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검색
팝업창 닫기
이메일보내기

[시로 여는 수요일]자화상 그리기


- 김명옥

끙끙 앓는 날은 무릎걸음으로 다가가는 저 여자

죽을 만큼 아파보면

삶이 가벼워지기도 한다는 저 여자

마음 아픈 날에는 시집을 덮고 돌아눕는 저 여자

눈물 나는 날은 가까이 보이기도 하는 저 여자

다른 방법은 알지 못해서 저 여자

허공에 갇혀

웃지도

울지도

못하는 저 여자

겹겹이 쌓인 시간의 껍질을 벗겨

여자를 발굴하는 작업

아직, 무엇이 더 남았냐고 내게 묻는 저 여자

어디로



달려 나가려는 것일까

아니면 한 천년 주저앉으려는 것일까

어쩌다가 눈이 마주치면

서둘러 외면하고 싶은 저 여자





끙끙 앓아도 모른 척했던 저 여자, 죽을 만큼 아파도 살 만한 줄 알았던 저 여자, 시집살이가 시집 읽기와 비슷한 줄 알았던 저 여자, 주르르 흘러도 안구 건조로 넣은 인공눈물인 줄 알았던 저 여자, 모든 방법을 알아서 다른 방법을 찾지 않는 줄 알았던 저 여자, 여러 호칭에 겹겹이 싸여 여자인 줄 몰랐던 저 여자, 달려 나가려 하면 잡아당겨지고 주저앉으려 하면 떠밀렸던 저 여자, 거울을 보다 먼 산 바라보던 엄마, 아내, 그리고 딸들. 달의 뒷면처럼 남자는 볼 수 없는 그녀들의 자화상, 제 발 저린 남자들이 서둘러 외면하고 싶은.

- 시인 반칠환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6 트윈트리타워 B동 14~16층 대표전화 : 02) 724-8600
상호 : 서울경제신문사업자번호 : 208-81-10310대표자 : 손동영등록번호 : 서울 가 00224등록일자 : 1988.05.13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4065 등록일자 : 2016.04.26발행일자 : 2016.04.01발행 ·편집인 : 손동영청소년보호책임자 : 신한수
서울경제의 모든 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은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 Sedaily, All right reserved

서울경제를 팔로우하세요!

서울경제신문

텔레그램 뉴스채널

서경 마켓시그널

헬로홈즈

미미상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