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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브러리] 동거보다는 가까운 결혼보다는 먼 그 이름, 'PACS'

단순 동거도 결혼도 아닌 새로운 가족의 결합인 PACS

동성 결혼 합법화 후 오히려 결혼보다 높은 선호도 보여

새로운 의미의 PACS를 모색하는 움직임도 있어








우리나라의 민법 제779조는 가족 범위를 배우자, 직계혈족, 형제자매로 정하고, 생계를 같이하는 경우 직계혈족의 배우자, 배우자의 직계혈족 및 배우자의 형제자매로만 규정한다. 현행법상 국가는 혈연이나 혼인 관계로 이어진 사람들만을 가족으로 인정하고 있다. 법은 ‘생계를 같이하는 경우’의 조건을 포함하고 있는데 생계를 같이 한다면 혈연관계나 혼인을 한 관계가 아니더라도 ‘가족’임을 인정할 수 있다는 예외를 내포한다.

하지만 이 또한 혼인에서 파생된 관계만을 인정하고 있다는 한계가 있다. 만약 혼인하지 않고 오랫동안 함께 생계를 같이하는 동거인이 있다면 이들은 가까운 관계라고 볼 수 있더라도 정작 법적인 가족으로는 인정하지 않는다.

가족 구성원이 점점 다양해지면서 혼인이나 혈연관계로 이어지지 않았더라도 가족의 지위를 인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 움직임의 일환으로 2014년 당시 진선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생활동반자법 발의를 시도했다. 생활동반자법은 혼인이나 혈연관계가 아니라도 함께 살기로 한 다양한 형태의 공동체에 법적 권리와 복지 혜택을 부여하는 법안이다. 하지만 이 법안은 빛을 보지는 못했다.

우리나라의 상황과는 달리 더 다양한 가족 구성이 있는 프랑스에는 꼭 결혼이 아니더라도 함께 사는 사람과 ‘가족’임을 인정받을 수 있도록 하는 제도가 있다. 프랑스에서는 어떤 제도를 통해 ‘혼인이나 혈연관계가 아닌 가족’을 보호하고 있는 것일까.

단순 동거는 아니고 결혼도 아닌 PACS


프랑스에는 PACS라는 제도가 있다. PACS는 시민연대계약의 줄임말로(Pacte civil de solidarite) 두 성인이 서로의 관계를 법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제도다. 1999년 제정된 PACS는 프랑스 민법 제515-1조에 따르면 ‘공동생활을 위해 이성 또는 동성의 2명의 성년자에 의해 체결되는 계약’이라 규정된다. PACS는 프랑스 동성 사실혼 관계의 법적 보호에서 시작됐다. PACS가 등장할 무렵 프랑스는 동성에 대한 사실혼 관계를 인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당시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 등 프랑스 주변국에서는 동성 관계에 관해 법률로 규정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시대적 흐름에 따라 PACS가 등장했다.



PACS는 2006년과 2016년 두 번의 개정이 이뤄졌다. 2006년 이전에는 PACS 여부가 어떠한 공문서에도 적시되지 않았으나 그해 법 개정 이후 출생증명서에 기재되도록 변경된다. 또한, 파트너와의 재산에 대해 별산제로 인정하기로 한다. 별산제는 PACS 관계의 파트너가 각각 자기의 재산을 관리하는 것을 말한다.

이후 2016년 개정에서는 PACS 신고의 담당이 법원에서 시청으로 이전됐고 공증인을 통해서도 신고가 가능해진다. 프랑스에서는 보통 시청이나 종교적 공간에서 결혼식을 올린다. 박준혁 파리1 팡테온 소르본대학 법학박사는 "법안의 개정 이후 PACS도, 심지어 동성애 PACS까지 시청에서 등록할 수 있게 되면서 당사자들의 심리적인 안정감도 고려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렇게 PACS라는 관계를 맺고 나면 국가에서 발급하는 증명서에 PACS 여부가 기록되고 파트너로서의 법적 권리와 의무를 지게 된다.

동성결혼 합법화 이후에도 건재한 PACS…결혼보다도 높은 선호




PACS는 동성 파트너십의 인정에서 시작했지만, 프랑스에서 동성 결혼이 합법화된 2013년 이후에도 여전히 남아있다. 프랑스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전체 PACS 신고 수에 대한 동성 커플의 구성 비율이 2006년에는 7%, 2009년에는 6%, 2010년에는 약 4.5%에 불과했다고 한다. 대다수 PACS 관계를 맺는 파트너는 이성 커플인 것이다. 이는 최근 결혼에 담긴 종교적·전통적 사고방식에 동의하지 않고 간소한 결합 방식을 원하는 이성 커플도 많아졌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전통적 의미의 결혼과 비교했을 때도 PACS 선택의 비율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지난 2008년 혼인신고와 PACS 신고의 비율은 2대 1이었다. 이 같은 수치는 불과 2년 뒤 4대 3으로 비슷해지고 10년이 더 지난 현재는 혼인과 PACS의 신고 수가 거의 비슷해졌다. 프랑스 통계청의 연구에 따르면 2020년 기준 프랑스 본토의 결혼 건수는 15만 4,581건이고 PACS는 17만 3,894건으로 조사됐다. 이미 프랑스 내에서는 숫자 면에서 PACS가 결혼을 앞질렀음을 알 수 있다.

