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현지시간) 미국 연방준비제도(Feb·연준)가 시장 예상대로 정책금리를 0.75%포인트 인상하는 자이언트스텝을 단행했다. 미 연준의 정책금리는 2.25~2.50%로 한국은행 기준금리(2.25%)보다 높아지게 됐다. 2020년 2월 이후 2년 5개월 만에 한미 금리가 역전된 것이다.
미국 금리가 우리나라 금리보다 높아지면 수익률을 좇는 자본 특성상 주식과 채권 등 증권투자자금이 빠져나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국내 금융시장에서 자금이 빠져나가면 그만큼 달러가 줄어들기 때문에 원·달러 환율이 상승(원화 가치 하락)할 가능성도 있다. 미 연준의 가파른 금리 인상 자체로도 달러 강세 요인이 된다.
하지만 정부와 한국은행뿐만 아니라 여러 경제 전문가들도 한미 금리가 역전돼도 자본이 유출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평가한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25일 간담회에서 “대외 신인도나 경제 기초 여건, 현재 경기 흐름을 보면 자금 유출 가능성이 별로 없다고 본다”고 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도 지난 13일 금융통화위원회 직후 간담회에서 “한미 금리 역전 자체가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고 단순히 격차가 얼마나 벌어지느냐보다 자본·외환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봐야 한다”고 했다.
국제금융센터도 13일 ‘한미 정책금리 역전 가능성 및 자금유출 영향’ 보고서에서 외국인들의 원화 채권 투자 패턴, 과거 정책금리 역전 사례 등을 감안할 때 한미 금리가 역전돼도 큰 폭의 자금유출은 제한적일 것으로 봤다. 해외 중앙은행이나 연기금 등은 포트폴리오 다변화 차원에서 우량한 신용등급인 원화 채권 투자를 선호한다는 것이다. 민간 부문 역시 원화가 과도한 약세인 만큼 향후 원화 강세 전환을 염두에 두고 추가적인 환 차익을 고려할 수 있다고 봤다.
과거 한미 금리가 역전됐을 때도 오히려 자본이 유입되기도 했다. 한은이 금리 중심으로 통화정책을 전환하기로 한 1999년 이후 한미 금리 역전은 세 차례 발생했다. 1기가 1999년 7월부터 2001년 3월, 2기가 2005년 7월부터 2007년 8월, 마지막 3기는 2018년 3월부터 2020년 2월까지다. 1기 때는 주식이 200억 2100만 달러 유입됐으나 채권이 15억 8200억 달러 유출됐다. 2기 때는 주식이 263억 4300만 달러 유출됐지만 채권이 567억 9000만 달러나 유입됐다. 마지막 3기는 주식 189억 9000만 달러 유출, 채권 503억 7700만 달러 유입이다.
김용준 국제금융센터 시장모니터링본부장은 “한미 정책금리 역전 발생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양국의 정책 대응 과정에서 나타난 한시적 현상인 만큼 과도한 우려는 자제할 필요가 있다”라며 “최근에는 ‘한미 정책금리 역전=자금유출’ 공식을 일방적으로 주장하기 어려운 상황으로 투자자들은 정책금리 수준뿐만 아니라 다양한 요인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투자에 임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고 했다.
그렇지만 과거 사례만 보고 안심할 수 없다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미 연준의 금리 인상 속도가 빠른 만큼 금리 역전 기간이 길어지고 역전 폭도 확대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한국 채권 대비 미국 채권 매력도가 클 수밖에 없기 때문에 금리 역전이 장기화하고 미 연준의 정책금리 인상이 계속된다면 채권시장에서 자금이 빠져나가지 않는다고 장담 할 수 없다”라며 “단기간에 문제가 생길 가능성은 크지 않지만 물가가 잡히지 않아 미국 금리 인상이 계속된다면 불안한 상황”이라고 했다.
과거 한미 금리 역전 시기와 달리 내국인의 해외 투자가 늘어난 것도 불안요소다. 경상수지 적자가 점차 축소되는 가운데 해외 투자가 늘어나면서 외환 수급을 악화시키고 있다. 한은 통화신용정책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거주자의 해외주식 투자 규모는 686억 달러로 역대 최대 수준이다. 국민연금의 해외주식 투자 규모 역시 2016년 86조 6000억 원에서 2021년 256조 6000억 원으로 대폭 증가했다. 정부에서는 외국인이 아니라 국민연금과 서학개미가 자금을 내보내고 있다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과거와 달리 원화가 약세인 점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자본시장연구원도 연준의 긴축이 지속되면 한미 정책금리뿐만 아니라 1년물 등 단기금리를 중심으로 국채 금리도 역전될 가능성이 크다고 봤다. 내외 금리차가 전체 자본 유출입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을 것으로 보면서도 경기 하방 위험이 커지는 상황에서 연준 긴축이 가세하면 외국인들의 국내 투자 유인이 약화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국내 금융 상황이 악화된다면 경제 주체들의 자금조달에 어려움이 생길 수 있다고 봤다.
서영경 금융통화위원도 27일 강연을 통해 국내 채권투자의 70%가 해외 중앙은행이나 국부펀드 등 장기 투자자가 차지하는 만큼 순유출이 발생하지 않거나 크지 않을 수 있다면서도 과거와 다를 수 있다고 발언했다. 서 위원은 “최근에 글로벌 유동성이 워낙 빠르게 축소되고 있고 다른 나라도 금리를 빨리 올리고 있어서 우리나라가 상대적으로 수익률이 떨어져 과거보다 민감도가 높아질 수 있다”고 했다.
자본 유출 영향이 크지 않다고는 하지만 국내외 경제·금융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큰 만큼 정부도 대책 마련에 분주하다. 이날 추경호 부총리와 이창용 총재, 김주현 금융위원장,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최상목 경제수석 등 금융·경제 수장들은 나흘 만에 한데 모여 미 연준의 금리 인상 대응책을 논의하기로 했다. 특히 한은은 내외금리차 역전에 따른 금융시장 영향을 살펴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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