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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 개혁, 또 허송하면 모두가 불행한 파국 온다” [청론직설]

◆이창수 한국연금학회장(숭실대 교수)

향후10년 1·2차 베이비부머 은퇴로 수지구조 급속 악화

尹정부 미적대면 국민 설득·세대 타협 위한 임계점 넘어

재정추계는 개혁 첫 단추…‘낙관적’ 시나리오 이제 그만

기금운용본부 서울 이전, 공무원 등 직역연금과 통합을

한국연금학회장인 이창수 숭실대 교수가 24일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5차 재정 추계를 하는 이번이 국민연금 파국을 막을 마지막 기회”라며 “투명한 정보 공개와 직역연금과의 통합 추진으로 개혁 동력을 뒷받침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오승현 기자




정부가 국민연금 개혁의 밑바탕이 될 5차 재정 추계(2022~2092년)에 착수했다. 정부는 내년 3월 말 완료될 추계 결과를 바탕으로 국민연금 개혁안을 마련해 내년 정기국회에 제출할 예정이다. 국민연금 개혁은 급속한 고령화·저출산 현상으로 더 미룰 수 없는 시대적 과제임에도 역대 정부마다 차기 정부에 떠넘기는 폭탄 돌리기의 연속이었다. 그 결과 기금 고갈을 막으려면 미래 세대가 지금보다 최소 3배나 더 많은 부담을 져야 한다. 한국연금학회장인 이창수 숭실대 정보통계보험수리학과 교수는 24일 “5차 재정 추계는 투명하고 객관적인 정보 공개를 통해 개혁 공감대를 형성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제대로 추계한다면 기금 고갈 시점이 5년 전 2057년에서 2050년대 초반으로 앞당겨질 가능성이 크다”고 예상했다. 숭실대 강의실에서 만난 이 교수는 파워포인트를 띄워놓고 연금 재정의 심각성과 개혁 필요성을 역설했다.

-지난해 학술대회에서 국민연금을 ‘폰지 게임’에 비유해 파장을 낳았다.

△공무원을 포함해 다수의 사람들이 충격을 받았고 뼈아픈 지적에 반감을 가졌다는 말을 들었다. 국민연금에 대한 불신을 심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전해들었다. 나는 과격파가 아니다. 온건한 주장이 통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연금 재정 상황이 너무 심각하다. 더 큰 문제는 이런 심각성을 적극적으로 알려야 할 전문가의 상당수가 입을 닫고 있다는 점이다. 학자의 양심에 비춰 강력하게 문제를 제기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대로 놔두면 미래에 반드시 터질 시한폭탄 아닌가.

-과도한 표현이 아닌가.

△앞선 세대의 연금 수급자들은 비정상적으로 높은 수익률을 보장 받고 있다. 하지만 폰지 게임과 같은 연금 제도는 지속 가능할 수 없다. 누군가가 받는 과도한 혜택만큼 메워야 하는데 그게 바로 미래 세대다. 미래 세대는 과거 세대의 혜택을 메우는 희생자가 된다. 자극적 표현이지만 틀린 말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국민연금 재정이 얼마나 심각하다는 것인가.

△국민연금 기금은 약 950조 원(2021년 말 기준)에 이르고 앞으로 상당 기간 더 쌓일 것이다. 그러나 공개된 기금은 수면 위 빙산의 일각이다. 빠르게 늘어나는 기금은 국민의 인식을 호도한다. 얼핏 재정 상황이 건전한 것으로 보이게 하지만 수면 아래의 빙산을 봐야 한다. 물밑의 빙산은 잠재 부채, 즉 앞으로 지급해야 하는데도 쌓아두지 않은 미적립 부채를 말한다. 4년 전 기준으로 1500조 원에 이른다. 기금은 2042년 정점을 찍고 줄어들게 되지만 잠재 부채는 계속해서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잠재 부채 문제를 해소하지 않고 단순히 기금 고갈을 막는 정도의 현상 유지에 필요한 보험료율이 지금의 두 배인 18%다. 2030년에는 22%로, 기금이 고갈되는 2057년에는 28%로 올라가야 한다. 이마저도 4년 전 낙관적 시나리오다. 현재 기준으로는 30%를 훌쩍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국민연금이 고갈되면 어떻게 되나.

