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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뽀]극한의 전투기 비행환경 체험…중력가속기 '짤짤이'에 타니 영혼까지 원심분리

국방부 출입기자단, 공군 항공우주의료원 방문

파일럿 예비 관문인 '비행환경적응훈련' 실시

중력 6배 힘에 짓눌려 기절 직전 상태 몰리고

급격한 방향 전환에 상하좌우 구분 힘들 지경

조종석 사출훈련에선 둔기로 맞은 듯한 충격

극한직업 파일럿 육성에 정부 예산 아껴선 안돼

국방부 기자단이 지난 16일 충북 청주에 위치한 항공우주의료원 산하 항공우주의학훈련센터에서 '공군 비행환경 적응훈련'을 체험하고 있다. 사진은 서울경제신문 민병권 차장이 센터내에 설치된 비상탈출훈련장비에 탑승해 조종석 사출과정을 체험하는 모습. 사진제공=공군




지난 16일 충북 청주시 상당구의 공군 항공우주의료원(항의원)에선 이색 풍경이 펼쳐졌다. 평소 펜이나 마이크만 잡아보던 신문·방송기자들이 체중의 최대 6배 이상에 달하는 힘에 짓눌려 거의 졸도 직전에 이른 것이다. 예비 공군 조종사(파일럿)이 되기 위한 필수 관문 중 하나인 ‘비행환경적응훈련’에 참가한 국방부 출입기자들이 실제 전투기 비행에 탑승한 것처럼 혹독한 중력·기압에 노출되고, 공간감각이 뒤집히는 상황을 체험했다.

이날 기자단이 방문한 항의원은 지난 1949년 10월 발족한 공군 유일의 병원 기관이다. 공군 장병들의 종합적인 건강을 돌보며 특히 파일럿 등 공중근무자들에 대한 전문 진료 임무를 수행한다. 항의원의 역할은 의료기관 범위에만 그치지 않는다. 파일럿을 비롯한 공중근무자들의 기초훈련을 담당하는 기관의 역할도 맡고 있다. 이를 위해 산하에 항공우주의학훈련센터를 두고 있다. 지난 2012년 10월 12일에는 항공우주의료분야 전문업체 미국 ETC로부터 첨단 장비 6종을 도입하고 센터를 신축하는 등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

충북 청주에 위치한 항공우주의료원 산하 항공우주의학훈련센터의 전경.민병권 기자


이번에 기자단이 체험한 비행환경적응훈련도 항의원이 실시하는 기초훈련중 하나다. 항의원은 이 같은 각종 훈련·의료활동 등을 통해 얻은 기초데이터를 기반으로 정예 파일럿 육성 등을 뒷받침하기 위한 항공우주의학 연구도 맡고 있다. 항의원이 실시하는 비행환경적응훈련은 가속도 내성훈련, 비상탈출훈련, 비행착각훈련, 야간시각훈련, 고공저압환경훈련, 고압산소치료훈련 등으로 구성된다. 기자단은 이중 '비행착각훈련→비상탈출훈련→가속내성훈련→고공저압환경 및 야간시각훈련’의 순서로 체험했다. 항의원 관계자는 “우리 공군 전투기 조종사들은 평소 수시로 고기동 비행훈련 등을 한번에 수시간씩 치루면서 극한의 중력가속도와 기압급변, 공간전위에 그대로 노출된다”며 “이 과정에서 극심한 정신적 스트레스를 견디고, 몸 곳곳의 실핏줄이 터지는 고통을 인내할 수 있도록 비행환경적응훈련을 파일럿 훈련이나 3년 주기 보수교육 과정에서 실시한다”고 설명했다.

