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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명] '요소수 대란' 끝을 섣불리 거론하지 말라

송영규 선임기자

이자·생필품 값 등 계속 치솟아

'서민의 대란'은 아직도 진행 중

금융 지원 등 기존 해법으론 한계

변화 대처할 정책 능력 보여줘야





휴일도 아닌 평일 경부고속도로. 갑자기 차량들이 느림보 운행을 한다. 휴게소 부근에 오니 끝이 보이지 않는 화물차 행렬을 만난다. 얘기로만 듣던 ‘요소수 대란’의 현장. 언제 올지 모를 순서를 기다리며 차 안에서 지친 표정을 짓고 있는 운전자들의 모습이 안쓰럽기만 하다.

요소의 화학식은 CO(NH₂)₂. 독일의 화학자 프리드리히 뵐러에게 유기 화학의 창시자라는 명예를 가져다 준 물질이자, 농업에 없어서는 안 될 비료의 필수 원료다. 그럼에도 일상에서는 별로 눈여겨보지 않았던 존재다. 그런 하찮은 물질이 나라를 뒤흔드는 위기로 번질지 누구도 예상 못했을 터다.

요소수는 기후 위기의 결과물이다. 환경 유해 물질에 대한 규제가 강화되면서 많은 이들에게 요소수는 생명줄이 됐다. 화물차를 몰며 하루하루를 사는 운전자에게 그렇고, 건설 현장에서 중장비를 모는 이들에게도 그렇다. 경운기를 다루는 농민들, 1톤 트럭을 끌고 다니는 자영업자들 역시 마찬가지다. 1,200원을 내고 흔들리는 시내버스에 몸을 맡기는 직장인들도 요소수의 보이지 않는 소비자들이다. 그래서 요소수는 우리 이웃이고, 서민이다.

요소수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정부가 역량을 총동원하고 있다지만 역부족이다. 오히려 확산되는 모양새다. 자동차·반도체를 비롯한 국내 산업들도 직격탄을 맞았다. 그나마 중국에서 석탄 공급을 늘리고 민간 기업들이 나선 덕에 혼란은 있지만 조금씩 길이 보이기 시작한다.

요소수 대란이 가라앉으면 위기는 끝난 것일까. 코로나19가 일상을 지배하면서 세상은 급변했다. 사회적 거리 두기와 출입국 제한이라는 사슬에 사람들 발이 묶이면서 그동안 세계 경제를 지배했던 글로벌 가치사슬에 문제가 생겼다. 익숙했던 것으로부터 원치 않는 자유. 결과는 수급 불균형과 유통망 교란이다. 요소수 대란은 이러한 부작용의 일부에 불과하다.



요소수 문제가 해결돼도 아직 우리 주변에는 수많은 난제가 널려 있다. 작금 목도하고 있는 에너지 가격 급등, 반도체 대란, 일자리 부족 등이 그것이다. 생필품 가격도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다. 김장철을 앞둔 배추·무의 체감 물가는 6개월 전의 2배를 훌쩍 넘는다. 라면 값은 한 달 만에 11%나 올랐다고 한다. 12년 동안 이런 상승률을 본 적이 없다. 이 모든 고통을 고스란히 떠안는 이가 서민들이다.

코로나로 풀린 유동성에 정책 실패까지 겹치면서 집값이 뛰고, 내 집 마련 막차를 타기 위한 MZ세대의 영끌까지 가세하면서 가계 부채가 눈덩이처럼 불었다. 정부가 내민 카드는 대출 중단과 금리 인상. 원금 분할 상환 의무화도 부과했다. 어렵게 하루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청천벽력일지도 모른다. 서민들의 허리는 갈수록 휘어간다.

일상의 회복은 강한 자만이 살아남는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끼게 한다. 문전성시를 이루는 대기업의 프랜차이즈 커피 전문점과 대형 식당 주위에 즐비하게 늘어선 폐업과 임대 문의 팻말들은 시장이 승리자들의 전유물이 됐음을 알려준다.

위기는 결코 모든 이에게 공평하게 다가오지 않는다. 요소수 대란이 끝날지는 모르지만 서민들에게는 대란이 진행형이다. 이자 부담, 물가 폭등, 자영업 위기, 일자리 부족 등이 아직 계속되고 있다. 위기의 강도가 더 세질지도 모른다. 코로나에 대응하겠다며 풀어놓은 돈은 아직 돌아오지도 않았다. 시중에 넘치고 흐르는 돈들이 원래 자리를 찾아간다면 인플레이션은 더 기승을 부릴 것이고 그 충격은 다시 더 많은 이들의 목을 조를 수 있다. 요소수처럼 이전에는 생각지도 못한 위협이 또 발생할 수 있다. 외환위기,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벌어졌던 양극화가 더 위력을 떨칠 게 뻔하다.

지금 겪고 있는 위기는 이전에 경험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것들이다. 당연히 해법도 달라야 한다. 단순히 지원을 강화한다고 해결될 사안이 아니다. 정부는 코로나와 더불어 사는 시대에 맞는 대책을 내놓을 수 있는 능력과 의지를 보여줘야 한다. 그럴 준비가 돼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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