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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정 서울대 총장 "세계적 반향 일으킬 도전 생태계 필요…대학·지식인이 나서야"

[이달말 임기 마치는 오세정 서울대 총장 특별 대담]

복합위기에도 정치권은 미래비전 대신 당리당략 매몰

학문 융복합화 절실…다전공생 비율 60%까지 높여야

학종 투명화해 수시 확대 등 대학 규제 완화도 시급

오세정(왼쪽) 서울대 총장이 19일 서울 관악구 서울대 총장실에서 손동영 서울경제신문 대표와 특별 대담을 하고 있다. 오승현 기자




“우리나라는 정부, 대학, 국가 연구개발(R&D) 시스템 등 사회 전반적으로 선도국에서 안 한 것은 도전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어요. 한류 현상처럼 세계적으로 반향을 일으키려면 창의적·독창적으로 과감히 도전할 수 있는 생태계를 만들어야 합니다.”

31일 4년 임기를 마치는 오세정 서울대 총장은 19일 서울 관악구 신림동에 있는 서울대 총장실에서 손동영 서울경제신문 대표와 ‘고별 특별 대담’을 갖고 “정부는 입시 제도와 등록금 등 세세하게 대학을 규제하고 정치권은 퍼펙트스톰(초대형 복합 위기)에도 미래와 통합보다 당리당략에만 매몰돼 있다”며 이같이 밝혔다. 이런 때 대학과 지식인이 나서 나라의 앞길을 제시해야 하지만 오히려 지식인 중에는 곡학아세의 궤변으로 분열을 부추기는 경우도 많다는 게 그의 지적이다.

특별대담= 손동영 본지 대표

-우선 최근 세계 최대 전자·정보기술(IT) 전시회인 CES에 다녀왔는데 어떠셨나. CES가 너무 한국판이 됐다는 지적도 있는데.

△5년 전 CES에 갔을 때는 중국 기업이 상당히 많았는데 이번에는 미중 패권 전쟁의 영향으로 거의 없었다. 우리 기업이 미국에 이어 두 번째로 많았다. 서울대도 교수와 학생의 창업 기업 부스를 만들었다. 암호기술 전문가인 천정희 교수가 창업한 회사에는 인터폴도 관심을 보이더라. 이렇게 대학, 정부와 공공기관·지방자치단체, 대기업 등이 각각 부스를 크게 냈다. 다만 국내 홍보용으로 접근하는 경우는 문제라고 본다.

-올 신년사에서 ‘지성의 빈곤과 타락이 부른 난세’라며 지식인들이 곡학아세의 궤변을 늘어놓는다고 일갈했는데 어떤 이유에서인가.

△지식인들이 대선철만 되면 캠프로 몰려 대학 분위기가 혼탁해진다. 자성해야 한다. 그나마 그 분야에서 인정받은 사람이라면 괜찮은데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적지 않다. 지식인들이 최소한 팩트(사실)에 동의하고 주장해야 하는데 사실 자체를 왜곡해 분열을 부추기기도 한다. 차분하게 대한민국이 나아갈 길을 제시해야 한다.



-그동안 공공기관장과 국회의원, 대학 총장 등 다양한 역할을 해오셨는데 이 중 어떤 게 가장 힘들었나.

△국회의원 시절이 재미없었다. 국회에서 비판하고 못 하게 할 수는 있는데 집행권이 없어 뭘 하는 것은 힘들다. 중요한 법안을 내놓아도 논의도 잘 안 한다. 2년 이상 초선 비례대표를 했는데 ‘내가 한 게 뭔가’ 자괴감이 들 정도였다. 의원들이 국가보다는 총선 당선과 당리당략을 먼저 생각하는 폐단이 있더라. 마침 서울대 총장 유고 사태가 나 ‘와달라’는 의견이 있어 총장 선거에 도전했다. 하지만 보좌진 9명 중 직장을 잃게 된 사람이 있어 참 미안했다.

-정치가 사회 변화 선도는커녕 후행도 모자라 장애물로 전락한 게 현실이다. 퍼펙트스톰 국면에서 정치 리스크가 커 큰일이다.