국방부 기자단이 2022년 6월 16일 충북 청주에 위치한 항공우주의료원 산하 항공우주의학훈련센터에서 '공군 비행환경 적응훈련'을 체험하고 있다. 사진은 해당 센터 내에 설치된 공간정위상실(SD) 훈련실 내부 모습. 죄측의 장비에 훈련생도가 탑승하면 우측의 모니터링 요원이 장비를 작동시켜 가상의 비행환경을 구현하고 훈련상황을 살핀다. 사진제공=공군


◆"하늘과 땅이 헛갈려요"…비행착각훈련의 시련

비행착각훈련은 항공기 비행시 파일럿이 상하, 좌우, 전후를 제대로 판단하지 못해 사고를 일으키는 일이 없도록 공간감각 등을 향상사키는 과정이다. 전투기나 헬리콥터 등의 조종석과 유사하게 꾸며진 장비에 탑승해 실제 비행을 하는 듯한 가상의 상황을 겪게 된다. 항의원에는 이를 위한 시뮬레이터 장비 두 가지를 2012년 도입했다. 하나는 ‘GL-4000’다. 우리 군이 보유한 F-15전투기, UH-60 헬기를 비롯해 24종의 항공기 비행환경을 모사할 수 있다. 구현할 수 있는 항공기 비행 자세는 횡전(roll), 상·하 방향전환(pitch), 수평 방향전환(yaw), 원형가속도운동(planetary)의 4가지다. 이 과정에서 탑승자는 최대 중력의 3배(3G)까지 중력가속도 환경을 체험할 수 있다.

또 다른 장비는 자이로(Gyro)-IPT Ⅱ'다. F-16전투기, UH-60 헬기를 비롯해 17종의 항공기 비행환경을 모사 가능하다. 이 장비는 6가지의 항공기 비행자세를 구현한다. 횡전, 상승·하강, 수평 방향회전, 상하수직운동(heave), 전후 운동(surge), 좌우 운동(sway)이다.

국방부 기자단이 2022년 6월 16일 충북 청주에 위치한 항공우주의료원 산하 항공우주의학훈련센터에서 '공군 비행환경 적응훈련'을 체험하고 있다. 사진은 해당 센터 내에 설치된 공간정위상실(SD) 훈련실 내부 모습. 장비에 훈련생도가 탑승하자 현장 요원(앞쪽)이 장비 작동상황을 점검하고 있다. 사진제공=공군


기자들은 이중 GL-4000에 올라탔다. 마치 생선의 머리 부분만 토막낸 것처럼 항공기 조종석(콕핏) 부분 동체만 떼어낸 듯한 형태의 장비였다. 장비에 올라타자 항공기가 이륙해 비행하는 듯한 시뮬레이션이 시작됐다. 좌석 전방에 설치된 대형 디스플레이가 실제 주변 비행하는 듯한 주변 풍경을 보여줬다. 탑승 조종간의 조작에 따라 조종석이 상하, 좌우 등의 방향을 기울어졌다. 시뮬레이션 전환 도중 교관이 현재 비행자세가 어떻게 느껴지는지 수시로 물었다. 이에 대해 기자가 “기체가 한쪽으로 기울어진 것 같다”는 등으로 대답하자 교관은 “현재 수평자세로 비행중”이라고 알려줬다. 기자가 항공기가 날으는 자세를 실제와 다르게 인식하는 ‘비행착각’을 일으키고 있음을 일깨워준 것이다.

이 같은 비행착각의 원인에 대해 항의원 관계자는 “인간의 전정기관은 지면 위를 두 다리로 딛으며 내는 속도 내에서 (자세, 방향을 인지하도록) 진화했기 때문에 항공기가 공중에서 고속으로 가속하거나 감속하고, 방향전환을 할 경우 탑승자의 전정기관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비행기는 정상적인 자세로 날고 있는데 파일럿은 기체가 뒤집혀서 난다고 느끼거나 기체가 기울어졌는데도 수평이라고 착각하다가 사고를 낼 수 있다. 일반적으로 항공기 운영부대의 비행사고중 20% 안팎이 이 같은 비행착각으로 일어나므로 훈련을 통해 예방하고 있다고 항의원측은 전했다.

