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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오! 세운지구여

이현석 건국대학교 부동산학과 교수

세운지구에 판교 같은 단지 조성 땐

글로벌 도심테크 성지가 될 수 있어

보존·개발의 역할 분담·연계 필요

규제 풀고 강력한 인센티브 제공을





글로벌 경쟁력의 핵심 동력은 테크(tech) 산업이다. 굴뚝산업과는 달리 도심에 주로 자리 잡는다. 구글·페이스북·애플 등이 탄생한 실리콘밸리, 맨해튼의 실리콘앨리, 런던의 테크시티가 대표적 사례다. 첨단 기술로 무장한 인재들은 다양한 재미가 어우러진 곳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서울은 세계 도시 관광객 방문 순위에서 10위권에 든다. 주요 방문지는 역사와 문화가 살아 숨 쉬는 고궁과 생동감이 넘치는 재래시장들이 집중된 강북이다. 관광객과 인재들의 기호가 일치하는 지점이다. 하지만 도심 사대문 안은 보전에 초점을 맞추느라 정작 첨단산업을 담을 공간은 마련되지 못했다. 도심 규제는 미국 컨설팅 기업 AT커니의 글로벌 도시 경쟁력 순위에서 서울을 불과 10년 사이에 10위권에서 40위권으로 추락시킨 가장 큰 원인이다.

도심 테크 산업의 최적지는 한때 우스갯소리로 로켓과 로봇도 뚝딱 만들어낼 수 있다던 세운상가다. 일제강점기 미군 폭격에 대비해 종묘 앞에서 필동까지 폭 50m, 길이 1,000m에 이르는 소개지로 조성됐고, 해방 이후 혼란기에는 판자촌과 집창촌 등 무허가 주택들이 들어섰던 곳이다. 이를 거대한 복합 건물로 재개발한 것이 세운상가아파트다. 당시 프랑스 건축가 르코르뷔지에의 기능주의 관점에 영향받은 김수근과 ‘불도저 시장’ 김현옥의 합작품이다.

세운상가는 2000년대에 들어와 재개발을 둘러싸고도 우여곡절을 겪는다. 녹지축 복원과 함께 노후 상가를 헐어내고 블록별 대단위 개발을 통해 새로운 도심 공간을 만들려던 오세훈 시장과는 달리 오래된 구조물의 보전에 집착하던 박원순 전 시장은 기존 건물 리모델링과 공중보행로 연결 등 재생사업에 수천억 원을 집행한다. 오 시장이 세운상가에 올라가 피를 토하고 싶은 심정이라 말한 이유가 짐작된다.



강북 도심의 경쟁력 회복은 국가 차원의 과제다. 초연결과 초지능으로 대표되는 4차 산업혁명의 산물인 테크 산업은 글로벌 경쟁의 판도를 완전히 바꾸어놓았다. 테크 기업은 국가 경쟁력의 상징처럼 됐다. 첨단 기술 기업의 집적지로 판교를 떠올리지만 세운지구에 판교와 같은 단지를 만든다면 차원이 다른 글로벌 도심 테크의 성지가 될 것이다.

이제라도 세운상가의 잠재력을 끌어올리려면 보존과 개발의 분명한 역할 분담과 연계가 필요하다. 종묘 인근은 소중한 역사 문화 자원의 보호를 위해 확실히 보존하고 그 외의 지역은 규제를 과감하게 풀어야 한다. 기존 규제를 뛰어넘는 층고와 용적률을 허용하고 강력한 인센티브를 제공해야 한다. 소유주와 임차인·사업자들이 나눌 수 있는 파이를 키워야 미래 성장을 이끌 공간의 창출이 가능해지고 속도가 붙는다.

경제자유구역의 각종 유인책을 도심의 산업 공간에도 적용해야 한다. 규제 지역의 불균형 해소를 위해서는 개발권이나 용적률을 사고팔 수 있는 방안을 도입하는 것도 방법이다. 반세기 전의 재개발은 건설사가 주도했지만 21세기에 세운지구를 글로벌 테크의 거점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첨단 기술을 보유한 기업과 투자 유치 역량을 겸비한 자산운용사들이 앵커 역할을 하도록 길을 열어 줘야 한다.

창의와 열정으로 똘똘 뭉친 테크 인재들은 재미를 느껴야 모인다. 주변의 역사 문화유산인 고궁과 재래시장을 고려하면서 각종 전람, 공연, 먹거리 등 위락이 풍성한 복합 문화주거 공간의 제공은 필수다. 탄식으로 얼룩진 영욕의 역사에서 감탄사가 절로 나올 “오! 세운지구여”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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