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검색
팝업창 닫기
이메일보내기

6·25전쟁 민간사망 약 30% 여성인데…'민방위 의무' 왜 남성만 지나

[민병권의 군사이야기 '온라인 증보판']

한국전쟁, 우크라이나전 민간인 피해 상황 보니

민간사망 30~40%가 여성…폭격이 주요 원인

민방공 대피교육 절실하지만 여성계 등 반발

해외 선진국은 민방위에 남녀노소 구분 없어

안보·재해 리스크 커지는데 민방위대원은 급감

2000년 751만→작년 342만명 반토막 수준

대선 표심 잡으려 민방위 연령대 줄인 게 원인

한국전쟁 시기인 1951년 1월 14일 경기도 오산지역에서 피난 중인 모자의 모습. 당시 AP 종군기자였던 맥스 데스퍼(Max Desfor)가 촬영한 흑백원본 사진을 서울경제신문이 컬러화하고 해상도를 높여 복원했다. 전쟁의 참상은 여성에게도 미친다는 점에서 전시대비 대피 및 구호 교육에 여성도 포함시켜야 한다는 게 민방위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사진원본=AP종군기자 맥스 데스퍼 작품




#1950년 6월 25일 북한이 남침하면서 1953년 휴전에 이르기까지 대한민국에서 발생한 민간인 사망자수는 무려 24만4663명에 이르렀다. 같은 기간 국군 전사자수(13만7899명)보다 많은 민간인이 한국전쟁으로 목숨을 잃은 것이다. 그중 여성 민간인의 비중은 32.1%(7만8559명)으로 집계됐다. 특히 개전초기 사망의 가장 큰 원인은 공중폭격이었다. 서울시 공포처 통계국의 1950년 6월 25일~9월 28일 통계자료에 따르면 해당 기간 사망한 여성은 4360명이었는데 그중 약 43%(1862명)가 공중폭격으로 목숨을 잃었다. 일반 포격 및 총격에 따른 여성 사망자도 같은 기간 여성 사망자수의 약 23%(997명)에 이르렀다.

#러시아가 지난해 2월 24일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후 민간 주거지역에까지 무차별 미사일 폭격 등을 가하면서 민간인 희생자도 꾸준히 늘고 있다. 유엔 인권고등판무관실(UNHCHR)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전쟁 개전 후 올해 1월 9일까지 누적된 우크라이나 민간인 사망자수는 6952명이다. 그중 성별이 사망자는 5046명인데 해당 인원의 약 40.3%(2033명)가 여성이었다. 민간인 사망자의 대부분은 공습, 포격, 미사일공격으로 인해 발생했으며 실제 사망자수는 이번 통계보다 더 많았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판무관실은 전했다.

위와 같은 한국전쟁 및 우크라이나전희생자 통계는 전쟁 발생시 군인 뿐 아니라 민간인들도 상당한 희생을 감수해야 한다는 점을 시사한다. 특히 사망자 중 30~40%가량이 여성이었다는 점은 평소에 전시에 대응한 대피훈련 및 대응교육 등에는 남녀의 구분을 두어선 안된다는 점을 방증한다. 무엇보다도 개전초기 공습폭격 및 지상군의 포격 등에 대비하는 것이 민간 사망 피해를 줄일 수 있는 지름길이라는 것을 해당 통계를 통해 여실히 알 수 있다.

우크라이나 여성이 러시아 침공 이튿날인 지난해 2월 25일(현지시간) 수도 키이우에서 로켓포격에 무너진 주택들 사이를 지나며 비통한 표정을 짓고 있다. 우크라이나전과 한국전쟁의 공통점은 민간인 사망자의 대다수가 개전초기 공중폭격, 포격 등에 의해 발생했으며 그중 30~40%안팎이 여성이었다는 점이다. 사진=AP·연합뉴스


우리 정부의 민방위체계는 이 같은 문제점을 잘 반영해 짜여졌다. 북한이 대남도발시 수도권에서 가장 많은 민간인 희생자수를 낼 것으로 추정되는 재래식 무기는 장사정포 및 각종 단거리탄도미사일, 화생방 공격일 것이라고 군사전문가들은 추정하고 있다. 정부의 민방위 표준훈련 지침서(2023년도 훈련 지침 기준)는 민방공 대피훈련의 최우선 중점사항으로 장사정포, 미사일, 화생방 등의 공습상황에 대비, 국민의 대피요령 숙달에 중점을 두고 훈련을 실시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또한 공습경보 발령시 주민 대피 사항 등 민간의 대응방안에 대한 교육·훈련 내용이 잘 정리돼 있다.