국방부 기자단이16일 충북 청주에 위치한 항공우주의료원 산하 항공우주의학훈련센터에서 '공군 비행환경 적응훈련'을 체험하고 있다. 사람들 뒷편에 있는 장치에 탑승해 조종석 사출 레버를 당기면 해당 장비 후면에 비스듬하게 윗쪽을 향해 있는 레일을 타고 조종석이 급격한 중력가속도를 받으며 공중으로 치솟는다. /사진제공=공군


2만 피트 이상 고공서 느낄 감압증 체험하니

극한에서 정신·체력 지키는 파일럿에 존경심

정예 공군 육성·관리에 국가적 투자확대 필요

◆솟구치는 조종석…생사를 가르는 최후의 활로

이어서 기자단은 비상탈출훈련에 돌입했다. 위기시 조종석이 콧핏 밖으로 사출되는 것을 체험하는 과정이다. 전투기 폭발이나 추락의 생사 위기 상황에서 조종사가 최후의 활로를 열 수 있도록 숙달시키는 것이다. 조종석이 사출될 때 파일럿에게 가해지는 순간적인 충격은 최대 중력의 약 20배(20G)에 달한다. 예를 들어 파일럿 몸무게가 70kg이라면 스무배인 1.4톤의 압력을 순간적으로 받게 되는 것이다. 이 같은 충격을 이기고 최대한 정신을 수습해 낙하산 등을 타고 안전하게 착륙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

기자들이 비상탈출훈련실에 들어서자 관련 장비가 눈에 들어왔다. 2012년 도입된 해당 장비는 F-16 전투기 앞머리 부분을 잘라 놓은 듯한 조종석과 여기에 이어져 측후방으로 경사진 레일 등으로 구성돼 있었다. 레일 높이는 대략 2층 건물에 해당하는 5.2m 정도였다. 탑승자가 조종석의 사출 레버를 당기면 헤당 레일을 따라 좌석이 고속으로 솟구친다. 실제 상황에선 사출시 조종사가 받는 충격이 최대 20G에 달할 수 있지만 자칫 목, 허리, 등에 큰 부상을 입을 수 있기 때문에 훈련장비는 최대 6G 이내로만 운용된다.

지난 16일 항공우주의학훈련센터내에 설치된 비상탈출훈련 장비에 탑승한 서울경제신문 민병권 차장이 비행기 조종석처럼 생긴 장치에 탑승(사진 왼쪽)한 후 사출 레버를 당기자 해당 장비 후면에 비스듬하게 윗쪽을 향해 있는 레일을 타고 조종석이 급격한 중력가속도를 받으며 공중으로 치솟고 있다(사진 오른쪽). /사진제공=공군


기자들은 실제 파일럿 복장과 헬멧 차림으로 사출 훈련장비에 올라탔다. 사출시 충격에 다른 부상 등을 견디기 위해 등과 목 부분 등을 조종석에 최대한 붙여야 했다. 좌석에는 탑승자가 올바르게 밀착해 자세를 취했는지 감지하는 센서가 있다. 밀착이 안 돼 있다면 사출이 진행되지 않도록 돼 있다. 그러나 기자들이 착용한 헬멧 등으로 인해 목과 좌석 사이에 물리적 간극이 생겨서 이를 좁혀가며 좌석에 목과 등을 밀착하기가 쉽지 않았다. 가까스로 밀착 자세를 만들자 교관이 카운트다운을 했고 숫자 세기가 끝나자 순식간에 조종석이 레일을 타고 공중으로 치솟았다. 이미 어느 정도의 충격을 각오를 하고 있었는데도 엄청난 중력가속도의 힘에 정신이 아득해지고 몸과 허리, 심지어 복부까지도 둔기로 얻어맞은 듯한 충격을 느꼈다.

평상시 지상에서 몸과 정신이 집중된 상태에서도 이처럼 어려운데 실전이라면 더욱 성공을 장담하기 힘들 것이다. 특히 파일럿이 초음속으로 공중전을 벌이는 혼란스러운 상황이라면 정확한 자세로 적시에 사출 레버를 당겨 비상탈출하는 것은 쉽지 않다.

이와 관련해 공군의 한 관계자는 “전투기가 아무리 비싸도 파일럿 한 사람 한 사람의 생명이 훨씬 귀하기 때문에 비행중 위험하면 주저하지 말고 비상탈출하라고 지침을 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서 “그럼에도 좁은 한반도 공역의 특성상 곳곳에 민가와 산업시설 등이 있어서 이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겠다는 사명감 때문에 마지막까지 조종간을 놓지 않고 민간인 지역을 회피하다가 (비상탈출 적기를 놓쳐) 순직하는 우리 공군 파일럿들이 적지 않았다"고 전했다.