결혼·PACS·단순 동거, 다르지만 ‘가족 구성원’ 보호라는 대의는 비슷






결혼과 PACS, 단순 동거의 차이는 다음과 같다. 결합 기간 중 소득세와 부채, 사회보장급여, 휴가권은 결혼과 PACS 모두 동등한 혜택이 적용된다. 다만 외국인과의 결혼했을 경우 외국인 배우자에게는 시민권이 부여된다.

하지만 PACS 관계의 외국인 파트너에게는 1년이 지나면 매년 갱신이 필요한 임시거주권이 발급되고 5년이 지나야 10년간 유효한 영주권 지원 기회가 주어진다. 단순 동거의 경우는 건강보험 외에 파트너와 함께 누릴 수 있는 혜택이 없다.



파트너 관계가 해소된 이후에는 더 다양한 차이가 생긴다. 특히 재산과 상속 분야에서 가장 큰 차이를 보인다. 결혼한 부부는 결혼 이후의 재산을 공동 소유로 간주해 배우자의 동의 없이 재산을 처분할 수 없지만, PACS는 절반씩 공동 소유로 추정만 할 뿐 간주하지는 않기에 상대방의 동의 없이 본인 명의 재산 처분이 자유롭게 가능하다. 단순 동거는 명의에 따라 완전히 독립적인 각자의 재산이다.



상속과 거주권에서는 ‘결혼 > PACS > 단순 동거’ 순으로 혜택의 정도가 달라지고 유족 연금은 결혼한 사이에서만 받을 수 있다. 위자료에 대한 규정도 결혼에만 존재한다.

자녀에 대한 성립 요건에도 차이가 있다. 결혼은 혼인 중 태어난 아이에 대해 아버지가 자동으로 친권을 승계하지만, PACS나 단순 동거 관계에서 태어난 아이는 아버지임을 확인하는 증명서가 있는 경우에만 친권이 성립한다.

하지만 친권 성립 후 1년 이내라면 자동으로 공동 양육권 획득이 가능하고 부모의 상의하에 아이가 누구의 성을 따를 것인지 결정할 수 있다.

입양은 결혼 당사자에게만 인정되고 PACS 관계에서는 불가하다. 하지만 지난 2020년 12월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소속당인 ‘전진하는 공화국’에서 “입양도 PACS 당사자에게 인정하자”는 수정안을 제시하기도 해 이에 대한 변화는 언제고 일어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자유로운 PACS 관계, 마무리도 자연스러울까?




PACS를 해지하고 싶을 경우 그 과정은 간단하다. 서로 합의했다면 시청에 간단한 서류를 보내는 것으로 PACS 해지가 가능하다. 심지어는 한 사람이 파기를 원할 경우에도 시청에 PACS를 해지하겠다는 집행 영장을 보내면 시청에서 상대에게 그 의사를 전달하고 PACS 관계는 마무리된다. 둘 중 누군가 결혼을 하게 될 경우에도 기존의 PACS는 자연스럽게 해지된다. 위자료에 대한 규정도 존재하지 않지만, 민사계약이기에 해지의 원인을 제공한 쪽에 손해에 대한 배상을 요구할 수는 있다.



결혼보다 가벼움을 추구하는 이들에게 선택되고 있는 PACS는 관계 해소 절차가 결혼에 비해 쉽기 때문에 헤어지는 관계가 많을 것 같다는 불안함이 들 수 있다.

하지만 지난 2017년 프랑스 일간지 ‘르 몽드’에 실린 프랑스 경제통계연구원 자료에 따르면 PACS를 해지하는 비율은 전체의 10분의 1 정도로 낮다고 한다. 프랑스 내 결혼한 부부의 3분의 1이 이혼을 결정한다는 통계에 비하면 현저히 낮은 수치다.



현재 프랑스의 PACS 제도는 혼인제도가 부담스러운 당사자들이 선택하는 제도로서의 의미가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이 의미마저도 PACS를 신고하지 않는 동거 커플이 많다는 점에서 옅어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프랑스 통계청의 조사에 따르면 2011년 18~19세의 실제 동거하고 있는 커플 중 PACS를 맺어 신고한 비율은 단 3%밖에 되지 않으며 27~37세 동거 커플의 PACS 비율은 7%에 불과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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