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권 노후 아파트들의 리모델링 시계가 빨라지고 있다. 최근 들어 곳곳에서 리모델링 안전진단 절차에 돌입하는 등 속도를 내고 있어서다. 재건축 규제로 리모델링이 대체 사업으로 주목받는 가운데, 여야 대선 후보들이 사업 활성화를 약속하면서 ‘훈풍’을 타는 분위기다.
정비업계에 따르면 서울 서초구청은 7일 ‘잠원동아아파트’의 증축형 리모델링 1차 안전진단 용역 업체를 선정하기 위한 입찰을 마감하고 적격 심사를 진행 중이다. 이번 심사에서 낙찰자로 선정된 업체는 앞으로 120일간 잠원동아아파트에 대한 안전진단을 실시한다.
지난 2002년 준공된 잠원동아아파트는 지하 2층~지상 20층, 8개 동, 991가구 규모다. 이 단지는 수직 증축 리모델링을 통해 3개 층을 더 올려 지을 계획이다. 이를 통해 136가구를 추가해 1127가구의 단지로 탈바꿈한다.
지난해 8월 설립된 리모델링 조합은 같은 해 12월 현대건설을 시공사로 선정하는 등 사업 일정을 서두르고 있다. 조합은 이번 안전진단을 거쳐 올해 안에 1차 안전성 검토, 건축?도시계획심의까지 마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후 사업계획승인, 이주, 2차 안전진단, 착공 및 준공 등의 순으로 진행된다.
잠원동아아파트 리모델링 조합 관계자는 “사업성 확보 차원에서 수직 증축으로 사업 계획을 짰지만, 추후 진행 상황에 따라 수평 증축으로 계획이 변동될 수도 있다”며 “사업 지연으로 발생 가능한 손해를 최소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초구 반포동 ‘엠브이아파트’는 오는 17일 리모델링 안전진단 용역 업체를 선정한다. 구청은 지난 3일 마감한 입찰에 참여한 116개 업체를 대상으로 적격심사에 필요한 서류를 제출받아 평가를 진행한 뒤 종합 평점 95점 이상인 업체를 낙찰자로 결정한다. 1994년 준공 이후 올해로 29년 차인 엠브이아파트는 리모델링으로 기존 154가구에서 177가구로 23가구 늘어난다.
강동구 암사동 ‘선사현대아파트’도 리모델링 사업이 한창이다. 이 단지의 1차 안전진단 용역 업체 선정을 위한 참가 신청서 접수 마감일은 오는 11일이다. 선사현대아파트 리모델링 조합은 이와 별개로 빠르면 3월 말에 시공사 선정 총회를 개최할 계획이다. 시공사 선정 이후 연말까지 건축?도시계획심의를 통과한다는 목표다.
이 단지는 지하 3층~지상 28층, 16개 동, 2938가구 규모의 대단지다. 수평 증축으로 200가구 늘어난 3138가구로 변신하면 강동구 가락쌍용(2064가구), 성동구 금호벽산(1707가구) 등을 뛰어넘는 국내 최대 규모의 리모델링 단지가 될 것으로 보인다. 수직 증축 시에는 300가구 정도 확보할 수 있다는 게 조합 측 설명이다.
이들 단지는 이번 안전진단에서 C등급 이상(수직 증축은 B등급 이상)만 받아도 리모델링을 추진할 수 있다. 안전진단에서 D등급 또는 E등급을 받아야 하는 재건축보다 안전진단 통과 문턱이 낮다는 의미다. 재건축 가능 연한은 준공 30년 이상인 반면, 리모델링은 그 절반인 준공 15년 이상이다.
이에 재건축 대신 리모델링을 택하는 노후 단지는 늘고 있다. 한국리모델링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조합 설립을 마친 리모델링 추진 단지는 전국 94곳(6만 9085가구)에 달한다. 이는 2020년 58곳(4만 3155가구)보다 36곳(2만 5930가구) 증가한 수치다. 2019년(37곳, 2만 3935가구)과 비교하면 증가세는 더 두드러진다. 건설업계는 올해 아파트 리모델링 발주 물량이 19조 원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
리모델링 시장이 커지자 추진 단지들은 연대를 강화하며 목소리를 키우고 있다. 서울 리모델링 조합 44곳, 추진위원회 26곳으로 구성된 ‘리모델링 주택조합 협의회’는 최근 출범 이후 활동을 시작했다. 협의회는 구성원 간 정보 공유를 확대뿐만 아니라 리모델링 특별법 제정 등 제도 개선에 힘을 모을 계획이다. 이에 앞서 경기 산본과 편촌 등 1기 신도시의 노후 단지도 리모델링 연합회를 결성한 바 있다.
이에 더해 여야 대선 주자들이 주택 공급 확대 차원에서 리모델링 확대를 공약으로 내걸면서 사업 추진에 탄력이 붙을 것이란 기대감은 커지고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리모델링 특별법 제정으로 가구 수 증가와 수직 증축을 지원하겠다고 약속했고,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는 1기 신도시에 대한 용적률 완화로 리모델링 등 정비 사업 활성화를 모색하겠다고 공약했다. 이들은 서울시 리모델링 주택조합 협의회 발대식에 보낸 축사에서도 리모델링 지원책 마련에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선사현대아파트 리모델링 조합 관계자는 “여야 후보 중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리모델링 추진 여건은 지금보다 더 좋아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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