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내 최후의 보루 역할을 담당해야 할 국립대병원도 전공의 충원율 미달로 필수의료 공백이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공의 수련을 담당하는 국립대병원의 필수의료 과목 충원율은 최근 5년새 20% 포인트 가까이 하락했다. 고질적인 인력난에 시달려 온 흉부외과의 경우 올해 1년차 전공의를 한명도 받지 못한 병원이 5곳이나 됐다.
12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이종성 국민의힘 의원이 보건복지부로부터 받은 ‘2017~2022년 수련병원별 전공의 정원 및 충원 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국립대병원의 필수의료 과목 전공의 충원율은 78.5%로 5년 전보다 16.6% 포인트 급감했다.
2017년만 해도 전공의 충원율이 95.1%였지만 2018년 91.3%, 2019년 90.6%, 2020년 88.8%, 2021년 82.9% 등으로 빠르게 하락하는 추세다. 이 의원은 “권역 내 필수의료 협력체계를 총괄하는 국립대병원(권역책임의료기관)에서조차 충원율이 위기 수준으로 저조한 것으로 나타났다”며 "의료 약자의 생명과 직결되는 문제인 만큼 조속한 시일 내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과목별 충원율을 살펴보면 필수 진료영역의 공백이 더욱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고질적인 인력난에 시달려 온 흉부외과를 필두의 경우 강원·충북·충남·경상·제주대병원 등 5곳이 전공의 충원율 0%를 기록했다. 분당서울대병원은 3명 정원에 1명을 받아 33%로 집계됐고, 부산·경북·전남대병원은 절반(50%)을 겨우 채웠다. 최근 동네의원 오픈런 사태와 문닫는 응급실이 속출하며 화두가 되고 있는 소아청소년과도 미달이 속출했다. 충남·경상·경북·전남대병원 등 4곳이 0%였고, 전북대병원은 50%에 그쳤다. 응급의학과도 경상·경북대병원 등 2곳이 0%, 제주대병원이 50%로 저조했다. 외과 역시 부산대병원(33.3%), 충북대병원(50%), 경북대병원(66.7%) 등으로 전공의 충원율이 정원에 한참 못 미쳤는데 다른 진료과에 비해서는 그나마 나아보였을 정도다.
필수의료 과목의 낮은 전공의 충원율은 국민들의 의료서비스 질 하락으로 직결될 수 있다. 해당 자료에 따르면 전국 주요 국립대병원 15곳의 소아청소년과 평균 진료 대기일수는 2017년 9.7일에서 지난해 16.5일로 5년새 약 70% 늘어났다.
부산대병원의 소청과 대기일수는 11.6일에서 34.5일로 3배 가량 늘어 증가폭이 가장 컸다. 올해 소청과 전공의를 한 명도 뽑지 못한 충남대병원의 평균 진료 대기일수는 7일에서 15일로 2배 이상 늘었다. 마찬가지로 충원율 0%인 경북대병원은 10일에서 16일로 대기일수가 길어졌다.
초저출산 여파로 젊은 의사들의 외면을 받고 있는 산부인과도 사정이 다르지 않았다. 산부인과 전공의 충원율 0%인 전북대병원은 5년새 진료대기 일수가 5일에서 10일로 2배 늘었다. 5일)보다 10일 늘어났다. 분당서울대병원의 경우 올해 산부인과 전공의 정원을 100% 채우고도 평균 진료 대기일수가 33일로 5년 전(16일)보다 2배 가량 늘었는데, “지방병원 산부인과 전공의 부족으로 인한 ‘쏠림현상’이 나타났다”는 게 의원실의 지적이다.
국내에서는 지난해 여름 서울아산병원에서 근무 중 뇌출혈로 쓰러진 간호사가 수술할 의사가 없어 다른 병원으로 전원했으나 사망한 사건을 계기로 필수의료의 위기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이어 코로나19의 직격탄을 맞았던 소아청소년과의 2023년도 상반기 수련병원 전공의(레지던트) 지원율이 15.9%로 곤두박칠치고, 심야시간대 소아 응급실을 운영하지 않는 병원들이 속출하면서 심각성을 일깨우고 있다. 대한소아청소년과학회는 "대량 진료에 의존하던 소아청소년과가 코로나19 장기화로 진료량마저 40% 급감했다"며 “전 세계적으로 유래없는 초저출산과 업무강도에 못 미치는 낮은 보상수가가 근본 원인”이라고 지목한다. 이 의원은 “의료인들이 소아청소년과에 가고 싶을 정도로 의료의 인적·물적 인프라에 장기적으로 투자하고, 수가도 올릴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