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국장을 통과할 때 아주 간결한 폰트의 글씨로, 그렇지만 아주 커다랗게 쓰여 있는 한 문장을 발견했다. “Keep” ‘뭐지? 뭘 지키라는 거지?’ “Keep the…” 먼저 출국장을 통과하는 사람들이 서서히 움직여 이동하면서 가려졌던 뒤의 단어가 전체 모습을 드러냈다. “Keep the Sunshine(햇살을 간직해)” 위장 아래쪽으로부터 따뜻함이 번져올랐다. 마치 햇볕 아래에 섰을 때처럼. 컴컴한 아침의 공항이었지만 여행 내내 봐왔던 찬란한 해가 소환되어 머리 위로 펼쳐졌다. 퀸즐랜드주 곳곳의 햇살 찬란한 여러 장면이 여행의 추억으로 쌓였기 때문이다. 나는 이보다 더 단순하고 강력한 주문을 본 적이 없다. (황선우·김하나, ‘퀸즐랜드 자매로드’, 2022년 이야기나무 펴냄)
황선우, 김하나 작가는 한집에 산다. 가족이 아님에도, 성격 차이가 엄청나도 둘은 한집에서 친구로, 동료로, 동거인으로 서로를 이해하고 탐구하며 살아간다. 두 여자가 집을 떠나 호주로 떠난다. 짐가방을 쌀 때부터 어마어마한 세계관의 차이를 보이며 포복절도하게 하는 두 여자의 모험기는 페이지마다 장르가 휙휙 바뀐다. 한 장은 요절복통 시트콤이었다가 다음 장에선 장엄한 생태 다큐가 펼쳐지고, 코알라와 돌고래들이 눈을 깜짝이며 인사하는 귀여운 동화 속 세계가 열렸다가, 돌연 서핑과 액티비티에 몸을 던지는 열렬한 스포츠영화가 상영되기도 한다. 두 여자의 멋진 모험의 끝자락에 축복 같은 문장이 걸려 있다. “Keep the Sunshine(햇살을 간직해)” 이것은 방문객에게 퀸즐랜드의 햇살을 잊지 말아달란 작별인사인 동시에, 당신의 몸과 삶에 새겨진 그 고유하고 찬란한 빛을 잃지 말라는 축원의 말이 아니었을까.
오늘로 3년간 이어온 공감을 떠난다. 매주 다른 공감의 문장들을 전했으나, 어쩌면 모든 문장이 이 강력한 주문의 변주였던 것도 같다. 세상이 온통 캄캄할지라도, 부디 당신의 햇살이 꺼지지 않기를. /이연실 출판사 이야기장수 대표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