충북 청주에 위치한 항공우주의료원 산하 항공우주의학훈련센터에 설치된 가속도 내성강화 훈련용 장비의 모습. 훈련생을 태우고 원심분리기처럼 고속회전을 하기 때문에 공군 파일럿들 사이에선 탈수기인 '짤짤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한다. 사진제공=공군


◆공사생도 절반 이상도 처음엔 ‘기절’… 공포의 관문 ‘가속내성훈련’

이날 훈련의 하이라이트는 세번째 관문인 가속내성훈련이었다. 일반적으로 물체가 특정 방향으로 가속해 움직이면 그 반대방향으로 관성의 힘이 작용한다. 비행 시에도 마찬가지다. 전투기가 급상승하거나 급선회를 하면 관성 등의 작용으로 혈액이 전투기 운동의 반대 방향으로 쏠림 압력을 받는다. 아울러 높은 중력가속도(F-16전투기의 경우 약 6G, F-15전투기의 경우 약 9G)에 다른 압력으로 내장의 주요 장기(주로 심장, 횐경막, 폐, 간)이 짓눌려 혈액순환 등을 한층 더 어렵게 한다. 특히 하체로 피가 쏠리는 경우가 많은데 이로 인해 눈과 뇌로 혈액이 제대로 공급되지 않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잠깐이나마 눈에 피가 돌지 않으면 일시적으로 시력이 저하되거나 상실된다. 뇌에 피가 제대로 순환되지 않으면 의식이 희미해지거나 최악의 경우 의식상실(G-LOCK) 상태에 빠진다. 보통 초당 수백m이상의 거리를 날아가는 전투기 비행도중 파일럿이 잠시라도 이 같은 ‘블랙아웃’을 겪게 된다면 대참사로 이어질 수 있다. 비행시 극복하면서 정상적인 신체능력과 정신력을 유지하도록 숙달시키는 게 가속내성훈련의 목적이다.



비행 가속에 따른 블랙아웃을 견디려면 관성에 의해 하체로 쏠리는 혈액이 정상적으로 뇌와 안구 등 상체로 순환될 수 있도록 하체 주요 근육들을 쥐어짜듯 힘을 줘야 한다. 특히 복부와 엉덩이, 허벅지, 종아리 등의 근육에 힘을 주는 것이 요령이다.

이와 동시에 ‘특별한 호흡법’을 병행해야 의식을 잃지 않고 정상적으로 비행임무를 수행할 수 있다. 이 호흡법은 약 3초 간격으로 빠르게 숨을 쉬는 것이다. 숨을 순식간에 들이 쉬고 내밭은 뒤 3초간은 목의 성문(성대 등을 포함하는 목의 조직)을 닫은 상태로 유지하다가 다시 3초후 숨을 들이 쉬고 내뱉는 것을 반복하는 방식이다. 이때 중요한 포인트는 입술을 살짝 열어두어야 한다는 점이다.

국방부 기자단이 2022년 6월 16일 충북 청주에 위치한 항공우주의료원 산하 항공우주의학훈련센터에서 '공군 비행환경 적응훈련'을 체험하고 있다. 사진은 해당 센터 내에 설치된 중력가속도 내성훈련 장비에 탑승한 서울경제신문 민병권 차장의 흑백모니터링 영상. 해당 장비가 고속 회전하면서 최대 중력 6배의 상태에 이르자 호흡에 어려움을 느끼고 시야와 의식이 흐려지면서 표정이 일그러지고 있다. 사진제공=공군


기자단은 숙련된 베테랑들로부터 하체 근육 압박과 호흡법의 교육을 받고 훈련실로 각자 들어섰다. 훈련실에는 2012년 도입한 첨단 장비가 들어서 있었다. 마치 수도꼭치 모양을 연상케 하는 이 장비는 한쪽 끝의 축을 기점으로 원심분리기 돌듯 360도로 고속 원형 회전 운동을 한다. 해당 장비는 마치 세탁물의 물기를 원심력으로 쥐어짜는 탈수기처럼 탑승자를 물리적으로 쥐어짠다고 해서 공군 파일럿들은 속칭 ‘짤짤이’, ‘짤순이’라고 부른다.

