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덤 스미스는 자유기업 경제 창달에 가장 큰 장애 요인은 정부라며 작은 정부가 필수라는 점을 강조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반복적으로 강조한 것도 작은 정부다. 이창용 한은 총재 후보자는 “규제 개혁, 노동시장 유연성이 잠재성장률을 높일 최우선 과제”라고 말했다. 방향은 모두 옳다.
한국에서 끊임없이 새로운 규제가 나타나는 이유 중 하나는 국회의 입법권 남용 때문이다. 의원들은 표를 얻고자 민원인들이 요구하는 것을 법률로 만들려고 나서는데 힘센 의원이 수준 낮은 법안을 제출해도 이념을 담으면 당론으로 채택되고, 당 소속 모든 의원이 덮어놓고 찬성한다. 너무 쉽게 법률이 만들어진다. 21대 국회에서 어떤 날은 하루 동안 무려 181개 법안이 발의되기도 했다.
한국과는 반대로 일본에서는 의원입법이 매우 드물고 정부 제출 법안인 각법(閣法)이 대부분이다. 의원입법이 어려운 것은 의원들이 법을 만들 엄두를 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한국처럼 법학을 제대로 공부한 적도 없던 사람이 갑자기 국회의원이 되는 경우가 많다. 일본 국회의원들에게는 한국처럼 의원 1인당 7~9명씩이나 되는 보조 인력을 붙여주지도 않고, 입법보좌관제도도 없다. 국회 소속 공설 비서 3인 외에 필요하면 중의원 조사실, 참의원 조사실 소속 공동 인력을 이용해야 한다.
예컨대 법무성 관련 법률 제정에는 법무성과 법제국(한국의 법무부와 법제처) 두 기관이 관여한다. 법무성은 임기 2년의 위원 20명 이내로 구성된 ‘법제심의회’를 둔다. 심의회 위원은 학식과 경험이 풍부한 자 중에서 법무대신이 임명한다. 법제심의회에는 총회와 몇 개의 한시 조직인 부회(部會)를 두는데, 형사법부회·민사법부회·상사법부회 등을 둔다. 부회는 의견 수렴 절차를 거쳐 ‘중간보고서’와 ‘최종보고서’를 만들어 ‘법률요강안’을 확정한다. 의견 수렴 절차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제시된 의견에 대해 부회가 답한다. 요강안이 법제심의회를 통과하면 ‘법률요강’이 되고, 법률요강은 법무대신이 각료회의에 상정해 각의에서 승인, 의결되면 ‘법제국’으로 넘어가 법률안이 만들어진다. 법안 입안 작업은 법제국 고위직 담당자(통상 대법관 후보)가 수행하므로 법안 자체의 완성도가 매우 높다. 여기서 만든 법안이 중의원(하원)과 참의원(상원)을 통과하면 총리가 이를 공포해 법률로 탄생한다. 이처럼 길고 긴 과정을 거쳐 하나의 법률이 탄생한다.
한국에는 의원입법 범람을 보장하는 법률이 있다. 바로 ‘행정규제기본법’이 그것이다. 이 법률은 불필요한 행정 규제를 폐지하고 비효율적인 행정 규제의 신설을 억제하기 위한 것이다. 이를 위해 규제 영향 분석 및 자체 심사, 규제를 신설하거나 강화할 경우 공청회, 행정상 입법예고 등 의견 수렴, 기존 규제의 정비 등 중요한 절차를 규정한다.
그런데 이 법률 제3조 제2항에는 국회와 법원·헌법재판소·선거관리위원회 및 감사원이 하는 사무는 이 법률을 적용하지 않는 것으로 규정한다(제1호). 국회의 사무란 ‘입법’이 주요 사무인데 의원입법의 경우 규제 영향 분석 및 자체 심사, 공청회, 입법예고 등 주요 의견 수렴 절차가 필요 없는 것으로 규정된 것이다. 그러므로 정부 관리조차 스스로 법안을 낼 생각을 않고 국회의원을 섭외해 그 의원 이름으로 법안을 제출한다. 위 제1호는 아주 잘못됐다. ‘국회’라는 문구를 삭제해야만 한다.
작은 정부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작은 국회다. 실력도 없는 국회의원이 행정규제기본법을 피해 온갖 포퓰리즘 악법을 만들어내므로 국민이 견딜 수가 없다. 부실한 의원입법에 대해서는 국민이 제동을 걸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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