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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직장 아닌 평생고용 시대, 노동 경직성 해소가 4차혁명 좌우”[청론직설]

◆김대환 전 노동부 장관(일자리연대 상임대표)

노동개혁 방치하면 저성장·양극화 등 고질병 치유 불능

‘공장법’시대 갇힌 노동법, 다양한 근로형태 수용 못해

尹 ‘만기친람’ 개혁 어려워, 설득·공감으로 시스템개혁

진보는 ‘진부’, 보수는 ‘보스주의’, 좌파는 ‘잡파’로 전락

김대환 전 노동부 장관이 6일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근로 환경이 과거와 크게 달라졌지만 노동법은 제조업 중심의 ‘공장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면서 노동 개혁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권욱 기자




글로벌 경기 둔화로 수출주도형 한국 경제가 흔들리고 있다. 올해 경제성장률이 1%대로 떨어질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는 가운데 머지않아 0%대 저성장의 늪으로 추락할 수 있다는 우려의 소리도 제기된다. 경제 위기의 강을 건너려면 구조 개혁에 승부를 걸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이유다. 윤석열 대통령은 최근 노동·교육·연금 등 3대 개혁을 거론하면서 “노동 개혁을 이뤄내지 못하면 정치도 경제도 망하게 된다”며 강한 개혁 의지를 표명했다.

노무현 정부에서 노동부 장관을 지낸 김대환 일자리연대 대표는 6일 서울경제와 만나 “노동 개혁을 방치하면 저성장, 불평등, 중산층 붕괴, 청년층 양극화 등 우리 사회가 직면한 고질적 문제를 극복할 수 없다”며 노동 개혁의 당위성을 역설했다. 현재 인하대 경제학과 명예교수인 김 전 장관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맞게 혁신을 견인하는 인적 자본을 키워야 한다”고 말했다. 야당이 파업 노동자들에 대한 기업의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하는 ‘노란봉투법’을 추진하는 것과 관련해서는 “노동 현장에서 악법으로 원칙을 몰아내겠다는 발상”이라며 “국민 경제와 일자리를 해치는 전형적인 황색 포퓰리즘 법안”이라고 비판했다.

-윤 대통령이 노동 개혁에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는데.

△윤 대통령이 지난달 11일 역대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들을 초청해 오찬 간담회를 열었다. 윤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똑같은 일을 하는데 월급에서 차별하는 것은 현대 문명국가에서 있을 수 없는 일로 이런 것을 바로잡는 것이 노동 개혁”이라고 말했는데 타당한 지적이다. 정권 출범 초기만 해도 정부의 노동 개혁 의지에 대한 우려가 있었지만 최근 발언을 보면 방향을 제대로 잡아가는 것 같다. 노동 개혁을 방치하면 저성장, 불평등, 중산층 붕괴, 청년층 양극화 등 우리 사회가 직면한 고질적인 문제를 극복할 수 없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노동시장의 이중구조 해소가 관건인데.

△1987년 이전까지만 해도 대기업 근로자가 100을 받으면 중소기업 근로자는 80 정도를 받았다. 지금은 중소기업 근로자가 대기업 근로자의 절반 수준을 받는다. 노조가 저임금 근로자의 권익을 향상시키는 역할을 해야 하는데 외려 기득권 보호에 치우치면서 이중구조는 더 공고해졌다. 노조 조직률 차이 때문이다. 대기업(1000인 이상)과 공공 부문 노조 조직률이 70%대인 반면 근로자 3명 중 2명이 근무하는 30인 미만 사업장은 0.2%에 불과하다.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를 풀려면 기득권을 가진 대기업과 공공기관은 더욱 유연하게 바꾸고, 상대적으로 취약한 중소기업 근로자에 대해서는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

-4차 산업혁명에 맞는 노동법 체계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근로 환경이 과거와 크게 달라졌지만 노동법은 제조업 중심의 ‘공장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주52시간 근로제를 둘러싼 논란처럼 특정한 장소에서 얼마나 일하고, 얼마나 쉬는지가 관심사다. 게임 개발자나 배달 플랫폼 근로자 등 다양한 근로 형태가 나타나고 있지만 법과 제도가 이를 따라가지 못하는 실정이다. 심지어 공장법 시대에 정립된 노사 관계의 틀에 억지로 끼워 넣으려 하다 보니 현실과 동떨어진 사례들이 적지 않다.