△정치인은 다음 선거에 당선되는 게 목표다. 미래보다는 현안에 매몰될 수밖에 없다. 인지도를 높여야 하지만 반대파가 생기지 않도록 대세를 따르는 경향이 있다. 능력과 비전이 있어야 사회를 이끌 수 있는데 표로 먹고사는 입장이라 참 쉽지 않다. 대학과 지식인·전문가가 정신 차리고 우리 미래와 통합을 위한 큰 그림을 제시하며 여론을 끌어줘야 한다. 그러면 정치권도 따라올 것이다. 2021년 말 서울대에 국가미래전략원이라는 싱크탱크를 만들어 열심히 활동하고 있으나 예산이 부족해 안타깝다. 국회에도 2018년 국회미래연구원이 출범했으나 아직 주목할 만한 성과가 보이지 않는다.

-여러 소회가 들 텐데 교육 혁신, 인재 양성 측면에서 보면 대학의 변화가 너무 더딘 감이 든다.

△답답하다. 지금은 산업화 시대의 지식 주입과 전공 교육에 초점을 맞추던 패러다임으로는 안 된다. 세상이 너무 빨리 바뀌어 학문의 융·복합화가 필요하다. 저는 학생들에게 선택권을 주는 데 신경을 많이 썼다. 복수전공·부전공을 많이 할 수 있게 해 다전공 졸업생이 3분의 1 정도 되는데 이 비율을 3분의 2까지 높였으면 한다. 일부 학부생이 전공 학과를 바꾸거나 대학원생이 전공 이외 지도교수도 택할 수 있도록 했다. 대학원 융합 과정도 많이 만들었다.





-코로나19 팬데믹 사태를 대학 혁신의 계기로 삼을 수 있었지만 별로 그렇게 되지 못했는데.

△동의한다. 2019년 초 일부에서 ‘학교가 가라앉는 배 같다’는 지적까지 나올 정도로 어려울 때 취임해 정상화를 위해 노력하던 중 2020년 2월 팬데믹이 터졌다. 이로 인해 비대면 수업을 많이 해 어려웠으나 온라인 강의 활성화 등 좋은 점도 있었다. 예를 들어 컴퓨터 입문을 듣고 싶은 학생이 많은데, 실습은 나눠 하되 온라인 수업은 대거 들을 수 있게 했다. 해외 석학 초청도 쉽지 않은데 온라인 강의로 해결했다. 하지만 대면 수업과 활동이 줄면서 학생들의 정신건강이 힘들어진 측면도 있다.

-학생들이 치열한 경쟁에 시달리면서도 미래 희망을 잘 찾지 못해 힘들어 한다.

△심리 테스트를 하면 서울대생의 3분의 1 정도가 불안감을 보이고 치료가 필요한 경우도 10% 가까이 된다. 재작년에 선진국 공인을 받을 정도로 경제적으로 풍요로워졌는데 행복지수를 보면 그렇지 않다. 교육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 초중고도 그렇지만 대학에서 각자 능력이 다른 학생들에 맞춰서 교육을 시켜야 한다. 대학원 교육 활성화도 시급하다. 서울대부터 변해야 한다.

-그동안 성취한 점과 아쉬운 점을 꼽는다면.

△우선 복수전공 등 학생 선택권을 넓혔다. 수익 사업화를 위해 SNU홀딩스라는 지주사도 만들었다. 서울대가 법인화된 지 10년이 넘었지만 무엇이 바뀌었는지 교수들도 잘 모를 정도다. 법인화의 의미는 교육부가 아닌 이사회의 권한을 강화해 자율성을 높이고 수익 사업도 하자는 취지였다. 그동안은 거의 못했는데 바꿔나가야 한다. 서울대가 법인화 당시 비과세 조항을 빠뜨려 수원의 농대 땅 등에 연 200억 원의 세금이 부과된 것도 우여곡절 끝에 법을 바꿔 해결할 수 있었다.

