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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리포트]1500조 곡물전쟁 불붙었는데…식량안보 플랜B도 없는 韓

[박현진 고려대 생명공학부 교수-위태로운 한국의 식량 자주권]

코로나 엎친데 러시아 - 우크라 사태 덮쳐

밀·옥수수 가격 급등…식량보호주의 확산

中, 보리·해바라기씨유 등 공급망 다변화

日은 곡물수입터미널 만들어 식량난 대응

韓도 2025년 농업용 중형 위성 발사 맞춰

美처럼 정부 주도 '한국판 카길' 육성 시급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밀과 옥수수 등 곡물 가격이 급등세를 보이는 가운데 세계 각국의 식량 보호주의가 확산되고 있다. 그동안 꾸준히 제기된 곡물 가격 급등과 각국의 식량 보호주의가 우크라이나 사태로 또다시 전 세계를 강타한 것이다. 하지만 한국은 이 같은 식량안보 관점에서 여전히 취약점을 고스란히 노출시키면서 전 세계의 식량 보호주의를 지켜만 봐야 하는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우크라이나의 경지율은 약 70%에 달해 구소련 시절부터 곡창지대로 알려져왔다. 비옥한 땅에서 밀과 옥수수·보리 등을 대량생산하는 만큼 세계 각국의 우크라이나에 대한 식량 의존도는 높은 편이다. 실제 세계 밀 수출량 비중에서 우크라이나는 9.8%로 5위에 달하고 러시아는 15.8%로 2위를 기록하고 있다. 옥수수 역시 우크라이나(13.8%·4위)와 러시아(2.3%·6위)의 비중이 높다.

이 같은 상황에서 우크라이나 정부는 이달 9일 곡물 수출 금지 조치를 내렸다. 이에 따라 밀과 귀리·수수·메밀·설탕·육류·가축 등의 수출이 전면 중단된 상태다. 러시아 역시 우크라이나의 조치에 맞서 곡물의 자국 우선 공급 원칙을 내세웠다. 서방의 제재에 맞서 식품 시장의 안정을 유지하기 위한 조치라는 것이 이유다. 결국 곡물 가격 폭등 현상이 불거졌다. 우크라이나 정부의 금지 조치 이후 닷새 만인 14일 기준 미국 시카고 선물거래소에서 거래된 밀 가격은 전년 동기 대비 72.2%, 옥수수는 35.3%, 대두는 18.1% 상승했다.

한국은 최근 3년간 우크라이나에서 주로 밀과 옥수수를 사료용 및 식용으로 수입하며 연간 밀·대두·옥수수 수입량(1722만 톤)의 10% 수준을 의존했다. 전쟁 장기화로 인한 농경지의 황폐화, 노동력 및 비료 부족으로 파종면적이 감소하고 이에 따른 수급 차질 문제가 전쟁 이후(최대 6개월)까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우려된다. 한국은 식량자급률이 45.8%, 축산물에 이용되는 사료 등을 포함한 곡물자급률은 21.0%(2019년 기준)에 그친다. 우리가 먹는 식량의 절반도 자체 조달하지 못하고 있는 형편인 것이다. 결국 필요한 식량을 국제시장에 의존하는 구조다. 하지만 국제무역과 수입을 통해 조달하는 식량에 문제가 발생할 경우 우리의 식량안보는 무너지게 된다. 우리가 식량안보를 강화해야 하는 이유다.





세계 각국의 대응
우크라이나로부터 밀을 수입하는 국가는 유럽(46%)과 아시아(23%)에 집중돼 있다. 그중 밀 최대 소비국은 이집트다. 이집트는 빵을 주식으로 하는 만큼 세계 최대의 밀 수입국이고, 수입량의 80%를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로부터 들여온다. 이집트 통계청에 따르면 올 2월 식료품 물가는 1월 대비 17.6% 상승했다. 또한 3월 11일부터 3개월간 밀을 포함한 렌즈콩·파스타·파바콩 등 기초 식료품의 수출 금지 조치를 시행했다. 이집트는 인구 대비 세계에서 밀 생산량이 가장 높은 국가이기도 하다. 밀 자급률을 제고하기 위해 2017년까지 10년간 밀 생산성을 18%가량 증가시키고 민간 농기업과 파트너십을 맺는 등 밀 생산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또 빵 가격 인상을 억제하기 위해 오래전부터 밀 보조금 정책을 수립하는 등 여러 조치를 시행해왔다.
중국은 전쟁이 장기화되자 곡물 확보에 나섰다. 그동안 우크라이나로부터 옥수수·보리를, 러시아에서 해바라기씨유 등을 수입해온 만큼 다른 나라에서 곡물을 확보하기 위해 방향을 틀었다. 특히 우크라이나에서 수입하는 옥수수 비중이 30%인 만큼 옥수수 가격이 37% 급등했다. 이에 중국은 미국산 옥수수와 대두 수입을 늘렸다. 중국 현지 언론은 수입산 옥수수 대신 중국산 옥수수를 이용하거나 사료용 곡물로 수수·보리 등 대체재를 찾을 것으로 전망했다. 헝가리나 터키·아르헨티나 등도 자국의 식료품 가격 안정화를 위해 밀 등 주요 곡물 수출에 대한 통제 강화에 나섰다. 인도네시아는 팜유 수출을 통제했다.
한국은 곡물 문제에서 여러 나라와 상황이 사뭇 다르다. 수입의존도가 다른 나라보다 훨씬 큰 국내에서 할 수 있는 방안은 수입의 방향을 돌려 다방면에서 접근성을 유지 혹은 높이는 게 우선일 것이다. 실제 2월 농림축산식품부는 ‘국제곡물수급대책위원회’를 개최해 우크라이나산 옥수수의 기존 계약 물량 도입이 어려울 경우 타 원산지로 변경하고, 신규 계약 시 안정적 공급이 가능한 원산지로 입찰을 추진하는 방안 등을 결정했다. 식량안보에서 안전성을 확보하는 방안으로 사료용 곡물의 안전 재고 일수를 60일로 확대하거나 곡물 사용량을 낮추기 위한 밀·옥수수 간 배합 비중 조정 등이 전부였다.
그러나 우리는 근본적이고 장기적인 방향에서 식량 주권을 회복하기 위한 방안을 찾아야 한다. 우리나라처럼 쌀을 제외한 곡물의 수입의존도가 높은 일본은 미쓰비시나 마루베니 등 일본계 종합상사에서 곡물 수입 터미널 확보를 통해 식량 자주권을 높였다. 곡물 터미널을 가지게 되면 일종의 식량 창고를 확보하는 효과를 얻어 수시로 변동하는 곡물 가격의 완충 역할을 할 수 있게 된다.

