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유가가 전 세계에 에너지 위기를 촉발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전 수준으로 떨어졌다. 얼마 전까지도 ‘유가가 연내 배럴당 200달러를 돌파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던 것이 무색할 정도다. 미국과 중국을 비롯한 글로벌 경기가 침체에 빠져 원유 수요가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에 더해 이란과 서방의 핵 협상 타결로 이란산 원유가 시장에 풀려 러시아산 원유를 대체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유가를 끌어내리는 요인으로 분석된다.
16일(현지 시간) 뉴욕상업거래소에서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전날보다 2.88달러(3.2%) 내린 배럴당 86.53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이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기 한 달 전인 올 1월 25일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런던 ICE 선물거래소의 10월물 브렌트유도 3% 이상 급락한 배럴당 92.34달러에 마감해 2월 10일 이후 최저가를 기록했다.
가파른 유가 하락을 견인하는 것은 경기 악화로 원유 수요가 둔화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앞서 발표된 중국의 7월 산업생산이 시장 예상치를 크게 밑도는 3.8% 증가에 그치면서 ‘세계의 공장’ 중국의 경제 동력이 좀처럼 회복되지 못하는 상황에서 원유 수요가 꺾일 것이라는 전망이 그만큼 커졌다.
시장은 미국의 침체 신호에도 주목하고 있다. 이날 미국의 대형 유통사인 월마트와 홈디포가 2분기 전망을 웃도는 호실적을 나타내며 소비 위축 우려를 다소 덜었지만 7월 주택 착공 건수가 전월보다 10% 가까이 급감하는 등 침체 징후도 여전하다.
서방의 제재를 받는 이란이 국제 원유 시장에 복귀하면서 공급이 늘어날 것이라는 기대감도 유가 하락을 부추겼다. 이란은 이날 핵 협상에 관한 유럽연합(EU)의 최종 중재안에 대한 서면 답변을 제출했으며 EU와 미국은 이란 측의 답변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다만 유라시아의 지정학적 리스크와 겨울철 수요 증가 등으로 유가가 오를 것으로 보는 전망도 여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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