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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터리] 간호사 사망 부른 필수의료 정책, 이대론 안 된다

정기석 한림대성심병원 호흡기내과 교수





얼마 전 국내 한 대형병원에서 근무하던 간호사가 뇌출혈로 쓰러졌는데 수술을 집도할 의사가 없어 사망한 안타까운 일이 있었다. 근무하던 직원조차 제때 수술하지 못할 정도로 전문의가 부족했던 것이다. 의료 선진국이라 자부하는 대한민국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길 수 있을까. 의사 숫자가 정말 부족한가. 신경외과 전문의를 양산하면 해결될까.

사실 필수의료에 허점이 생긴 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필자가 전문과목을 택하던 시절에는 외과 계열의 의사들은 내과 의사와는 달리 메스로 환부를 도려내고 봉합하는 고도의 의료기술을 가지고 있다는 자부심만으로도 긍지가 컸다. 하지만 외과 계열의 의료수가가 지나치게 낮은 수준으로 억눌린 채 오랜 시간이 흐르고, 수술을 대신할 수 있는 비침습적 시술들이 발달하면서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과거에는 경제적인 보상과 크게 상관없이 어려운 환자를 수술하고 회복하는 것을 지켜보는 뿌듯함만으로도 성취감을 느끼는 의사들이 많았다. 하지만 의학전문대학원 제도 도입을 계기로 의업을 생계의 수단으로 보는 지원자들이 매우 많아졌고, 이에 따라 전문과목을 선택할 때도 편하고 경제적으로 보상이 후한 분야를 선호하는 경향이 확산됐다. 삶의 질을 소중히 여기는 문화가 반영되며 요즘 전문의를 선택하는 의사들 사이에서는 덜 힘든 일을 하면서 적게 받고 적게 일하겠다는 풍조도 생기고 있다.



과거에는 지방에 신생 의과대학이 생기면 사명감과 보람만으로 지원하는 엘리트 의사들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일반 국민들 사이에 수도권 선호도가 보편화되면서 지금은 지방에 근무하려는 의사를 구하기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간호사도 예외는 아니다. 지방 대학병원들은 수도권으로 이탈하는 간호 인력을 확보하기 위해 고심을 거듭하는 실정이다. 이번에 드러난 사건은 개두술이 가능한 2명의 전문의가 있었지만 당시 병원 근무가 아니어서 문제가 됐다. 그러나 지방에는 상근하는 전문의가 아예 없는 병원도 있다.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거론되는 의사 증원, 공공의료 확대 등이 정말 효과가 있었다면 지금 이런 논란은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단순한 논리보다 보다 근본적인 해법이 제시돼야 한다. 우선 필수의료과 중에서도 전문인력이 부족한 세부 전문 분야를 선정하고 근본적으로 의사 수급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이번 사건은 신경외과 의사가 부족한 것이 아니라 24시간 대기하면서 응급 개두술을 할 수 있는 의사가 부족했던 것이다. 2명의 의사가 24시간 365일 수술을 번갈아 맡는 제도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 외과·산부인과·흉부외과·소아청소년과·응급의학과·중환자의학과 등도 마찬가지다. 의사 숫자를 늘리거나 공공의대를 설립해서 의무 근무 기한을 설정한다고 해도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그들은 여전히 가장 편한 과목을 선택해 수도권을 맴돌며 의무 근무 기간이 끝나기만을 기다릴 것이다. 이제는 정말 필수 의료인력 수급 정책을 공론화해야 한다. 또 차일피일 미루다가는 억울한 환자들만 양산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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