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폴란드와 40조 원이 넘는 규모의 원전 수출길을 열었다. 2009년 아랍에미리트(UAE) 바라카 원전 수주 이후 13년 만이다. 국내 첫 유럽 원전 수출로 체코 원전 수주에도 유리한 고지에 올라 2030년까지 해외 원전 수출 10기를 약속한 윤석열 정부의 해외 원전 수주에 가속도가 붙을 것으로 전망된다.
산업통상자원부는 31일 이창양 장관과 야체크 사신 폴란드 부총리 겸 국유재산장관 등이 참석한 가운데 폴란드 퐁트누프 지역 원전 개발 계획 수립을 위한 양국 기업 간 협력의향서(LOI)와 양국 정부 간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고 밝혔다. LOI 체결이 곧바로 수출을 의미하지는 않지만 유리한 고지를 선점했다는 분석이다. 박일준 산업부 2차관 역시 “경쟁입찰 형식이 아니라 LOI에 한국형 원전(APR1400)이 명시된 만큼 (이번 수주가) 다른 나라로 넘어갈 것으로 보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이번 사업은 제팍이 2024년 말 운영을 중단할 예정인 화력발전소를 2~4기 원전으로 대체하는 민간사업이다. 앞서 한국·미국·프랑스가 수주전을 벌이다 미국 웨스팅하우스가 따낸 정부 주도 원전 사업과도 별개다. 계약 규모에 대해 박 차관은 “이집트 원전 4기 건설에 300억 달러(약 42조 원)가 든 점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폴란드 퐁트누프 원전 수주로 고사 위기에 몰렸던 국내 원전 업계에 모처럼 활력이 돌 것으로 관측된다. 앞서 미국이 수주한 웨스팅하우스의 원전 산업에서도 한국 업체들이 일정 부분 역할을 할 가능성이 큰 상황이다. 업계 관계자는 “웨스팅하우스가 설계 부문에 뛰어나다는 것은 모두가 인정하지만 실제로 원전 건설에 나선 지는 오래된 만큼 엘다바 사례처럼 한국이 주요 부품 건설에 참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황주호 한국수력원자력 사장 역시 “폴란드를 비롯한 유럽 내 원전 수요가 크다”며 “원전 생태계 회복을 위해 원전 수출이 필요했는데 이번 수주로 업계에 활력이 돌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첫 유럽 원전 수출에 청신호를 켜면서 향후 체코 수출에도 긍정적인 영향이 예상된다. 체코 원전 입찰은 정치적 고려가 필요했던 폴란드 수출과 달리 경쟁입찰 방식이다. 정용훈 한국과학기술원(KAIST) 교수는 “폴란드가 고심해서 정부·민간 투트랙 원전 도입을 결정할 정도로 한국의 원전 건설·운용 능력이 인정을 받았다는 의미”라며 “완전경쟁입찰인 체코 원전 수주는 사실상 한국의 몫이라는 평가도 있다”고 말했다.
정부와 한수원은 연내 기본계획을 수립하고 타당성조사를 거쳐 2026년께 착공할 계획이다. 박일준 산업부 2차관은 “미국이 진행하는 폴란드 원전 사업과 비슷하거나 늦지 않은 수준에서 착공할 것으로 보인다”며 “이번 민간사업은 입찰 같은 절차 없이 한국과 함께하기로 결정한 만큼 양국 정부와 기업이 협의해 순조롭게 진행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업계에서는 웨스팅하우스가 한수원과 한국전력에 제기한 소송도 최종 수주에 변수가 되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미 폴란드·한국과 미국이 사전 협의를 했기 때문이다. 박 차관은 “미국 정부와 폴란드 원전 관련 논의를 거쳤다”고 밝혔고 폴란드 역시 1차 원전 건설 사업자를 웨스팅하우스로 선정함과 동시에 한수원을 2차 원전 건설 사업자로 결정하는 방안을 제니퍼 그랜홈 미 에너지장관과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사업은 6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담 당시 윤석열 대통령과 안제이 두다 폴란드 대통령이 만난 자리에서 첫 논의가 이뤄졌다. 이후 8월 윤 대통령과 마테우시 모라비에츠키 총리와의 통화에서 논의가 진전됐고 이창양 산업부 장관과 황 사장이 연이어 폴란드를 찾아 ‘원전 세일즈’를 벌일 끝에 결실을 냈다. 이 장관은 “2030년까지 원전 수출 10기 목표 달성을 위해 엘다바 수출에 이어 폴란드 협력 사업도 적극 지원해나가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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