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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기 사임·ECB 빅스텝 겹쳐…伊 '2011년 재정위기 악몽' 재연하나

[유럽 '뇌관' 된 이탈리아]

'대혼돈' 伊 국채 수익률 3.7%로↑

'안전자산' 獨과 2.38%P 差 벌어져

GDP 대비 부채 150% 넘어섰는데

리더십 공백에 경제정책까지 흔들

2000억유로 EU기금 수령 불투명

ECB, 무제한 채권매입 발표했지만

재정위기 확산 방지 역부족 평가도





21일(현지 시간) 이탈리아의 연정 붕괴에 따른 정국 혼란 끝에 마리오 드라기 총리가 사임하기로 한 지 몇 시간 뒤, 11년 만의 기준금리 인상을 예고해 온 유럽중앙은행(ECB)이 당초 계획과 달리 0.5%포인트의 ‘빅스텝’에 나서자 시장에서는 ‘결국 올 것이 왔다’는 우려가 터져 나왔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부채 비율이 150%를 넘어설 정도로 재정 상황이 나빠질 대로 나빠진 이탈리아가 ‘리더십 공백’과 대규모 금리 인상이라는 두 가지 메가톤급 악재에 한꺼번에 직면하면서 자칫 2011년 ‘남유럽 재정위기’ 재발의 방아쇠가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블룸버그통신은 “드라기 총리의 사임과 ECB의 금리 인상은 말 그대로 최악의 타이밍에 겹쳤다”고 논평했다.

이탈리아 공영방송 라이(Rai) 뉴스 등에 따르면 세르조 마타렐라 대통령은 이날 드라기 총리의 사임서를 수리한 뒤 의회를 해산하는 내용의 법령에 서명하고 9월 25일 ‘조기 총선’을 치르겠다고 발표했다. 2018년 3월 총선으로 꾸려진 현 의회의 임기는 당초 내년 상반기까지였다.

드라기 총리는 9월 총선까지 임시로 내각을 이끌며 국정 공백을 최소화하는 임무를 맡았다. 그러나 국정 동력은 크게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이탈리아 총리 출신인 파올로 젠틸로니 유럽연합(EU) 경제 담당 집행위원은 “(드라기 총리 사임으로) 이탈리아가 ‘퍼펙트스톰(초대형 복합 위기)’에 빠졌다”고 경고했다.

유로존 3위 경제국인 이탈리아의 국정 혼란과 ECB 금리 인상 소식에 당장 유럽 금융시장은 요동쳤다. 투자가들이 이탈리아 국채를 내던지면서 이탈리아 10년 만기 국채 수익률은 이날 장중 3.7%까지 치솟았다. 안전 자산으로 분류되는 독일 국채와의 금리 차는 한때 2.38%포인트까지 벌어졌다. 이날 그리스 10년물 국채 금리도 전날보다 0.09%포인트 올라 3.5%대를 기록했으며 스페인·포르투갈의 국채 금리 역시 나란히 상승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ECB가 2011년 재정위기 당시 1%이던 금리를 두 차례에 걸쳐 1.5%까지 인상한 것이 이탈리아와 그리스·스페인·포르투갈 등 남유럽 고부채 국가, 이른바 ‘PIGS’의 연쇄 디폴트(채무불이행)로 이어진 트라우마를 시장이 떠올렸기 때문이라고 해설했다. 이탈리아를 비롯한 PIGS의 부채 비율은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쳐 재정위기 때보다 더 나빠진 상태다. 마타렐라 대통령은 “현 경제와 정치 상황 탓에 이탈리아가 EU로부터 2000억 유로 규모의 ‘팬데믹 회복 펀드’를 못 받게 될 수 있다”고 우려하기도 했다.



ECB가 이날 양적 완화를 종료하면서 가장 신경을 쓴 부분도 재정이 취약한 남유럽 위기 확산을 차단하는 것이었다. ECB는 빅스텝으로 인한 고부채 국가의 차입 비용 급증에 대응하기 위해 공공부문 채권 1~10년물을 사들이는 채권 매입 프로그램 ‘TPI’를 발표했다. TPI 매입 규모는 ECB의 긴축 과정에서 유로존 회원국들의 경제 위험이 얼마나 중대한가에 달렸으며 매입 규모에 사전 제한이 없다. 이론 상으로는 ‘무제한’ 채권 매입이 가능한 셈이다.

그러나 시장에서는 벌써부터 TPI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독일 단스케방크의 피에트 크리스티안센 수석 애널리스트는 “ECB는 ‘재무 상황과 경제 정책이 지속 가능할’ 것을 TPI 작동 기준으로 삼았지만 이탈리아는 향후 정치 상황에 따라 이 기준에 맞추지 못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TPI가 적절한 타이밍에 작동하지 않을 경우 이탈리아의 재정위기를 막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는 의미다.

게다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촉발한 에너지 위기로 현재 유럽 전체의 경제 체력은 많이 약해진 상태다. 취약국으로 알려진 PIGS뿐 아니라 다른 유럽국에서 예상하지 못한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

대외 정책 면에서도 주요 7개국(G7)과 보조를 맞춰 “러시아 제재의 주요 설계자 역할”을 해 온 드라기 총리의 퇴장이 서방의 러시아 제재 ‘대오’, 나아가 우크라이나 전쟁 자체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서방 지도자들 사이에서는 그간 러시아에 강경한 태도를 지켜온 드라기 총리가 현직에서 물러나는 것에 대한 우려가 크다”고 전했다.

이에 따라 유럽의 시선은 온통 이탈리아 정국에 쏠려 있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9월 총선에서 극우당 ‘동맹(Lega)’·이탈리아형제들(FdI)과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가 이끄는 전진이탈리아(FI) 등 우파 3당이 연합할 경우 과반 의석 확보가 가능하다. 최근 여론조사 결과도 FdI가 24%의 지지율을 얻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동맹’과 FI는 각각 14%, 7%의 지지를 받고 있다. 세 정당 지지율을 합하면 48%다. 반면 중도 좌파 성향의 민주당(PD)의 지지율은 22%이며 드라기 총리의 연정 파트너였던 오성운동은 11%에 그친다. 영국 가디언은 “현재로서는 우파가 과반을 잡을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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