그러나 이처럼 대비된 민방위체계가 실제 운용 과정에선 직면한 위협 상황에 역주행하고 있다. 평시 및 전시의 각종 안보위협과 재난·재해에 대응해 인명을 구하기 위한 민방위대 편성에 여성은 배제돼 있고, 남성도 20~40세 연령대에만 국한돼 있다. 이에 따라 여성을 민방위 교육에 참여시키는 등 민방위체계에 더 많은 시민들을 평시에 포함시켜 유사시 자신의과 가족, 이웃의 생명을 구할 수 있도록 숙달시켜야 한다는 게 민방위 및 국방 전문가들의 지적이지만 이른바 성대결 논란에 가로 막혀 있는 상태다. 이번 ‘민병권의 군사이야기’ 온라인 증보판은 서울경제신문이 지난 28일자 조간으로 다뤘던 ‘민방위대 20년새 반토막’기사를 보강해 정치 포퓰리즘과 사회적 갈등에 멍든 대한민국 민방위제도의 현주소를 진단한다.

지난해 4월 20일 광주 서구 광주도시공사 건물 옥상에서 미사일 공격 상황시 대응하기 위한 민방위 훈련이 진행되고 있다. 연합뉴스




◇김기현 의원 ‘민방위 개편론’에 반발하는 여성계

최근 국민의힘 당권 주자인 김기현 의원이 입법을 추진하고 있는 여성의 민방위 훈련 참여가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이에 대해 야당 및 여성 단체는 물론 여당 내 일각에서도 성 대결, 세대 갈등이 초래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그러나 기왕 이슈화된 김에 민방위제도에 대한 전반적 개선점을 찾아 보강해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의견도 적지 않다. 전 세계적으로 안보·재난 리스크가 커지는 와중에 국민들의 생존성을 높여야 할 한국의 민방위 교육은 갈수록 축소되고 필요 물자와 인프라는 태부족하기 때문이다.

행정 및 국방 당국에 따르면 우리나라 민방위대는 병역제도의 한 종류로 도입됐으나 민방위 대원이 대응해야 하는 위기 상황은 보다 광범위해졌다. 특히 국방 뿐 아니라 지진·해일과 같은 자연재해 등의 민간 부문 리스크에 대비하기 위한 측면이 민방위제도에서 한층 강조돼왔다. 민방위기본법에서 민방위사태의 정의가 복잡해진 것만 봐도 이 같은 추세를 알 수 있다. 1975년 법 제정 당시 민방위사태는 ‘적의 침공이나 전국 또는 일부 지방의 안녕질서를 위태롭게 할 재난’으로 한정됐다. 반면 현재는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사태, 적의 침투·도발에 따른 통합 방위 사태, 행정안전부 장관의 재난 사태 선포 상황, 중앙대책본부장의 특별재난지역 선포 상황 등으로 다변화됐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지난 12일 백령도 안보 현장을 방문해 비상대비체계 및 민방위대피시설 등을 점검하고 있다. 사진제공=행안부


◇재난에 맞설 대원 수 급감

이처럼 대응해야 할 상황이 확대됐음에도 정작 인력은 2000년대부터 급격히 줄었다. 민방위대가 공식 창설된 1975년 9월 당시 397만 명이던 인원은 2000년까지 점증해 751만 명에 이르렀으나 이후 급감해 2022년도에는 반 토막에도 미치지 못하는 342만 명에 그쳤다. 일각에서는 총인구수가 줄었으므로 민방위 대원 수의 감소는 당연하다는 평가도 내놓는다. 그러나 인구수가 아닌 인구 비율로 봐도 인력 부족 현상이 확연하다는 점에서 이 같은 주장은 타당성이 없다. 국내 인구수 대비 민방위 대원 수 비율은 2013년 7.5%에서 10년 동안 지속적으로 줄어 2022년에는 6.6%까지 낮아졌다. 민방위 분야의 ‘인력 절벽’ 현상이 본격화된 것이다.

이 같은 감소세는 저출산 등의 탓도 있지만 더 직접적인 원인은 민방위 편성 연령을 대폭 축소한 포퓰리즘 정책에 있다. 1975년 민방위대 출범 당시 만 17~50세 남성이던 대원 편성 범위는 1989년에 하한 연령이 만 20세로 상향 조정되더니 김대중(DJ), 노무현 정부 시절에는 각각 상한 연령을 대폭 낮추는 입법이 실시되면서 2001년에는 45세, 2007년에는 40세로 편입 연령 상한이 떨어졌다. 당시 사정을 잘 아는 전직 당국자는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 여당이 주도해 민방위 상한 연령을 크게 낮추는 정책을 추진했다”며 “당시 민생 등을 고려한 측면도 있었겠지만 대선을 앞두고 중년층의 표심을 얻으려는 정치적 결정이라는 평가도 있었다”고 전했다.







교육시간도 대폭 후퇴, 방독면 대응물자 태부족

조경태 의원 보완 법안 발의했지만 국회서 폐기

정부, 경보체계 표준화 정책도 국회입법 불발돼

달라진 안보·재난 환경 맞춰 제도 전반 보완해야

◇교육·물자 측면에서도 빈틈

민방위제도는 질적 측면에서도 후퇴하고 있다. 인력만 줄어든 게 아니라 교육 시간 등도 급감한 것이다. 1975년 한 해 4시간이던 민방위 교육 시간은 1977년 30시간까지 늘어 정점에 이른 뒤 1978년 20시간, 1982년 10시간, 1988년 8시간으로 줄더니 2007년에는 편성 연차에 따라 2시간·4시간 수준까지 떨어졌다. 지난해부터는 5년 차 이상의 민방위 대원은 아예 연간 1시간만 교육을 받으면 된다.

