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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움직여도 돼요?” 기장의 무책임한 행동이 낳은 비극적인 비행 사고 [지브러리]

1994년 3월 23일 러시아서 발생한 비행기 추락사고

승객·승무원 등 탑승객 75명 전원 사망해

기장이 조종실의 외부인 출입을 허락해 '대형 재난' 벌어져

‘아에로플로트 593편’과 유사한 사건 때마다 재조명돼









1994년 3월 23일, 항공 역사상 가장 어이없고 비극적인 ‘비행기 추락 사고’가 발생했다. 사고의 직접적인 원인은 ‘조종석에 앉았던 사람’에 있었다. 기장이 자신의 두 자녀를 조종석에 앉힌 게 추락사고의 원인이었던 것. ‘아에로플로트 593편 추락 사고’로 비행기에 타고 있던 승객 63명과 승무원 12명은 전원 비명횡사했다. 도대체 기장은 왜 자녀를 조종석에 앉혔던 것일까. 그리고 아이의 어떤 행동이 비극적인 참사를 만들어냈던 것일까.

기장의 ‘순진한’ 착각, “자동비행 중이니 잠깐은 괜찮지 않을까?”


러시아 최대 항공사인 국영 아에로플로트 593편(에어버스 310)엔 세 명의 조종사가 탑승해 있었다. 바로 빅토르 다닐로프(Andrey Viktorovich Danilov) 기장, 야로슬라보 쿠드린스키(Yaroslav Vladimirovich Kudrinsky) 기장, 이고르 피스카레프(Igor Vasilyevich Piskaryov) 부기장이다. 이처럼 세 명의 조종사가 한 비행기에 탑승한 이유는 비행 시간이 ‘13시간 39분’에 달하는 장거리 비행이었기에 다닐로프와 쿠드린스키가 나눠서 조종하기로 한 것이다. 다닐로프가 러시아 모스크바 셰레메티에보 국제공항에서 모스크바를 벗어나기 전까지 조종하면 모스크바 이후부터는 쿠드린스키가 조종해 홍콩 카이탁 국제공항에 도착하는 일정이었다.

이륙한 지 약 4시간 만에 비행기는 모스크바 구간을 벗어나 노보쿠즈네츠크 상공에 도착했다. 다닐로프는 조종간을 쿠드린스키에게 넘겨준 뒤 휴식을 취하러 객실로 이동했다. 쿠드린스키와 피스카레프가 조종실을 지키고 있을 무렵, 쿠드린스키의 두 자녀인 12살 딸 야나(Yana)와 16살 아들 엘다(Eldar)가 조종실을 방문했다. 쿠드린스키는 가족 간의 첫 해외여행을 계획해 자녀와 함께 비행기에 탑승한 것이었다. 자녀가 조종실에 들어가고 싶다는 의향을 비치자 쿠드린스키는 “자동비행 중이니 잠깐은 괜찮지 않을까?”라는 안일한 생각으로 외부인의 출입을 허락한다. 조종실은 외부인의 출입이 엄격하게 금지돼 있어 쿠드린스키의 행동은 엄연한 불법이었다.

쿠드린스키 기장의 가족사진. /출처= Wonder 다큐멘터리 ‘Mayday’ 캡쳐


쿠드린스키는 먼저 야나를 왼쪽 조종석에 앉혔다. 야나는 조종간을 잡고 이리저리 움직이며 마치 조종사가 된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럼에도 비행기는 자동비행 중이었으므로 실제로 비행기를 제어할 수는 없었다. 그저 체험만 할 뿐이었다. 이후 엘다도 왼쪽 조종석에 앉아 야나처럼 조종간을 잡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엘다는 야나보다 4살이나 많았고 남자 아이였기 때문에 힘이 셌다. 그래서 엘다가 조종간을 잡고 이리저리 흔들자 자동조종장치는 그만 풀려버리고 말았다. 당시 아에로플로트 593편의 기종인 에어버스 310의 자동조종장치는 수십초 이상 일정한 힘을 가하면 일부 시스템이 해제돼 수동 제어로 전환되는 장치였다.

엘다가 조종간을 잡은 뒤 비행기가 항로를 이탈하자 곧바로 무음 경고등에 빨간불이 들어왔다. 하지만 기장과 부기장은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쿠드린스키와 피스카레프는 각각 8940시간, 5885시간 이상을 비행한 노련한 조종사였지만 줄곧 조종해왔던 소련제 비행기는 경고음이 탑재돼 있어 경고등의 존재를 미처 몰랐던 것이다.



당시 상황을 재연한 시뮬레이션. 아에로플로트 593편이 추락하고 있다. /출처= 유튜브 ‘MorfoAtari’ 캡쳐


초기대응을 하지 못해 비행기는 점차 오른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기장과 부기장이 문제를 발견했을 땐 이미 기체가 180도 뒤집힌 상태였다. 혼란스러운 두 조종사는 9초 동안 계기판을 멍하니 바라봤다. 뒤늦게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기체가 45도 각도에서 90도 각도로 기울어진 상태였다. 골든타임을 놓친 593편은 양력이 급격하게 떨어지는 실속 상태에 빠진다. 두 사람의 안간힘도 상황을 뒤집긴 어려웠다. 결국 593편은 70m/s(14,000ft/min)로 추정되는 높은 수직 속도로 추락했다.

아에로플로트 593편은 이륙한지 약 4시간 30분 만에 러시아 케메로보주 쿠즈네츠크 알라타우산맥의 언덕에 추락했다.

피해자들의 억울함은 누구에게 물어야 하나


사고 직후 당시 조종을 누가 맡았느냐를 두고 논쟁이 벌어졌다. 아에로플로트 항공사는 사고 직후 아이들이 조종석에 타고 있었다는 사실을 부인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6달 뒤인 1994년 9월 28일, 잡지사 오보즈레바텔(Obozrevatel)이 비행기록장치 내용을 발표하자 항공사는 해당 사실을 인정했다.

추락사고로 인해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훼손된 아에로플로트 593편. /출처=영국 항공 데이터베이스 업체 ‘Tailstrike’


규정을 어긴 기장의 무책임한 행동으로 한껏 부푼 마음을 안고 비행기에 탄 승객들은 단 몇 시간 만에 희생자가 됐다. 하지만 책임을 물어야 할 인물이 모두 세상을 떠났으니 피해자의 가족들은 누구에게도 그 책임을 물을 수조차 없게 됐다.

이와는 별개로 사고 브리핑 당시 ‘조종석이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상태에서 조종사가 조종간에서 손을 놓았다면 항공기가 실속 상태에서 회복해 정상 운행을 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발표가 나와 안타까움을 자아내기도 했다. 조종실에 있던 두 조종사 중 한 명이라도 정신을 제대로 차렸다면 충분히 수많은 생명들을 살릴 수 있었던 것.

‘아에로플로트 593편 추락사고’는 2017년 10대 소년이 비행 중인 알제리 항공 여객기 조종석에 앉아 조종 장치를 조작한 사건, 2020년 ITX 청춘 열차 기관사의 가족이 운전실에 들어가 6개 역을 운행한 사건 등 유사한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재조명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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