가장 아쉬운 점은 서울대의 입시 제도를 바꿔 사회에 기여하려고 했으나 하지 못한 것이다. 아주 세세한 규정까지 교육부가 다 정해 바꿀 수가 없었다. 대학이 할 수 있는 게 수시(학생부교과·학생부종합·논술 전형)와 정시(수능) 비율 조정밖에 없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조국 사태’ 때문에 정시를 늘리라고 했는데 사실 내신과 학생부 기록을 보는 학생부종합전형을 투명화해 더 늘릴 필요가 있다. 정부가 입시 제도를 풀어줘야 한다.



-올해까지 15년 연속 등록금을 동결하는 등 정부의 여러 규제도 있지만 항공모함 같은 대학이 스스로 혁신에 잘 나서지 못했다는 지적이 있다.

△서울대는 방대한 연합 대학이라 할 수 있다. 문·이과 간 관심사나 성향·정서가 달라 통합이 어렵다. 교수 가운데 고집이 센 사람도 많다. 단과대의 특수성·자율성을 인정하면서도 본부가 목표를 향해 장기적 변화를 끌어내는 게 쉽지 않다. 교수와 외부 전문가 등 100여 명으로 ‘2025~2040년 서울대 발전 계획’을 위한 위원회를 꾸려 느슨한 합의를 이뤘다. 무전공 신입생 선발 등 학과·전공 간 벽 깨기, 9월 학기 3학기제, 도전적 융합 연구 지원, 재정 확충, 베트남 하노이 캠퍼스 추진 등의 국제화 등을 들 수 있다. 특히 잘하는 총장은 연임이 가능하도록 규정을 바꿨다. 여태까지는 선진국의 대학을 따라하면 됐지만 이제는 우리만의 모델을 확립하려면 중장기 리더십이 필요하다.

-협동심을 키우기 위해 미국 대학이나 국내 과학기술 특성화대처럼 1학년 전원 기숙사 생활도 추진했다.

△1학년생들에게 ‘한국과학기술원(KAIST)이나 포항공대(포스텍) 등의 친구들은 군대도 안 갈 수 있고 학비도 안 내는데 서울대에 온 것을 후회하지 않느냐’고 물어봤더니 ‘과기 특성화대 동창들을 만나면 뭔가 답답하다’고 하더라. 인문 사회 계열 소양을 쌓기 어려워서다. 하지만 팬데믹과 취업난으로 종합대학의 여러 기회를 제대로 살리지 못했다. 더욱이 관악 캠퍼스 기숙사가 신입생의 절반만 들어갈 수 있어 시흥 캠퍼스에 기숙사를 크게 지으려 했지만 학생들의 반발로 무산됐다. 이에 45년 된 관악 기숙사의 재건축을 추진해 1학년 전원을 수용할 계획이다.

-서울대의 이미지가 국가 성장 동력 창출 등 좀 더 미래 지향적으로 바뀌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렇다. 그동안 대기업이나 공직·법조계 등 위주로 갔다. 이제는 독창적으로 남이 안 한 것을 해야 한다. 본부에 창업지원단을 만들고 교수 창업도 지원하고 학생의 창업 휴학도 늘려줬다. 고(故) 김정식 대덕전자 회장으로부터 500억 원을 기부받아 인공지능(AI) 연구 빌딩도 지었다. AI 연구소와 데이터사이언스대학원을 만들고 학교 주변에 AI 밸리 조성에도 나섰다. 공대·의대·자연대는 물론 인문 분야도 AI와 접목해야 한다. 서울대가 미래 성장 동력을 창출하면서 지방 국공립대가 지역의 혁신 거점이 되도록 도와야 한다.

He is…

1953년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대 수석 입학, 수석 졸업의 기록을 세웠다. 미국 스탠퍼드대 물리학과 석·박사를 취득한 뒤 제록스 연구원을 거쳐 1984년 서울대 교수로 임용됐다. 한국연구재단 이사장과 기초과학연구원(IBS) 초대 원장을 지냈다. 2016년 비례대표 의원(국민의당)으로 당선돼 2년 이상 활동하다가 바른미래당 의원직을 사퇴한 뒤 2019년 2월 서울대 총장에 취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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