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의 저울 생산기업 ‘블랑코스케일’. 대기업은 아니지만 동종 업계에서는 꽤 알아주는 알짜 회사다. 현 사장은 가업을 승계한 중년 남성 블랑코다. 그는 매일 아침 공장에 들어서면서 직원들에게 여유롭고 친절한 미소를 날린다. 블랑코는 직원들을 ‘가족’이라고 부른다. 공장에는 선대 사장 시절부터 일해 온 직원도 있고, 블랑코와 함께 자란 친구도 책임자급 역할을 맡고 있다.
블랑코는 저울 회사의 보스답게 늘 ‘공평함’과 ‘정확성’을 강조한다. 일에 대한 자부심이 강해 크고 작은 상도 여럿 받았다. 그의 집 거실 한쪽 벽은 트로피와 상패로 가득 차 있다. 조만간 지방정부가 수여하는 우수기업상 최종 후보에도 올라 있다. 블랑코에게는 이 상이 ‘영광 된’ 거실 벽을 완성할 마지막 퍼즐 같다. 블랑코는 영예의 수상자가 될 수 있을까.
오는 10일 개봉하는 영화 ‘굿 보스(감독 페르난도 레온 데 아라노아) ’는 우수기업 심사를 앞두고 저울 공장 안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 사고를 통해 사회의 부조리를 조명하는 블랙 코미디다. 수평을 강조하는 ‘저울’을 통해 일과 사생활의 균형, 사내 수직 관계, 자본주의 사회의 정의 등을 고찰한다. ‘듄’,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비우티풀’ 등 다수의 작품에서 뛰어난 연기를 선보인 배우 하비에르 바르뎀이 수완 좋고 교활한 주인공 블랑코를 연기했다.
블랑코는 심사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직원들에게 “우리는 가족”임을 끊임없이 강조한다. 하지만 공동 창업주의 아들이자 친구인 직원이 가정 불화로 힘들어하자 “사장과 직원이기 이전에 우리는 형제처럼 자란 사이잖아. 고민 있으면 말해봐”라고 접근하더니 약점을 파악한 후 공장에서 내쳐 버린다. 나이 많은 직원이 ‘아픈 손가락’ 같은 막내 아들을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 달라고 블랑코에게 부탁하자 도와주기는커녕 더 불량한 일에 아들을 끌어들여 인생을 망쳐 버린다. 자식뻘 인턴 사원에게 사심을 품더니 갑자기 마케팅 팀장 자리에 앉히기도 한다. 영화 말미에 블랑코는 공장을 방문한 심사위원들을 미소로 맞이한다. 그의 뒤에 선 직원들도 미소 짓는다. 하지만 미소의 무게는 다르다. 기울어진 저울처럼 말이다. 러닝 타임 120분. 15세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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