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 관가가 뒤숭숭하다. 문재인 정권의 역점 과제를 수행했던 관료들이 최근 징역형을 선고받는 등 사법 처리가 속속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관가에서는 “윗선에서 내려온 명령을 실무자가 어떻게 거부하느냐”며 “사법절차 남용으로 공무원의 복지부동이 더욱 심해질 것”이라는 불만이 감지된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공무원제의 가장 중요한 목적이 선출직의 부당한 행위에 동조하지 말라는 것”이라며 “자성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주문한다.
"윗선 지시 어떻게 거부하나"
실무자들 억울함·불만 팽배
"몸 사리고 복지부동만 심화"
13일 정부 부처 등에 따르면 전 정부를 겨눈 사정 당국의 전방위적 수사에 실무자들이 처벌받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월성원전 1호기 관련 문건을 삭제한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은 산업통상자원부 공무원들이 대표적이다. 대전지법 11형사부는 9일 산업부 공무원 3인에 징역 8개월~1년,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이들은 ‘월성 1호기를 더 가동할 필요가 있다’고 백운규 전 산업부 장관에 말했다가 “너 죽을래”라고 질책을 받았고 ‘감사원 감사를 어떻게 알고 자료를 삭제했느냐’는 질문에는 “나도 내가 신내림 받은 줄 알았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심이 선고됐으니 곧 행정안전부에서 중앙징계위원회가 열리게 된다. 금고 이상의 형을 받은 만큼 해임이나 파면이 유력하다. 산업부 내부에서는 이 일에 대해 함구하는 분위기지만 타 부처에서는 “(위에서 시키는데) 별다른 수가 있었겠나. 안타깝다”는 말이 나온다.
"선출직 부당 명령 거부 위해
공무원의 직업 안정성 보장
안타깝지만 자성계기 삼아야"
식품의약품안전처도 12일 검찰의 압수 수색을 받았다. 코로나19 백신과 치료제 등 의약품 임상 시험 승인 과정에서 불법행위가 있었다는 의혹 때문이다. 정부는 국가신약개발사업단을 통해 2020년 9월부터 지난해 11월까지 약 2년간 ‘코로나19 치료제·백신 신약 개발 사업’을 진행했다. 사업단은 이 기간 동안 코로나19 치료제 개발사 5곳과 백신 개발사 9곳 등 총 14곳의 임상 과제를 지원했으나 셀트리온과 SK바이오사이언스 두 곳만 신약 개발에 성공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팬데믹 위기에서 현 정부라고 당시와 다른 선택을 내릴 수 있었을까”라며 “불법·특혜가 있었다면 모르겠지만 의약품 개발에 실패했다고 이들 공무원이 처벌을 받는다면 앞으로 규제 부처의 복지부동이 더 심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세종 관가에서는 이들 국·과장급 공무원을 보며 안타깝다는 반응을 나타냈다. 장·차관, 청와대 비서관 등 책임자들은 멀쩡한 상황에서 힘없는 실무자만 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잘해보려고 한 일이었는데 형사처벌을 받고 공무원직도 잃게 된다면 누가 적극 행정에 나서겠나”라며 “보신주의가 더 강화될 것”이라고 투덜거리기도 한다.
전문가들은 부당한 선출직의 명령에 거부하기 위해 공무원의 직업 안정성을 보장하는 것이라며 처벌받은 공무원이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다고 지적한다. 김태윤 한양대 행정학과 교수는 “요즘 말로 ‘누칼협(누가 칼 들고 협박했나)’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며 “선출직의 부당한 행위에 동조하지 말라는 것이 해고가 불가능하도록 만든 우리나라 공무원제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박정수 이화여대 행정학과 교수도 “안 되는 것은 하지 말아야 한다고 공무원이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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