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수사 단계에서 은밀한 제의를 하는 이른바 ‘브로커’가 여전히 존재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이 불송치나 송치 등을 제의하는 등 경찰이 수사하는 과정에서 좋지 않은 영향을 줄 수 있어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23일 서울경제가 서울지방변호사회와 공동으로 설문을 실시한 결과 변호사 1,459명 가운데 153명(10.49%)이 검경 수사권 조정 이후 경찰 수사 단계에서 브로커의 제의를 받거나 사건 상대방이 유사 경로로 청탁을 했다는 말을 들은 것으로 나타났다. 변호사 10명 가운데 1명은 경찰 수사 생태계에 ‘독버섯’처럼 존재하는 브로커의 은밀한 제의를 받거나 사례를 들은 셈이다.
청탁 종류로는 불송치 결정이나 기소 의견 송치 등 사건 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사례가 61.44%(94명)으로 가장 많았다. ‘사건 당사자 일방에게 유리한 진술을 반영해달라(18.95%·29명)’거나 ‘사건 처리 지연(10.56%·16명)’ 청탁도 존재했다. 특히 변호사들이 직접 쓴 기타 의견에서는 현장에서 행해지는 사례까지 제시됐다.
설문에 응한 한 변호사는 “전직 경찰관이 사건 해결을 도와주겠다며 300만~500만 원 정도의 현금이나 유흥 제공을 요구해 준 적이 있다는 이야기를 의뢰인으로부터 들은 적이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변호사는 “피고소인이 제출한 서류와 반증 자료를 (브로커를 통해) 고소인에게 무단 공개했다는 사례도 들었다”며 “피고소인에게 치명적인 출국 제한(금지) 명령으로 협박한 일화도 있다”고 설명했다.
각종 브로커 사례 중에서는 현재 진행형인 사건도 있다. 경찰이 지인 사건을 담당 수사관에게 전화해 부탁하려던 것을 의뢰인이 조사 과정에서 들었고 결국 공무상비밀누설죄로 진정이 제기돼 수사가 진행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외에도 △관할 경찰서에 높은 사람을 알아 불기소하거나 수사 처리 지연 △수사 내용, 영장 발부 여부 누설 △리베이트 요구 △수사 범위 협의 등도 변호사들은 직간접으로 경험했다고 소개했다.
승재현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브로커의 영향은 굉장히 위험한 만큼 방치해서는 안 된다”며 “변호사법으로 엄중 처벌하고 피해자 구제 절차를 적극 마련하는 등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이어 “검찰이나 권익위가 시민위원회나 옴부즈맨을 설치하는 것처럼 경찰도 국민의 형사 사법 개입을 적극 늘릴 필요도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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