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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율의 정치난타] 빈곤 포르노! 그 언어의 정치학

명지대 정외과 교수

간결한 문구로 메시지 전달할 때

그 말이 '정치적 무기'가 될 텐데

생소한 단어 쓰며 해석 논란 자초

국민 눈높이 맞춰 언어 선택해야





정치는 언어를 매개로 하는 ‘사회적’ 활동이다. 언어의 일반적 역할은 가능한 범위 내에서 실체를 정확히 반영하는 것이다. 그런데 정치적 영역에서의 언어의 역할은 조금 다르다. 정치에서도 언어는 실체를 반영하는 역할도 하지만 우리가 특정 사안 혹은 인물을 보는 태도와 방향성을 구조화시키는 역할도 담당한다. 즉, 특정 사물 혹은 인물을 보는 ‘태도와 방향’을 ‘창조’하는 역할을 언어가 담당한다는 것이다. 네이밍을 통해 상대를 공격하는 것이나 프레임으로 공격하는 것을 그런 사례로 볼 수 있다. 과거 ‘차떼기’라는 용어나 ‘세금 폭탄’과 같은 용어로 상대를 공격했던 것이 구체적인 사례다. 이렇듯 정치에서 언어는 중요한 ‘정치적 무기’로써의 역할을 한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점이 있다. ‘정치적 무기’로써 언어를 사용하려면 말 한마디로 국민들의 공감을 끌어낼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국민들이 정치인의 언어를 ‘생소하게’ 느끼고 그 의미 파악에 상당한 시간을 소비해야 한다면, 일반인들은 자신들의 이해 범주 내에서 해당 용어를 이해한다. 먹고살기도 바쁜데 정치인이 쏟아낸 생소한 언어를 이해하려고 노력하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그렇기 때문에 생소한 용어를 정치인이 사용한다면 ‘정치적 무기’로써 언어의 역할은 불가능해진다.

요새 정치권에서 가장 뜨거운 화두로 등장하는 ‘빈곤 포르노’가 바로 그런 사례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포르노는 ‘인간의 성적(性的) 행위를 묘사한 소설·영화·사진·그림 따위를 통틀어 이르는 말’로 정의된다. 그런데 ‘빈곤’이라는 단어와 합해진 ‘빈곤 포르노’는 ‘빈곤에 시달리는 사람들의 상황을 자극적으로 묘사한 소설·영화·사진·그림 따위를 통틀어 이르는 말, 또는 그것으로 동정심을 일으켜 모금을 유도하는 일’로 정의한다. ‘빈곤 포르노’ 논란이 일자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는 “‘포르노’에 꽂힌 분들은 이 오랜 논쟁에 대해 한 번도 고민 안 해본 사람임을 인증한 것이다. 이성을 찾자”면서 “한국식 ‘먹방’은 외국에서 ‘코리안 푸드 포르노(Korean food porn)’라고 하는데, 그럼 먹방 유튜버들이 포르노 배우라는 것인가”라고 말했다.



이 전 대표 본인은 ‘빈곤 포르노’라는 단어에 대해 ‘정통’한 것 같다. 그런데 자신이 해당 단어에 대해 잘 안다고 다른 일반인들도 그럴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정치인이라면 더욱 그렇다. 일반인들은 포르노라는 단어는 알아도, 빈곤 포르노라는 단어는 처음 듣는 이들이 태반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대다수의 사람은 ‘빈곤 포르노’를 자신이 알고 있는 범주에서 이해할 수밖에 없다. 즉, 빈곤의 상업화라는 본래적 의미보다는 포르노라는 단어에 주목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정치를 한다는 이들이, 일반인들에게 생소하고 ‘오해의 소지’가 있는 단어를 써 놓고 이를 잘못 이해하는 이들을 향해 ‘학문적 용어’ 혹은 ‘포르노에 꽂힌 분들’이라는 식으로 말한다면, 이는 정치인으로서 올바른 자세가 아닐뿐더러 자신들의 의도 전달에도 실패할 수밖에 없다.

정치인이라면 모름지기 국민들이 가장 쉽게 알아들을 수 있는 보편적인 단어, 그리고 국민들이 정치인의 발언 의도를 ‘쉽고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는 단어를 선택해야 한다. 여기서 다음 대선에 출마를 선언한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 정치인으로서 그의 강점은 아주 쉬운 단어를 사용해 자신의 정치적 메시지를 전달한다는 점이다. 그의 언어는 초등학교 학생들도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쉽고 간결하다. 이렇듯 트럼프는 간단한 단어로 복잡한 현상을 쉽게 설명하는 능력을 갖고 있다. 이번 ‘빈곤 포르노’ 논란의 중심에 있는 정치인들과 대비되는 측면이다.

여기서는 특정인에 대한 공격이 옳다 그르다를 논하려는 것은 아니다. 단지 상대방을 공격하려면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단어를 사용해야지, 이렇듯 생소한 단어를 사용하면 당초에 공격하려는 내용은 사라지고 용어 해석을 둘러싼 논란만 남는다는 점을 지적하려 한다. 정치인은 모름지기 국민을 계몽시키거나 가르치려 들어서는 안 된다. 또한 국민들과 같은 눈높이에서, 국민들의 일상적 정서에 자신을 실어야 한다. 그런 면에서 이번 논란은 반면교사의 사례가 될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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