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체 개인 채무자가 자력으로 더는 빚을 갚기 어렵다고 판단할 경우 채권 금융기관에 채무 조정을 요청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는 내용의 ‘소비자신용법(가칭)’ 입법이 결국 차기 정부의 과제로 넘어갔다. “일부 대출자가 법을 악용할 수 있다”는 대부업체의 반발에다 법제처의 심사가 늦어졌기 때문이다. 다만 금융 당국은 일부 자구 수정을 거쳐 재추진하기로 했다.
7일 법제처 등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대부업법을 전면 개정해 소비자신용법으로 확대 개편하는 작업에 재착수한다. 이 법의 핵심은 개인 채무자의 채권 금융기관에 대한 채무조정 요청 근거를 마련하고 개인 채무자의 채무 조정 협상력을 보완하기 위해 채무조정교섭업을 도입하자는 것이다. 이 밖에 개인 채무자에 대한 추심 연락을 1주일에 7회 이내로 제한하고 개인 채무자가 특정한 시간대 또는 특정한 방법·수단을 통한 추심을 하지 않도록 채권 추심자에게 요구하는 내용도 담겼다.
금융위는 “그동안 금융기관과 개인 채무자 간의 소비자신용 거래를 규율하는 별도의 입법이 없어 채권 금융기관에 비해 열위에 있는 개인 채무자의 권익을 체계적으로 보호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었다”고 여러 차례 제·개정 필요성을 밝힌 바 있다.
지난한 세월이 흘렀지만 좀처럼 입법 과정은 속도를 내지 못했다. 금융권역 간 밥그릇 싸움은 물론 채무자들의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 우려도 제기됐기 때문이다. 한 금융사 관계자는 “꼬박꼬박 빚을 갚아온 성실 상환자들은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 수도 있다”고 했다. 다만 금융 당국은 채무 조정 요청 시 소득·재산 현황 등 상환이 곤란한 사유를 입증할 수 있는 자료를 제공해야 해 무분별한 권리 행사를 막을 수 있다고 반박했다.
2020년 9~11월 입법 예고, 12월 온라인 공청회 등을 거치면서 제기된 의견을 수렴한 끝에 지난해 6월 법안이 법제처로 넘어갈 수 있었다. 그러나 법제처 심사마저 길어지면서 국회 문턱도 밟지 못한 채 해가 바뀌고 말았다. 이에 금융위는 지난달 법제처에 제출된 법안을 자진 철회한 뒤 일부 자구를 수정하고 재심사를 받고 있다. 금융위는 법제처 심사가 끝나는 대로 법안을 국회에 제출한다는 계획이지만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다.
현재 국회 정무위원회에는 여당 의원들이 발의한 대부업법이 다수 계류돼 있다. 대부분 법정 최고 금리 추가 인하를 골자로 한다. 다음 달 9일 대통령 선거 이후 이들 법안과 함께 논의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한 업계 관계자는 “사실상 문재인 정부 내 법안 통과는 물 건너 갔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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