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검색
팝업창 닫기
이메일보내기

"중동 왕족 행세까지…'꾼들' 술수 더 악랄해져"

■'무역사기 방지에 앞장' 최철식 KOTRA 수출 전문위원

사기 건수 1년새 100건 줄었지만

수법은 점점 교묘해져 분간 어려워

사우디 왕세자 사칭 사례도 등장

거래 땐 재차 확인전화 후 송금을

지메일로 연락 온다면 의심해봐야

촤철식 KOTRA 전문위원




“우리 회장님 좀 말려주세요.” 얼마 전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 해외진출상담센터에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전화를 건 이는 한 중견기업 회장 비서실에 근무하는 여직원이었다. 회장이 중동에서 1000억 원짜리 프로젝트를 진행하겠다고 하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다며 몰래 제보를 한 것이다. 거래 상대방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중고 철도 레일을 싸게 팔겠다며 접근했고 왕세자 사인까지 담긴 e메일 편지를 보냈다고 한다.

상담센터의 최철식(64·사진) 수출 전문위원은 전화를 받자마자 사기임을 확신하고 회사에 거래 중단을 촉구했다. 그 결과 이 업체는 수만 달러를 날리는 피해를 가까스로 막을 수 있었다. 최 전문위원은 “당시 해당 기업 오너가 거래에 대해 너무 확신을 가지고 있었기에 설득하기가 쉽지 않았다”며 “기업 책임자나 업무 담당자가 아닌 직원이 신고하는 경우는 매우 드문 사례”라고 소개했다.

최철식 KOTRA 전문위원


KOTRA에서 무역 사기 분야를 담당하고 있는 최 위원은 서울 염곡동 본사에서 가진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무역 사기 방법이 갈수록 진화하고 있다”고 경고한다. 그는 삼성물산에서 20년, 엘림전자산업 등 중견·중소기업에서 15년 등 민간 기업에서 35년간 해외 영업만 담당했던 ‘뼛속까지 무역맨’이다.

최 위원은 수치로만 보면 무역 사기가 줄어들고 있다고 말한다. 실제로 2021년 260여 건이었던 무역 사기 건수는 지난해 160건으로 100건이나 줄었다. 문제는 수법이 갈수록 교묘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컴퓨터망에 악성 코드를 심고 가짜 웹사이트를 만들어 거래 대금을 빼돌리는가 하면 왕가의 유력 인물을 사칭하기도 한다. 해외 진출 경험이 적고 정보망도 부족한 중소기업은 사기범들의 손쉬운 먹잇감이다. 그는 “무역 사기가 워낙 치밀하게 진행되기 때문에 중소기업이 판별하기는 힘든 게 사실”이라며 “얼마나 교묘한지 나도 이전 직장에서 두 번이나 당한 적이 있다”고 토로했다.



최 위원이 뽑은 가장 심각한 무역 사기는 e메일 사기다. 피해 업체 컴퓨터에 e메일 등을 통해 악성 코드를 심어놓은 후 ‘bank(은행)’나 ‘payment(지급)’ 같은 단어가 등장하면 거래 계좌가 바뀌었다며 가짜 계좌로 송금을 유도하는 방식이다. 오랫동안 거래를 해온 거래처이기에 의심 없이 돈을 보냈다가 낭패를 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워낙 지능적으로 이뤄지는 탓에 경험이 풍부한 대기업도 당했다. 그는 “금품 사기나 결제 사기 등은 소액이지만 e메일 사기에 걸리면 10만 달러 이상의 고액을 뜯기는 경우가 많다”며 “센터에 한 번만 확인을 요청했어도 막을 수 있었는데 하는 아쉬움이 크다”고 전했다.

최 위원이 가장 중요시하는 것은 예방이다. 한 번 사기를 당하게 되면 피해 복구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해외 대기업의 경우 거래처가 e메일로 거래 계좌 변경을 요청할 때 바로 송금을 하지 않는다. 전화나 메신저로 우선 확인하고 은행 지점장 확인, 거래처 최고경영자(CEO)의 서명이 들어간 증빙서류를 거쳐 한 달이 지나야 송금이 이뤄진다. 그는 “우리나라 기업 중 이런 시스템을 갖춘 곳이 있다는 얘기는 들어보지 못했다”며 “적어도 전화 확인과 지연 송금 정도는 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최 위원은 사기를 당하지 않기 위해 꼭 지켜야 할 것이 있다고 강조한다. 우선 회사 e메일이 아닌 지(G)메일로 오는 것은 무조건 의심해야 한다. e메일 무역 사기의 99%가 지메일로 온다는 점은 새겨들을 만하다. 전화 연락을 하더라도 회사 전화가 아닌 휴대폰으로 오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 대포폰이라고 보면 된다. 특히 중동이나 아프리카에서 오는 e메일이나 전화는 거의 모두 사기다. 지금까지 이런 방식으로 거래가 성사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고 한다. 그는 “사기가 지능화 조직화하면서 무역 경험이 많지 않은 업체들이 피해를 많이 본다”며 “신규 거래를 하거나 계좌 변경을 할 때는 반드시 신원 조회를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최 위원의 시선은 언제나 무역 사기 예방을 향하고 있다. “지하철로 출퇴근을 하면서 어떻게 하면 사기를 효과적으로 예방할 수 있을까 생각하고는 합니다. 애플리케이션이나 검색 엔진을 만드는 것도 생각해본 적이 있어요. 언젠가는 현실로 나타날 수 있겠죠.”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6 트윈트리타워 B동 14~16층 대표전화 : 02) 724-8600
상호 : 서울경제신문사업자번호 : 208-81-10310대표자 : 손동영등록번호 : 서울 가 00224등록일자 : 1988.05.13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4065 등록일자 : 2016.04.26발행일자 : 2016.04.01발행 ·편집인 : 손동영청소년보호책임자 : 신한수
서울경제의 모든 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은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 Sedaily, All right reserved

서울경제를 팔로우하세요!

서울경제신문

텔레그램 뉴스채널

서울경제 1q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