△공무원과 군인연금처럼 세금으로 부족분을 메우거나 지출액만큼 보험료를 내야 한다. 정부 재정 지원이 없다면 지금보다 3배 이상의 보험료를 부담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젊은 세대가 국민연금을 불신하는 것이다. 만약 정부 재정 지원도 없고 연금 개혁도 하지 않으면 기금 고갈 시점부터 2088년까지 누적 적자가 1경 7000조 원에 이를 것이다. 믿기 힘든 무시무시한 금액이다. 정부가 5년 주기로 70년 단위의 재정 추계를 하면서 기금 고갈 이후의 천문학적인 누적 적자를 공개하지 않는 것은 문제가 있다. 이런 불편한 진실을 감추고서는 개혁 동력을 확보할 수 없다. 연금 재정이 심각하지 않다는 식으로 포장하면 어떻게 국민을 설득할 수 있겠는가.

재정 추계·제도 개선위 의사록 남겨 공개를




-정부가 최근 5차 재정 추계에 착수했다. 그동안 재정 추계가 낙관적이라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는데.

△4차 추계 때 합계출산율 1.24~1.38명을 기준으로 삼았다. 실제로 어떻게 됐는가. 지난해 출산율은 0.81명으로 떨어졌다. 심각한 괴리가 있다. 기금 운용 수익률도 70년간 4%를 웃도는 것으로 가정했는데 그렇게 될지 미지수다. 추계 결과는 주요 변수들에 대한 가정에 따라 큰 차이를 보이는데 추계 작업을 주도하는 쪽에서는 ‘무난한’ 추계를 희망하는 것 같다. 추계 방식에 문제 제기를 하면 위원회에서 배제되기도 한다.

-정부가 왜 그렇다고 생각하는지.

△정치적 부담이 있다고 본다. 이렇게 문제가 심각한데 그대로 둘 수 있느냐는 여론이 형성되지 않겠는가. 아시다시피 연금 개혁은 표가 떨어지는 정책이다 보니 그런 부담을 지기 싫은 것이다. 또 다른 측면에서는 공무원들의 책임 문제도 있다. 이 지경이 될 때까지 뭐 했느냐는 비판이 나오지 않겠는가.

-재정 추계의 객관성과 신뢰성을 확보할 대안을 제시한다면.

△추계 과정 전반을 담은 백서를 발간해야 한다. 어떤 위원이 어떤 말을 했는지 의사록을 작성하고 일반에 공개해야 한다는 것이다. 추계 후 제도 개선안을 만들 때도 마찬가지다. 정부가 현재 추계 위원을 선정 중인 것으로 안다. 위원 면면을 보면 국민연금 개혁 의지가 있는지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그동안 추계에서는 이해관계 집단을 대변하는 인사들로 상당수 채워지기도 했다. 개혁의 첫 단추는 객관적인 재정 진단에 있다. 5차 재정 추계는 개혁을 위한 여론 조성을 위해 과거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윤석열 정부마저 기회를 놓친다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재정 부담으로 인해 제대로 된 개혁은 점점 멀어져갈 것이다. 이번이 파국으로 치닫는 것을 막을 사실상 마지막 기회라고 본다.

재정 파탄 그리스, 외부 강제 개혁으로 소급해서 깎아


2018년 12월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이 국민연금 개혁안을 설명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는다’며 개혁안을 뭉개고 차기 정부로 떠넘겼다. 연합뉴스


-왜 마지막 기회로 보는가.

△연금 개혁은 이미 충격이 덜한 골든타임을 놓쳤다. 세계에서 유래가 없는 저출산·고령화를 겪으면서도 9%의 보험료율은 24년째 제자리다. 연금 재정이 속으로 곪아터지고 있다. 무엇보다 앞으로 10년은 국민연금의 수지 구조에 엄청난 변화가 오는 시기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1차 베이비붐 세대(1955~1963년생)와 2차 베이비붐 세대(1968~1974년생)가 연금 수급자로 전환한다. 한 해 거의 100만 명씩 태어났다. 완만하게 증가하던 노년 부양비(생산 가능 인구의 노령 인구 부양 비율)가 급격하게 상승하는 시기다. 또 다시 미적대면 연금 개혁 비용이 너무 커져 국민을 설득하고 세대 간 타협을 이끌어낼 임계점을 넘어서게 된다. 5년 뒤 차기 정부에서는 정치적 동력 확보가 더 어려울 뿐 아니라 연금 재정 상황이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악화한다. 기금 고갈 시기가 먼 미래라는 이유로 개혁을 늦춰도 된다는 생각은 착각이다.