이 장비를 회전시키는 직류모터의 파워는 무려 1500마력에 달한다. 이처럼 강력한 힘으로 빙글빙글 돌는 회전축의 맨 가장 자리 끄트머리에 탑승좌석이 위치해 있으니 여기에 타서 회전하는 탑승자는 그야 말로 몸과 영혼이 ‘원심분리’되는듯한 극한의 상태를 경험하게 된다. 더구나 해당 기기는 단순히 원운동만 하는 게 아니라 실제 전투기가 상승·강하하거나 옆 방향으로 구르는 듯이 이동하는 수직·횡전 운동도 모사할 수 있다. 길이 7.6m에 달하는 장비 회전대의 끄트머리에서 그야말로 이승의 종점을 보는 듯한 착각을 일으킬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기자도 떨리는 심장을 진정시키며 탑승석에 올랐다. 컴컴한 실내에선 일부 계측장비의 불빛과 더불어 빨간 불 2개가 켜져 있었다. 대략 수평방향으로 수십cm가량 간격을 둔 채 점등돼 있는 빨간 빛은 테스트 도중 탑승자의 안구시야가 블랙아웃 상태에 빠지는 것은 아닌지 가늠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안구 등에 혈액 공급이 제대로 안되면 시야가 점점 어두워지며 좁아지다가 종국에는 완전히 칠흙처럼 검게 된다. 즉 2개의 붉은 점등 간격이 점점 좁아지다가 아예 보이지 않게 되는 것이다.이때 정신을 차리고 호흡법과 근육수축법으로 빨리 대처하면 다시 시야가 조금씩 트이면서 붉은 점등이 원래 간격 수준으로 보이기 시작한다고 한다. 그렇지 않으면 순식간에 기절하는 G-LOCK 상태에 빠질 것이라고 교관 등은 설명했다.

국방부 기자단이 2022년 6월 16일 충북 청주에 위치한 항공우주의료원 산하 항공우주의학훈련센터를 방문하자 센터의 하동열 기동생리훈련과장이 '공군 비행환경 적응훈련'을 소개하고 있다. 사진제공=공군


그러나 막상 기기에 오르고 나니 긴장감에 아무런 생각이 나질 않았다. 훈련 초반부에는 총 20초에 걸쳐 서서히 가속이 붙으며 3G정도까지 올랐다. 이때만 해도 어느 정도 견딜만 했다. 이후 평상 수준으로 중력가속도가 낮아지며 잠시 숨을 고를 수 있었다. 하지만 이윽고 가파르게 가속도가 붙더니 다시 20초간 6G수준까지 올라섰다. 하지만 해당 20초를 견디기도 전에 10초 정도 지나자 시야에 순식간에 그레이아웃(gray-out, 시야는 블랙아웃 상태이지만 의식과 청가 등은 살아 있는 상태)이 왔다. 눈 앞은 칠흙 같고 오로지 교관의 음성만 스피커를 통해 전해져왔다. 3초 간격으로 숨을 쉬라고 배웠지만 가속기 안에선 불과 1초가 수십초처럼 길게 느껴졌다. 가까스로 정신을 부여잡고 하체근육과 명치 근육을 있는 힘껏 쥐어짰다. 그제서야 다소나마 시야의 중앙 부분부터 조금씩 트이기 시작했다. 다행히 주어진 시간 동안 지록 상태에 빠지는 것은 피할 수 있었다. 훈련장비가 동작을 멈추차 “가속도 내성이 좋은 편”이는 교관의 음성이 들려왔다. 이마 격려차원의 의례적 인사였겠지만 그마저도 부끄러울 정도로 머리 속이 어지러웠다.

테스트를 마치고 나온 기자에게 한 공군 관계자가 “공사(공군사관학교) 생도들도 처음 훈련할 때는 절반 이상이 지록 상태에 빠진다며 일반인이 첫 테스트에서 이 정도 버텼으면 잘한 것”이라고 격려해줬다. 하지만 다음 이야기를 듣고 기자는 자신감이 꺾였다. 우리 공군 조종사들은 그런 극한 환경에서 보통 1시간 이상 비행을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 평소에 신체와 정신력을 최상의 수준으로 관리하고 단련해야 한다고 그는 귀띔했다.

