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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당신은 어떤 '욕망'을 신었나요

■신발, 스타일의 문화사

엘리자베스 세멀핵 지음, 아날로그 펴냄

승마용 신발로 고안된 하이힐

유혹 도구서 전문직女 상징으로

18세기 남성 전유물이던 부츠는

여성패션 아이템으로 자리매김

20·21세기 서구문화의 변천사

신발 초점 맞춰 흥미롭게 풀어내

에르메스에서도 일했던 프랑스 3대 신발디자이너 중 하나인 피에르 아르디가 미술가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작품에서 영감을 받아 2011년에 출시한 스니커즈 '파워라마(poweramas)'. '웨어러블 아트', 즉 입는 예술이라는 호평을 받았다. /사진제공=아날로그




요즘은 정장 차림에도 스니커즈를 신는다. 멋이고 유행이다. 스니커즈의 기원은 남아메리카 원주민들이 고무나무 수액으로 만들어 신던 신발로 거슬러 올라간다. 1820년대 브라질에서 미국과 유럽 수출용으로 만든 고무덧신은 일약 희소성 높은 사치품으로 주목받았다. 그렇게 탄생한 스니커즈는 특히 테니스의 인기와 함께 확산됐고 “여성의 발을 하이힐에서 벗어나 대지에 닿을 수 있게 했다”는 칭송까지 들었다. 이후 산업화 초기에 실내 운동의 필요성이 강조되자 스니커즈는 농구화로 또 한번 영역을 넓혔다. 조깅화 ‘나이키’의 전성시대는 과시적 소비를 위해 신체를 가꾸고 성공을 자랑하던 1960년대 말 ‘나 세대(Me Generation)’의 등장과 맞아 떨어졌다. 그렇게 고급 스니커즈 브랜드는 과시와 욕망의 상징이 됐고, 스트리트 패션·힙합과 결합하면서 “창의적이고 활동적인 사람을 위한 ‘멋진’ 신발”이란 정체성을 갖게 됐다. 문화의 일부로서 정장에 스니커즈를 신는 이유다.



오늘 무슨 신발을 신었는지 내려다 보자. 신발은 ‘걷는 발을 보호하는 도구’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신발은 개성 뿐만 아니라 성별을 표시하고 사회적 지위를 보여준다. 저항을 드러내는 등 ‘비언어적 표현’의 수단이 되기도 한다. 4,500년 전 신발부터 현대 신발까지 약 1만3,000여 점의 신발을 전시한 캐나다 토론토 ‘바타(Bata) 신발박물관’의 수석 큐레이터인 저자가 문화·역사·경제·사회 정체성 구축과 관련 있는 신발의 의미를 신간 ‘신발, 스타일의 문화사’에 담았다. 방대한 신발의 역사 중에서 책은 20세기와 21세기 서구 사회에서 사회적 정체성을 나타내는 데 핵심 역할을 한 주요 신발의 전형인 샌들, 부츠, 하이힐, 스니커즈에 초점을 맞췄다.

보디빌딩을 스포츠 종목으로 발전시키며 19세기 후반 완벽한 남자다움의 전형으로 여겨진 유진 샌도우는 로마제국에서 유행했던 고전풍의 샌들과 함께 자신의 신체를 과시하곤 했다. /사진제공=아날로그


스위스 발리가 1934년 출시한 두툼한 끈형 샌들은 1930년대 여성들에게 인기를 끈 발가락을 노출하는 신발의 전형이다. /사진제공=아날로그


끈으로 발등을 덮는 샌들은 고대 그리스·로마 조각상에서도 발견되는 고전적이며 신성한 분위기의 신발이었다. 로마 제국 전역에서 착용한 신발이기에 유럽인들에게는 이국적이면서 탈속적이거나 급진적인 이미지도 갖는다. 18세기 로마 폼페이 유적 발굴이 이끈 ‘신고전주의’에 대한 관심은 여신 같은 옷차림과 그리스풍 샌들을 등장하게 했는데, 그 이면에는 무자비한 공포정치로 복장과 행동을 규제했던 프랑스 혁명 정치에 대한 반항이 숨어 있었다. 19세기 중반 이후 노예해방론자와 여권운동가는 샌들을 신고 자유의 여신 리베르타스를 추구했다. 정치적 급진성과 자유주의를 표현하게 된 샌들에 대해 조지 오웰은 “‘진보’의 냄새를 맡고 몰려오는 저 고상한 여자들로 이뤄진 음울한 무리와 샌들을 신는 사람들”이라 묘사했다. 1930년대 경제 불황 때는 마치 립스틱처럼 저렴한 가격으로 멋을 부릴 수 있는 아이템으로 샌들이 호황을 누리기도 했다.

나폴레옹 3세의 왕실 마국간을 관리하던 마국간 책임시종의 것으로 알려진 19세기 후반 프랑스의 부츠. 지금 당장 출시돼도 될 정도로 업무용 목적 못지 않게 패션을 중시여겼음을 짐작할 수 있다. /사진제공=아날로그




다리 전체를 단단하게 감싸는 부츠는 남성 패션으로 성장했다. 18세기 잉글랜드 대지주들이 부츠 유행을 이끌었고 ‘승마부츠’에 이르러 남성성과 노동을 결합시킨 상징으로 자리잡았다. 소설가 찰스 디킨스가 “부츠만큼 신은 남자에게 자부심을 느끼게 하는 물건은 없다”고 했을 정도다. 남성 전유물이던 부츠가 여성 복식에 등장한 것은 ‘안 예쁜 발목’의 결점을 감추기 위한 수단이었으니, 일종의 ‘종아리 코르셋’인 셈이었다. 이후 자전거가 발명되자 여성부츠는 악천후를 막아주고 자유를 선사하는 존재가 됐다. 미국 서부를 말 타고 누비던 카우보이 부츠는 기능성 전투화로도 특수를 누렸다.

20세기의 여성 신발 디자이너인 베스 러바인이 1960년대에 내놓은 반짝이는 하이힐은 금붕어의 비늘로 장식한 듯 금빛 화려함의 절정을 자랑한다. 하이힐은 여성 성적 매력의 아이콘에서 전문성의 상징으로 의미가 변화했다. /사진제공=아날로그


높은 굽의 하이힐은 원래 말 탄 사람의 발을 고정시킬 수 있게 굽을 높인 승마용 신발에서 시작됐다. 특권층 남성이 신기도 했던 신발이지만 지난 수세기 동안은 여성의 성적 매력을 강조하며 왜곡된 성적 욕망이 투영된 유혹적 액세서리로 치부됐다. 하지만 지난 100년 여 동안 아찔한 하이힐은 포르노적 판타지에서 전문직 여성의 상징으로 변화했다.

프랑스 명품브랜드 루이비통이 1920년대 선보인 신발 트렁크. 부유한 여성의 호화로운 여행길에 필요한 운동화부터 이브닝 하이힐까지 넣을 수 있도록 30개의 신발칸을 갖추고 있다. /사진제공=아날로그


170여 장의 신발 사진이 눈까지 즐겁게 하는 책을 덮을 때쯤이면 왜 플립플롭 샌들이 여름 휴가를 생각나게 하고, 부츠가 불온한 지배를 암시하고, 스니커즈가 도시 문화를 상징하는지 고정관념들의 본질을 이해하게 된다. 결국 시대정신과 욕망이다. 신발에 대한 가치관의 변화를 살펴봄으로써 우리가 특정 신발을 선택하는 이유와 그 선택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또한 깨닫게 된다. 2만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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