접근성을 유지하거나 높여 식량안보를 강화하는 방안 외에 식량자급률을 제고해 식량 자주권을 찾는 방법도 있다. 놀랍게도 한국에서는 현재 식량의 3분의 1을 버리고 있다. 직접적인 식품의 가용 기간을 표시하는 소비 기한 표시로 전환하는 것도



음식물 쓰레기 낭비를 줄이는 방안이 된다. 또 쌀이 남아돈다는 착시 현상에서 벗어나 식량 생산 향상과 농업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정책 등으로 시급히 전환해야 한다. 농사를 짓는 사람만 농지를 소유할 수 있는 허울뿐인 경자유전의 원칙 강화나 유휴 농지에 대한 경작 지원 등으로 농업을 더욱 활성화시켜 자급률을 높일 수 있다.
과거 우리는 2011년에 곡물 유통 회사 aT그레인컴퍼니를 설립해 곡물 메이저와의 합작을 시도하다 실패한 바 있다. 일본의 경우 수십 년 전부터 섬나라의 곡물 자급자족 한계를 인지하고 정부가 주도적으로 나서 민간의 해외 곡물 터미널 지분 참여와 인수, 곡물 회사 인수 등을 유도했다. 한국 역시 현재 포스코인터내셔널과 하림의 경우처럼 해외 곡물 터미널 지분 참여와 인수 등에 나섰지만 정부 차원의 적극적인 지원이 절실한 형편이다. 민간이 앞서서 곡물 회사 등을 인수할 수 있는 상황을 조성해 자급자족할 수 없는 환경을 개선하는 데 나서야 하는 이유다. 특히 우크라이나 사태처럼 각국이 곡물 수출 금지 조치를 내릴 경우 곡물 회사를 운영한다고 해도 한국으로의 수입이 자유롭지 못한 만큼 정부가 국가 간 협약을 통해 비상사태에도 한국으로의 곡물 수출이 가능하도록 협약을 체결해 비상 플랜 준비에 나서야 한다.
코로나19가 확산될 당시 러시아·베트남 같은 곡물 수출국이 긴급 수출 중단 조치를 취했다. 세계 교역망이 붕괴될 조짐을 보이자 자국의 식량안보를 강화하기 위해 생산된 곡물의 해외 반출을 금지한 것이다. 만약 부산항과 인천항이 한 달간 제 기능을 하지 못했다면 우리나라는 식량 부족으로 끔찍한 일이 벌어질 수 있었다.
세계 1위 곡물 기업 카길은 자체 인공위성으로 세계 주요 농장의 상황을 매일 모니터링할 수 있을 정도다. 미국 농무부 장관마저 카길의 식량과 현물 시장에 대한 정보력이 미 중앙정보국(CIA)보다 뛰어나다고 평가했다. 전 세계 1500조 원 규모의 국제 곡물 시장 플레이어의 현주소다. 반면 한국은 2025년에 농업용 중형 위성을 발사할 예정이다. 한국판 카길 육성을 위한 첫발을 내디뎌야 할 때다.






박현진 교수는…고려대 식품공학과를 졸업한 뒤 미국 조지아대에서 식품공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정회원(2014)으로 선임된 데 이어 미국 식품과학회(IFT) 석학회원(2015), 세계식품공학회(IUFoST) 석학회원(2016)으로 선출된 바 있다. 현재 한국식량안보연구재단 이사장을 겸임하고 있으며 한국의 식량 자주권에 대한 관심이 높다. 2020년에는 과학기술훈장 진보장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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