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행이 계속되는 엔화 약세에도 불구하고 또 한번 ‘나홀로 금융완화’를 고집하며 기준금리를 동결했다. 9월 물가상승률이 3%까지 치솟으며 30여 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지만, 이 같은 인플레이션은 일시적인 현상이며 경제 성장을 위해서는 정책 방향을 바꾸지 않겠다는 게 일본 당국의 입장이다. 하지만 가파른 엔저로 가계 물가 부담도 상당해 정책을 조정해야 한다는 압박은 갈수록 커지는 모양새다.
28일 일본은행은 이틀간 진행한 금융정책결정회의를 마치고 단기금리를 -0.1%로 동결하겠다고 발표했다. 10년물 국채금리를 0% 수준으로 유도하기 위해 장기국채를 무제한 매입하는 조치도 이어간다. 동시에 올해 물가상승률 전망치(전년 대비)는 기존 2.3%에서 2.9%로 올려 잡았다. 이는 41년 만에 가장 높은 수치다.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기존 2.4%에서 2%로 하향했다.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 총재는 높은 인플레이션 전망에도 기존 정책을 고수한 데 대해 “국제적 인플레이션과 엔화 약세가 수입 물가를 끌어올리고 있지만 임금 인상이 동반되는 형태의 물가 상승이 아니다”라며 “2% 물가 목표를 안정적으로 실현할 때까지 금융 완화를 계속 할 것”이라고 말했다. 오랜 디플레이션에 빠졌던 일본으로서는 소득 상승을 동반한 안정적 물가 상승이 이뤄지기 전까지 통화정책을 수정할 수 있다는 의미다. 일본은행은 내년과 2024년에 에너지 가격 영향이 줄어들며 물가상승률이 1.6%로 내려갈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가파른 엔저에 시달리는 일본이 언제까지 초저금리를 이어갈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지난달부터 일본 당국이 수 차례 외환개입에 나섰지만, 엔화는 여전히 달러당 147엔 안팎의 약세를 이어가고 있다. 과도한 엔저는 수출기업의 경쟁력을 높이기보다는 가계와 기업의 구매력 저하를 초래하며 경제에 부담이 되고 있다. 교도통신은 “소득이 물가 상승세를 따라가지 못해 소비자 부담이 커지고 있다”며 “금융완화가 경제에 도움이 된다는 일본은행의 주장을 정당화하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시장에서는 일본은행의 정책 변화가 머지않았다는 관측에 일본 국채 매도세가 가시화하고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외국인의 일본 중장기채 순매도는 이달 22일까지 5주 연속 이어져 2014년 이후 약 8년 만에 최장기를 기록했다. 일본은행이 10년물 국채금리 목표치를 현행 0%에서 상향하면 국채 가격이 떨어지는 만큼 손실을 피하기 위해 사전 대응에 나선 것이다. 신문은 “일본이 현 정책을 유지할 수 없을 것이라는 관측이 시장에서 거세지고 있다”고 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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