국방부 기자단이 지난 16일 충북 청주에 위치한 항공우주의료원 산하 항공우주의학훈련센터에서 '공군 비행환경 적응훈련'을 체험하고 있다. 사진은 센터내 설치된 차폐실에서 고공저압환경훈련을 받는 기자들을 센터 관계자 등이 모니터링하는 모습. 사진제공=공군


◆저산소증과의 사투…고공저압환경훈련

이날 훈련의 마지막 관문은 고공저압환경훈련이었다. 일반적으로 지상에서 상공으로 올라가면 고도가 상승할 때마다 기압이 낮아진다. 당연히 대기중의 산소 또한 희박해질 수밖에 없다. 우리 공군 조종사들이 초계비행을 하거나 전술훈련 등을 할 때 전투기는 주로 1만~3만 피트 안팎의 고도에서 기동한다. 이 정도 높이에서 별도의 보조 장치가 없이 맨몸으로 노출된다면 희박한 산소로 인해 저산소증에 걸려 의식을 잃기 쉽다. 또한 낮은 기압 등으로 인한 환경변화로 고막이 먹먹해지고 통증을 느끼는 중이통 등을 느끼거나 심각한 경우 감압증에 걸릴 위협이 있다. 감압증이란 급격한 기압 변화로 인해 체내에 녹아 있던 질소가 기포 형태로 혈관을 돌아다니며 신체조직 내의 정상적인 혈액순환과 산소공급을 저하하시켜 생명까지도 앗아갈 수 있는 증상이다.

이 같은 저산소증과 감압증을 막기 위해 전투기 등 주요 항공기에는 양압장치, 산소공급장치 등이 구비돼 있다. 양압장치는 전투기 조종석 내부 기압을 육상생활에서 인간이 보편적으로 겪는 1기압 정도로 조절해준다. 또한 산소공급장치는 조종사 헬멧에 부착된 마스크를 통해 적정한 농도의 산소를 공급해주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전투기 파일럿들은 예상치 못한 상황에도 대비해야 한다. 기기 고장이나 적의 공격으로 인한 손상 등으로 인해 양압장치나 산소공급장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고공저압환경훈련은 이 같은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특수 장치들이 있는 밀폐실 내에서 저산소 및 급격한 기압변화를 체험하는 과정이다.

국방부 기자단이 지난 16일 충북 청주에 위치한 항공우주의료원 산하 항공우주의학훈련센터에서 '공군 비행환경 적응훈련'을 체험하고 있다. 사진은 고공저압환경훈련에 참가한 기자들이 센터 내에 설치된 밀폐실에 앉아 급격한 기압 변화에 대응하는 법을 교육받고 숙달하는 모습. 사진제공=공군


해당 밀폐실은 가로 3m, 세로 12.7m, 높이 4.3m 규모로 설치돼 있었다. 실제 비행 상황을 재현하기 위하 항공기가 1분당 최대 1만 피트의 속도로 상승하거나 하강하는 것과 같은 급격한 기압 및 산소농도, 습도 변화를 연출할 수 있다. 최대 상승고도 2만피트, 최대 운용고도 1만 피트 수준에서의 기압과 산소농도, 습도를 해당 밀폐실에서 체험할 수 있도록 고안됐다. 밀폐실 내에 훈련생도들이 들어가는 주실에는 최대 24명이 앉을 수 있는 좌석이 있었다. 각 좌석에는 훈련생들의 심전도, 호흡수, 심박수, 체온, 열압, 산소포화도 등을 실시간으로 측정하는 장치가 구비돼 있었다.

기자단은 이날 밀폐실에 입실해 교관들의 지시에 따라 주식의 좌석에 앉았다. 이어서 실제 조종을 준비하듯 파일럿용 헬멧을 쓰고, 마스크를 산소공급장치 등과 연결했다. 또한 기압 급변시 중이통 등을 경감할 수 있는 일명 ‘발사바’기법 등에 대해 교육을 받았다.

