ‘빈곤 비용’ 중 하나가 가난이 강요하는 인지력 저하라는 사실을 기억하라.

확대된 부양 아동 세액공제 영구화를 배척하는 설득력 있는 반론은 기본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이에 대한 반대는 정부의 빈민층 지원 프로그램을 극도로 혐오하거나 그들의 자녀들이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것을 결코 원치 않는다는 두 가지 중 하나다. 미국은 그 정도로 치졸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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