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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람] “어릴 때부터 그림과 친해진 MZ세대, 미술애호가로 성장했죠”

국내 처음으로 어린이 미술관 개관

김이삭 헬로우뮤지움 관장

美선 어린이 대상 다양한 프로그램 마련

유년기 다양한 경험서 안목 넓힐 수 있어

놀이터처럼 친근한 미술관 필요성 깨달아

아이들 눈높이 맞춰 기획·전시하면서도

인권·환경 등 담론 미술적 언어로 풀어내

현대미술로써 사회 주제 해석하도록 유도

지역과 호흡하는 '동네 미술관' 자리매김

한국도 미국 못잖게 문화소비 증가 추세

예술 교육으로 소통·공감능력 함양해야

동네마다 하나씩 미술관 여는 날 오기를

김이삭 헬로우뮤지움 관장 성형주 기자




집 근처의 동네 미술관 하나가 한 사람의 인생을 바꿔놓는다.

친구들이 놀이터를 뛰어다닐 때 미술관을 들락거리며 시간을 보냈다. 더운 바깥 공기보다 시원한 에어컨 바람이 좋아 그러는 것으로 보였지만 속내는 루이즈 부르주아의 작품을 가까이서 볼 수 있기 때문이었다. 작품이 바뀔 때면 새로운 경험이 시작됐다. “관람객이 거의 없었으니 의자에 드러누워 이런저런 상상을 펼치기도 좋았어요. 나중에 크면 이런 미술관에서 일해야겠다는 생각도 했고요.”

2007년 우리나라 최초의 어린이 전문 미술관을 연 김이삭(사진) 헬로우뮤지움 관장은 자신의 경험을 실제 삶의 지표로 삼았다. 어릴 적 살던 동네가 서울 광진구 워커힐호텔 내 워커힐미술관과 가까웠다. 호사스러워 누리는 미술관이 아니라 집에서 가까워 손쉽게 드나들 수 있는 미술관이었다는 게 달랐다. 서울 성동구 성수동에 위치한 헬로우뮤지움에서 만난 김 관장은 “어린이가 자라는 환경에서 놀이터처럼 친근하게 찾아갈 수 있는 미술관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스스로 경험했기에 이렇게 미술관을 열 수 있었고, 어린이 전문 미술관이 동네마다 하나씩 생기는 꿈을 꾸며 살고 있다”고 말했다.

세계 최초의 어린이 박물관은 200년 역사의 브루클린어린이박물관이다. 전 세계 어린이 박물관은 약 1000곳인데 대부분은 교육관 성격이어서 미술을 주요 콘텐츠로 다루는 곳은 10%에 불과하다. 현대미술에 초점을 맞춘 어린이 미술관은 다섯 손가락에 꼽힌다. 그중 하나가 헬로우뮤지움이다.

초등학생 때부터 자연스럽게 미술을 즐긴 그는 당연한 듯 미술대학에 진학했다. 유학을 결심하고 미국으로 가 작가 프로그램에 참여했는데 다른 사람의 그림을 읽는 비평 수업이 흥미로웠다. 동료들에게 “이렇게 작품에 대해 잘 이야기하는 방법은 어디서 배웠느냐”고 물으니 “미술관에서 배운다”는 답이 돌아왔다. 놀랐다. 워싱턴대에서 미술 실기가 아닌 미술관학으로 전공을 바꾼 이유다.

우리나라 최초의 어린이 전문 미술관을 연 김이삭 헬로우 뮤지움 관장. /성형주 기자


“미국 내셔널갤러리에서 가족 프로그램을 인턴십으로 했고 스미스소니언자연사박물관에서 청소년 프로그램을 만드는 프로젝트를 같이 했습니다. 이렇게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프로그램을 우리나라에서도 해보고 싶다고 생각하던 중 국립중앙박물관이 어린이 박물관을 만든다는 소식을 듣고 합류했죠.”

어린이 박물관을 만드는 체계적 과정을 함께한 것은 자양분이 됐다. 동시에 어린이 미술관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2007년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 헬로우뮤지움을 처음 열었다. 과천 국립현대미술관 내 어린이 갤러리가 있기는 했지만 오직 어린이 관객을 위해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제대로 된 어린이 미술관은 국내 최초였다. 아이를 낳고 키운 적도 없는 30대 초반의 젊은 관장이 엄마 같은 마음으로 아이들을 끌어안기 시작했다.

“미래 세대를 위한 투자가 최종 목적지가 되는 것은 비단 문화 기관뿐만이 아닙니다. 거의 모든 사회적 투자의 귀결은 미래 세대를 위한 투자입니다. 강남에서 시작했지만 부유층을 겨냥한 게 아니라 비영리 공간으로, 새로운 문화 담론을 제시하는 ‘대안 공간’처럼 운영하고 싶은 생각이었습니다.”

