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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 스포츠라이프
[休]붉은 옷자락 여민 '여인의 宮'···가을의 끝자락 붙잡다

◆단풍에 물든 창덕궁·창경궁

정희왕후·소혜왕후 등 왕비들이 살던곳

'수십종의 단풍나무' 울긋불긋 담요 덮어

宮 둘러싼 빌딩숲마저 포근하게 느껴져

문정전 이르니 恨 깊은 사도세자 숨결도

창덕궁 후원의 애련정 주변 단풍이 애련지에 반영된 모습. 후원은 사전 예약을 통해 입장이 가능하다. /사진 제공=한국관광공사




창경궁 뜰 안에서 고개를 들어 바라본 가을하늘. 붉고 노란 단풍과 하늘색의 조화가 이채롭다.


지난달 창졸지간(倉卒之間)에 겨울이 들이닥쳤다. 강원도 태백준령을 덮은 나뭇잎들은 10월부터 눈을 맞아 푸른 잎에 색이 들려는 순간 얼어붙고 말았다. 노란색을 내는 카로틴과 빨간색을 내는 크산토필이 분비되기도 전에 잎새와 가지가 얼어붙었으니 나뭇잎 색으로 구분 짓는 가을의 연장은 축복이다. 국토가 좁은 탓에 서울도 사정은 마찬가지라 올가을은 얼떨결에 길어지고 말았다. 가을을 찾아 떠날지, 겨울을 찾아 떠나야 할지 고민하던 와중에 “창경궁은 아직도 단풍이 한창”이라는 유승엽 서울시 문화관광해설사의 말이 솔깃하게 들렸다.

과연 창경궁으로 들어서자 뜰 안은 아직도 가을이 불타고 있었다.

창덕궁·후원과 함께 동궐(東闕)이라고 불리던 창경궁은 여인의 궁이라 할 만하다. 성종 14년(1483) 함께 생존한 세조비 정희왕후, 덕종비(추존왕) 소혜왕후, 예종비 안순왕후 등 세 명의 대왕대비를 모시려다 보니 침전이 모자라 수강전 자리에 새로 지었고 중건하며 창경궁이 됐다. 이후 창경궁은 후원·창덕궁과 함께 동궐이라 불리게 됐다.

창경궁을 ‘여인의 궁’이라고 부르는 것은 이곳에 앞선 대비(大妃)들을 이어 인현왕후·장희빈 등이 거처했고 드라마로 잘 알려진 대장금도 이곳에서 활동했기 때문이다.

여인들이 거처한 곳이라서 그런지 해마다 가을이면 창경궁은 색의 향연이 펼쳐진다. 유 해설사는 “가장 많은 수종은 소나무지만 단풍나무·회화나무가 주종을 이루고 있어 단풍이 곱다”며 “궐내에 있는 단풍나무 종류가 20가지를 넘어 단풍이 지속되는 기간이 길다”고 설명했다.

창경궁 함인정 뒤편에 가을이 내려 앉았다. 함인정은 국왕이 신하들을 만나고 경연을 하는 곳으로 이용했다. 영조가 문·무과에 합격한 사람들을 이곳에서 접견했다.


창경궁은 창덕궁과 연결돼 동궐로 불리면서 독립적인 궁궐의 역할을 하는 동시에 창덕궁의 부족한 주거 공간을 확보해주는 역할을 했다. 성종대에 창건한 창경궁은 선조 25년(1592년) 임진왜란으로 모든 전각이 불타버렸지만 광해군 8년(1616년)에 재건됐다. 이후 인조 2년(1624년) 이괄의 난과 순조 30년(1830년) 대화재로 내전이 소실됐지만 화마를 피한 명정전·명정문·홍화문은 17세기 조선을 대표하는 건물로 남았고 정전인 명정전은 조선 왕궁 정전 중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로 보존되고 있다.

창경궁의 여러 건물 중 눈길을 끄는 것은 명정전 뒤편에 있는 문정전이다. 문정전은 창경궁의 편전으로 임금이 정사를 보던 곳이다. 재미있는 것은 편전인 문정전은 동쪽을 바라보고 있는 명정전과 달리 남향이라는 점이다. 문정전은 창경궁이 지어졌던 성종 때부터 있던 건물로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혀 죽었던 바로 그곳이다.



이야깃거리가 많은 동궐에는 문화재도 여러 개 있다. 국보로는 명정전이 있고 보물은 7점이나 되는데 홍화문·명정문 및 행각·옥천교·통명전·풍기대(바람 관측 기구)·관천대(천문 관측 기구)·팔각칠층석탑이 그것이다.

땅거미 내리는 창경궁.


국보는 아니지만 이들 중 동궐을 상징하는 것은 홍화문(弘化門)이라 할 만하다. 직역하면 ‘조화를 넓힌다’는 의미의 홍화(弘化)는 ‘덕을 행해 백성을 감화시키고 널리 떨친다’는 뜻으로 창경궁 창건 당시에 처음 건립됐다가 임진왜란 때 불에 타 광해군 8년(1616년)에 재건됐다.

홍화문은 임금이 직접 백성들을 만나던 곳으로 영조 26년(1750년) 균역법을 시행하기 전 영조는 홍화문에 나가 백성들의 의견을 들었다. 정조 19년(1795년)에 정조는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을 기념해 홍화문 밖에 나가 가난한 백성들에게 쌀을 나눠줬는데 ‘홍화문 사미도(賜米圖)’에 그 모습이 자세히 묘사돼 오늘에 전하고 있다.

춘당지의 반영. 춘당지에는 왕이 농사의 시범을 보이는 작은 논이 있었다.


하지만 이 가을 동궐을 더욱 찬연하게 장식하는 주인공은 역시 단풍이다.

빌딩 숲으로 포위된 궁을 울긋불긋한 담요로 덮어 현대와 과거를 완충하는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궁궐 안에 들어가 고개를 들어 밖을 내다보면 단풍에 가린 콘크리트 건물들은 겨우 절반만 보여 차디찬 물성마저 포근하게 느껴진다.

궁궐 안을 이리저리 쏘다니는 사이 후원 쪽 언덕이 떨어지는 석양을 막아 창경궁에는 땅거미가 내렸다. 명정전 안쪽에 불이 켜지자 빗살 무늬 창호는 노랗게 빛나고 작은 섬의 반영은 춘당지에 내려앉고 있었다. /글?사진=우현석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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