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거래위원회(FTC)가 미국 반도체 기업 엔비디아의 영국 반도체 설계 회사 ARM 인수 건에 대해 반독점법을 위반했다며 소를 제기했다. 엔비디아는 인수를 계속 추진하겠다는 의사를 재확인했지만 FTC가 제동을 걸면서 400억 달러(약 45조 8,00억 원)에 달하는 ‘반도체 메가딜’이 사실상 좌초됐다는 평가가 나왔다.
2일(현지 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FTC는 “엔비디아가 ARM을 인수할 경우 전체 반도체 산업에 큰 위협이 될 수 있다”며 “데이터센터부터 자율주행 기술까지 차세대 기술의 혁신이 크게 억눌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엔비디아가 자체 컴퓨팅 칩을 개발하는 경쟁사들에 부당하고 불법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우려를 표했다. 리나 칸 위원장이 주재하며 민주·공화당 측 위원 각각 두 명씩 총 네 명으로 구성된 FTC는 이번 소 제기를 만장일치로 결정했다.
이는 특정 반도체 칩 제조사가 ARM을 인수할 경우 여러 기업에 칩 설계에 필요한 반도체 지식재산권(IP)을 제공하고 제조사와 경쟁하지 않는 이 회사의 ‘중립국’ 같은 역할이 흔들릴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실제로 ARM 고객사인 퀄컴·인텔·AMD 등은 엔비디아와 시장에서 직접 경쟁하고 있다. 이뿐 아니라 ARM은 전 세계 스마트폰에 들어가는 반도체의 90%에 해당하는 부분의 라이선스를 보유하고 있다. ARM은 애플의 자체 반도체 칩인 M시리즈 프로세서를 비롯해 아마존이 활용하는 데이터센터 서버 칩 등의 설계도 담당하고 있다. 이에 대해 엔비디아 측은 “ARM의 연구개발(R&D)에 과감하게 투자하고 ARM을 중심으로 하는 생태계를 더욱 확장시켜 경쟁을 촉진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시장에서는 과거에도 반도체 메가딜을 경쟁 당국이 저지한 적이 있는 만큼 이 같은 결정은 예상된 것이라는 반응이 나온다. 크리스 롤런드 서스퀘하나투자그룹 애널리스트는 “엔비디아는 영향력이 큰 제조사인 만큼 엔비디아와 ARM의 조합은 애초에 무리한 일이었다”고 평했다. 앞서 통신 칩 제조사인 싱가포르의 브로드컴이 퀄컴을 1,170억 달러(약 138조 원)에 인수하려 했으나 2018년 도널드 트럼프 전 미 대통령이 이를 금지하는 행정명령을 내려 포기한 바 있다. 같은 해 퀄컴이 네덜란드 칩 제조사 NXP를 440억 달러에 인수하려 했지만 중국 당국의 승인을 얻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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