전시는 어린이 눈높이에 맞춰 기획돼 현대미술 작품을 보면서 질문하고 생각을 확장하는 과정으로 전개됐다. 공감하는 부모들이 알음알음 찾으며 입소문을 탔다. 김 관장은 “경제적·사회적 위치 때문이라기보다는 문화적으로 성숙한 분들이 많았다”고 회상했지만 미술관 프로그램을 ‘고급 창의 교육’으로 인식한 학부모들의 관심은 뜨거웠다. 한동안 헬로우뮤지움은 ‘역대 대통령 손자들, 회장님 손자들이 다니는 미술관’으로 유명했다.



의도치 않은 명성은 김 관장을 회의에 빠지게 했다.

“문화적으로 풍요로운 사람들만 누리게 하려고 미술관을 만든 게 아닌데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이곳은 다가서기 힘든 곳이라는 것을 깨달았어요. ‘이게 강남에 하나 있어서 될 문제가 아니다, 이런 미술관을 동네마다 하나씩 만들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을 하던 중 벤처기부펀드인 ‘C프로그램’을 만나 도움을 받았어요.”

헬로우뮤지움은 2015년 성동구 금호동으로 이전했고 ‘동네 미술관 프로젝트’를 본격적으로 가동했다. 임대 기간이 끝나 또 옮기게 됐을 때 인근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미술관 지키기’에 나섰다. 민원을 접수한 성동구청도 지역 내 문화 기관의 역할에 공감했다. 2020년 성동구가 제공한 지금의 성수동 공간에 둥지를 틀 수 있게 됐다.

우리나라 최초의 어린이 전문 미술관을 연 김이삭 헬로우뮤지움 관장. 성형주 기자


“미술관이나 공연장 같은 문화 기관이 본의 아니게 문턱 높고 권위적인 곳으로 느껴지는 것 같아요. 헬로우뮤지움은 주민들과 눈높이를 맞추면서 소통할 수 있는 정말 편안한 미술관이었기에 많은 사랑을 받았어요. 예술은 생활이어야 합니다. 옆집 아줌마가 밥 먹다가 신고 있던 신발 그대로 언제든 편히 올 수 있는 미술관이 되고자 했어요. 지역에 흡수되는 로컬형 미술관이 사람들의 마음을, 삶을 움직였습니다.”

전시는 인권·환경 등 사회적 담론을 미술 언어로 풀어냈고 이건용·윤진섭·성능경 등 ‘1세대 아방가르드’ 작가들의 행위 예술을 아이들과 함께 경험하게 했다. 김 관장은 “어린이 미술관이 오락적·유희적 공간에 그쳐서는 안 된다”면서 "진짜 현대미술을 만나게 한다는 것은 아이들이 전시를 통해 자기의 일상과 맞닿은 사회적 주제에 대해 정직하게 이야기 나누고 비판적으로도 볼 수 있게 ‘열어줘야’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헬로우뮤지움 개관 이후 국립현대미술관과 부산시립미술관·서울시립미술관 등 주요 기관이 어린이미술관을 별도로 만들었다는 것은 반가운 지점이다. 다만 김 관장은 “대부분 미술관이나 박물관의 콘텐츠를 어린이 눈높이로 해석해 보여주는 형태인데 어린이 교육 전문가들이 어린이만을 위해 긴 호흡으로 고민하고 연구할 수 있는 독립적인 직제가 갖춰져 있지 않아 전문가 양성이 힘든 한계가 있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우리나라 최초의 어린이 전문 미술관을 연 김이삭 헬로우 뮤지움 관장. /성형주 기자


그는 “미국박물관연합회의 조사에 따르면 뮤지엄 관객 수가 전체 스포츠 관중 수보다 많다”면서 “요즘 아트페어나 갤러리에 가면 MZ세대가 많이 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앞으로 우리도 미국 못지않은 문화 소비의 증가를 예상할 수 있다”고 말했다. 베이비붐 세대의 자녀들인 밀레니얼(M세대·1980년대 초반~1995년 이전 출생자)과 X세대의 자녀들인 Z세대(1990년대 중반 이후 출생자)는 어려서부터 문화 체험과 미술관 경험을 했던 세대다. “뜬금없이 등장한 미술 애호가가 아니라 라이프 스타일의 변화 속에서 성장한 MZ세대”라는 것이 김 관장의 분석이다.

“미래를 위한 투자가 이제야 드러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미래 교육’을 이야기하며 창의력과 문제 해결, 소통, 공감 능력이 얼마나 중요한 역량인지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 근간이 바로 예술을 통한 교육이에요. 동네마다 헬로우뮤지움 같은 어린이 미술관이 들어서는 꿈도 머지않아 이뤄질 것이라 믿습니다.”

She is… △1974년 서울 △1997년 이화여대 동양화학과 △2001년 미국 조지워싱턴대 미술관학 석사 △2019년 이화여대 시각디자인과 박사 △2001~2003년 국립중앙박물관 교육연구사 △2004~2005년 김종영미술관 에듀케이터 △2007년 헬로우뮤지움 개관 △2013년 '한글 꽃, 한글 꿈' 기획전 문화체육관광부장관상 △2015년 한국박물관협회 '자랑스러운 박물관인상' △2019년 기획전 '헬로초록씨' 한국박물관협회 우수활동상 △2021년 문화체육관광부 예술경영대상 미술관사회적가치실현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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