국방부 기자단이 지난16일 충북 청주에 위치한 항공우주의료원 산하 항공우주의학훈련센터에서 '공군 비행환경 적응훈련'을 체험하고 있다. 사진은 기자들이 밀폐된 체임버에서 고공저압환경을 체험하기 전 원활한 산소공급을 위한 마스크를 체크하고 있는 모습.사진제공=공군


이윽고 교관의 인도에 따라 약 15분간 체내 질소를 제거하는 호흡 과정이 실시됐다. 밀폐실에서 훈련이 시작된후 약 20여분이 지난 후부터 본격적으로 전투기가 고공으로 급상승하는 듯한 실내 기압 변화 등의 환경이 조성됐다. 수분만에 밀폐실 내 기압은 고도 2만피트 이상과 유사한 수준으로 떨어졌다. 이 상황에서 기자들은 마스크를 벗고 얼마동안 정상적인 생체신호와 정신력을 유지하는지 테스트를 받았다. 손가락에 낀 센서를 통해 산소포화도가 75%이상 유지되는지, 심박수가 이상수준에 이르지 않는지 등이 실시간으로 체크됐다. 또한 좌석 앞 테이블 위에 놓인 시험지의 문제들을 풀어서 정신력과 집중력을 제대로 유지하는 지 점검 받았다. 시험지는 앉은 좌석 번호가 짝수인지, 홀수인지에 따라 서로 다른 2가지 유형으로 제공됐다. 그 중 한 유형은 구구단 질문 등을 최대한 빠르게 계산하는 것이었다. 다른 유형은 교관이 지시한 문구를 반복해 필기해 필체가 흐트러지거나 제대로 문구를 작성하지 못하는 지 등을 가늠하는 것이었다. 기자는 문구 필기 시험지를 받아들었는데 몇줄 쓰기도 전에 산소포화도가 기준 수준 아래로 떨어졌다. 이에 따라 교관의 도움을 받아 곧바로 산소마스크 써야 했다. 밀폐실내 환경은 다시 전투기가 지상으로 급강하하는 상황을 연출했다. 저압이었던 대기압이 급격히 지상 수준으로 높아졌다. 다시 한번 고막 등이 먹먹해졌다. 현장의 한 교관은 “파일럿들은 이런 환경을 공중 비행중 수시로 겪는다”고 귀띔했다.

한미 공군의 전투기 20대가 지난 7일 오전 서해상에서 공중무력시위 비행을 하며 북한의 최근 연이은 미사일 발사 도발에 맞대응하고 있다. 한미가 유사시에 대비해 이처럼 호흡을 맞춰 정밀한 전술기동훈련을 할 수 있는 것은 평상시 우리 군이 많은 시간과 비용, 노력을 투자해 정예 파일럿들을 길러냈기 때문이다. /사진제공=합참


고 신상옥 감독의 전쟁영화 ‘빨간 마후라’로 대중들에게 각인된 우리 군의 전투기 조종사는 공군의 꽃으로 불린다. 1대당 최소 수백억원에서 최대 1000억원 이상에 달하는 최첨단 기체를 타고 창공을 날으는 모습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동경의 대상이 된다. 그러나 파일럿이 되기 위한 예비관문조차도 일반 기자들에겐 쉽지 않은 도전이었다. 공군 조종사들은 답답하고 무거운 조종복과 헬멧, 하네스(비상탈출 등에 대비해 조종석과 조종사를 연결해주는 착용장비의 일종) 등을 걸치고, 한번 출격할 때마다 한 팔 간격 남짓한 좁은 조종석에서 짧게는 약 1시간, 길게는 2~3시간씩 극한의 조건을 견뎌야 한다. 단순히 견디는 수준이 아니라 그와 같은 극악의 환경에서도 평소와 같은 정신력과 신체상태를 유지하면서 고난도의 초계, 전투, 전술임무 등을 수행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공궁 파일럿 한 명, 한 명이 얼마나 귀한 국가적 자산인지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우리 정부와 국회, 군은 이들 국가적 자원이 적기에 충분히 육성돼고 제대로 관리받아 국방을 지킬 수 있도록 훈련환경과 전투장비를 지속적으로 개선해주고, 계속 군의 자원으로 남을 수 있도록 근무여건과 복지 확충에도 지속적으로 투자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국방부 기자단이 지난 16일 충북 청주에 위치한 항공우주의료원 산하 항공우주의학훈련센터에서 '공군 비행환경 적응훈련'을 마치자 항우원 원장인 양솔몬(왼쪽) 대령이 서울경제신문 민병권 차장 등 기자들에게 수료증을 전달하고 있다. 사진제공=공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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