이에 대해 한 군 당국자는 “남성들 대부분이 병역을 마치고 예비군까지 경험한 상태여서 어지간한 전시·재난 대비 요령은 숙달돼 있어 민방위 교육 시간이 감소해도 큰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라면서도 “다만 줄어든 시간 동안 집중도 있게 교육이 이뤄져야 하는데 다소 형식적으로 진행되는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8월 24일 오후 인천시 부평구 부평구청역에서 열린 화생방 테러 대응 합동훈련에서 민방위 대원들이 방독면 착용을 연습하고 있다. 그러나 호흡기 보호를 위한 방독면만 착용하고 있으며 화학작용제 등으로부터 피부 보호를 위한 보호의를 잆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 여전히 미비한 화생방 대응 민방위 비축물자의 현황을 짐작할 수 있다. 사진=연합뉴스


유사시 대응 물자 부족 등의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정책은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특히 북한이 지난해 선제 핵 타격 방침을 법으로 못 박고 전술핵무기 등의 실전 배치를 가속화하려 하면서 이에 대응하기 위한 인프라·물자 확충이 시급해졌지만 입법·예산 모두 불발됐다. 2017년 당시 조경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핵 및 화생방전에 대비하기 위한 방독면·요오드화칼륨 등의 지방자치단체 비축량이 턱없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해당 물자를 지자체들이 민방위 대비 물자로 비축하도록 민방위기본법을 개정하는 방안이 추진됐으나 국회 소관 상임위원회에서 제대로 된 대체 토론 한 번 없이 법안이 폐기됐다. 그에 앞서 2016년 정부가 접경지 주민들이 적의 일시적 도발 등으로 피해를 입을 경우 받을 수 있는 구호 조치의 요건을 민방위사태 이외의 경우로 완화하고 신속 정확한 민방위 경보 발령 체계 표준화를 추진하기 위한 법안도 국회에 제출됐지만 아예 소관 상임위에 심사 한 번 이뤄지지 않고 폐기됐다. 여야는 민방위 관련 지급 비용 인상 등과 같이 당장 표심을 살 수 있는 선심성 입법안 등을 내놓는 데 집중하는 분위기다.



◇이대남만 짊어진 재난 구호 의무

민방위 체계가 이처럼 인적·물적·제도적으로 빈틈을 보이고 있지만 인기 없는 제도이다 보나 정부·여야 모두 전면적인 제도 수술 기피하고 있다. 특히 신생아 남녀 출산 비율이 역전돼 ‘여초’ 현상이 가속화됨에 따라 인력 감소세는 더욱 가팔라질 것으로 전망된다. 대한민국에서 민방위 편성 의무는 남성만 지고 있으며 그중에서도 20~40대에 국한돼 있기 때문이다.

민방위제도를 도입한 해외 주요 국가 중 남성에게만 민방위 편성을 의무화한 곳은 스위스뿐이다. 그나마 스위스는 병역을 마친 남성에게는 민방위 편성 의무를 면제해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만·이스라엘·스웨덴·덴마크 등은 남녀를 의무적으로 민방위 편입 대상에 포함시켜놓았다. 이들 국가는 연령 하한선을 10대 청소년(16세)으로 정해놓았고 국가에 따라 60대나 70대 노인들도 포함시키고 있어 남녀노소를 구분하지 않고 있다. 의무제가 아닌 지원제로 민방위를 운용하는 미국·영국·독일·프랑스·싱가포르 역시 남녀 차별을 두지 않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전했다.

이에 대해 군 관계자는 “우리나라에서 민방위제도는 남성들의 병역제도와 연계된 연장선상에서 탄생하다 보니 병역 의무를 지지 않는 여성·청소년·노인 등은 자연스럽게 민방위 편성 대상에서 제외된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하지만 이제 민방위 교육은 전시 대비 훈련 수준이 아니라 평시에 각종 재난·재해에 대응해 스스로를 지키고 타인을 구난하는 민간 차원의 제도로 확장된 만큼 연령과 성별 제한을 점진적으로 풀어 전 국민이 재난에 실질적으로 대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6 트윈트리타워 B동 14~16층 대표전화 : 02) 724-8600
상호 : 서울경제신문사업자번호 : 208-81-10310대표자 : 손동영등록번호 : 서울 가 00224등록일자 : 1988.05.13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4065 등록일자 : 2016.04.26발행일자 : 2016.04.01발행 ·편집인 : 손동영청소년보호책임자 : 신한수
서울경제의 모든 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은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 Sedaily, All right reserved

서울경제를 팔로우하세요!

서울경제신문

텔레그램 뉴스채널

서울경제 1q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