-젊은 세대의 국민연금 불신이 상당하다.

△연금 개혁 성패는 우리 사회의 미래 운명까지 결정한다. 40대 이하와 50대 이상 연령층 사이에 인식의 괴리가 있다. 젊은 세대는 앞으로 부담이 엄청나게 늘어날 게 뻔하니 보험 급여를 대폭 삭감하고 보험료를 올리지 않는 것이 차라리 낫다고 생각한다. 반대로 50대 이상 연령층은 보험료를 올려서라도 보험 급여를 그대로 유지하는 게 유리하다는 입장이다. 이대로 간다면 개인의 경제적 부담 또는 국가 재정의 문제도 커지겠지만 세대 갈등으로 인해 사회적으로 엄청난 문제가 발생할 것이다. 가뜩이나 갈등 구조가 심한데 연금을 두고 세대 간 충돌이 벌어진다면 공동체 신뢰 기반이 붕괴할 위험이 있다. 그리스는 국가 재정 파탄으로 타의에 떠밀려 연금 개혁을 하면서 기존 수급자의 급여까지 소급해서 깎았다. 우리나라도 그렇게 되지 않으리라고 장담할 수 없다. 모두가 불행한 파국은 막아야 한다.

-최근 여론조사(한국리서치)를 보면 연금 개혁 찬성 비율이 87%나 됐다. 그 방향으로 ‘더 내고 더 받자’와 ‘덜 내고 덜 받자’의 찬성률이 각각 55%와 45%였다.

△둘 다 큰 의미가 없다. ‘더 내고 더 받자’는 것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다. 시점의 차이가 있을 뿐 연금 재정의 파탄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덜 내고 덜 받자’도 근본적인 문제 해결 방안이 아니다. 안타깝게도 해법은 ‘더 내고 덜 받는’ 길뿐이다.

-연금 개혁을 이뤄내려면 대통령의 의지가 중요한 것이 아닌가.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 공약 때 대통령 직속 개혁위원회를 두겠다고 했지만 국회로 공을 넘겼다. 여소야대 상황에서 불가피한 선택으로 이해할 수 있지만 책임 회피라고 본다. 유권자들이 연금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을 막겠다는 현명한 선택을 하고 대통령과 정치권을 압박해야 한다. 독일에서는 연금 개혁을 밀어붙인 게르하르트 슈뢰더 정부가 정권을 내줬다. 비록 슈뢰더 사민당 정부는 선거에 패배했지만 독일 경제에는 두고두고 도움이 됐다.

-국민연금과 직역연금(공무원·사학연금·군인연금) 통합 방안도 거론되고 있는데.

△통합이 합리적이다. 국민연금 개혁을 위해 국민을 설득하는 전제 조건이기도 하다. 공무원·군인연금은 기금이 고갈돼 세금을 투입하는 마당에 국민연금 가입자들에게 고통을 분담하라고 할 수 있겠는가.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를 서울로 이전하자는 주장이 있다.

△기금운용본부까지 전주로 옮긴 것은 정치적 논리의 소산이다. 최고의 인력들이 전주로 내려가기 어렵다. 네트워킹과 정보 수집의 한계, 시간 낭비 등의 문제도 있다. 금융위원회를 서울에 두는 이유를 생각해보면 답은 자명하다. 기금 운용 수익률은 국민연금 재정 상태를 결정하는 핵심 변수이다. 4차 재정 추계 결과에 따르면 기금 운용 수익률이 1%포인트 하락하면 기금 고갈 시기가 4년 앞당겨지는 것으로 추정됐다. 장기적으로 수익률을 높일 수만 있다면 최적의 근무 여건을 제공해줘야 한다.

/권구찬 선임기자 chans@sedaily.com



◆He is…

1959년 대구에서 태어나 서울대 계산통계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아이오와대에서 보험계리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2년부터 숭실대 정보통계보험수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우정사업본부 리스크관리위원과 국민연금·사학연금 재정추계위원, 금융감독원 리스크관리 자문위원으로 활동했다. 한국계리학회와 한국보험학회 부회장, 한국리스크관리학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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