-노동에 대한 관점이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하는데.

△노동력의 가치를 생산요소 단계를 넘어 혁신을 견인하는 인적 자본으로 키워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노동시장 유연화를 통해 이동 기회와 공정성을 확보해야 한다. 평생직장의 시대가 평생고용의 시대로 이동하는 만큼 노동시장의 경직성부터 해소해야 한다.

-최근 MZ세대를 중심으로 기존 노조의 투쟁 방식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기존 노조는 대화와 타협보다 투쟁을 통해 획득하는 구시대적 마인드에 머물러 있다. 같은 결과라도 싸워서 얻어내야 선명성을 인정받고 집행부의 리더십을 확보할 수 있다고 착각한다. 투쟁 일변도의 노조 행태에 대한 반발이 최근 발족한 ‘새로고침노동협의체(MZ세대 중심)’ 등의 형태로 나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미국·유럽 등 주요 선진국의 노조 활동이 조합원에 대한 서비스로 급변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평생고용의 시대에는 근로자 개개인이 어떤 환경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도록 경쟁력을 향상시키는 ‘다기능(Multi-Function)’이 매우 중요하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노조가 나아갈 길이 바로 여기에 있다.

-노란봉투법에 대해 “불법 파업을 조장하는 황색 포퓰리즘”이라고 비판했는데.



△노조의 불법행위에까지 면책특권을 주는 것은 불법 파업을 법으로 조장하겠다는 것으로 헌법상 기본권인 재산권을 정면으로 침해할 수 있다. 법과 원칙이 엄존해야 할 노동 현장에서 악법으로 원칙을 몰아내겠다는 발상으로 국민 경제와 일자리를 해치는 포퓰리즘 법안이다.

-거대 야당과 진보 진영에서는 노란봉투법의 취지가 노동3권을 보장한 국제노동기구(ILO)의 핵심 협약과 맥을 같이한다고 주장하는데.

△오히려 반대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나 ILO 등 국제기구들도 정당성이 결여된 파업에 대해서는 형사처벌보다 민사책임을 지울 것을 권고하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1980년대 노란봉투법과 유사한 법안을 만들었다가 위헌 판결로 폐기됐다. 노무현 정부 시절이던 2004년 국회 본회의에서도 이 문제에 대한 질의·답변이 있었다. 당시 정부는 ‘불법행위로 손해를 입었다면 그에 따른 배상을 위해 재판을 청구할 권리가 누구에게나 있다. 그 권리조차 박탈하는 것은 민주주의와 법치국가의 기본을 허무는 발상’이라는 입장을 명확히 밝혔다. 이런 이유로 노조의 불법 파업에 대해 손해배상 및 가압류 등 경제적 제재로 대응할 것을 권고했다. 업무방해죄 등으로 형사 처벌하는 것보다는 경제 제재를 가하는 것이 노동인권 측면에서도 합리적이라는 취지에서다.

-도입 1년여를 맞은 중대재해처벌법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은데.

△근로자의 생명을 위협하는 중대 재해를 막겠다는 법의 취지는 이해하지만 전문성이 결여된 데다 정치적 상징성을 노려 졸속 처리된 악법이다. 더구나 내년부터는 적용 대상이 5인 이상 사업장으로 확대된다. 산업재해는 환경이 열악한 중소 사업장에서 더 많이 발생하는데 정작 해당 중소기업들은 최고안전책임자(CSO) 선임이나 전담 조직 마련 등 안전에 투자할 여유가 없다. 산재를 줄이는 데는 사후 처벌 강화보다 지켜야 할 안전 보건 의무 기준을 최대한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이런 기준이 지켜지는지 평상시에 점검하는 예방이 훨씬 효과적이다. 노조에 대한 처벌이 형사처벌이 아닌 손해배상 등 민사책임으로 옮겨오고 있는 만큼 사용자에 대한 처벌도 형사처벌보다는 경제 제재가 합리적이다.

-국회가 기업의 발목을 잡는 규제 법안들을 쏟아내고 있다는 지적이 있다.

△10명 이상 의원의 동의만 얻으면 법안을 발의할 수 있다 보니 법안 내용과 영향에 대한 분석도 없이 ‘품앗이 서명’을 주고받는 경우가 다반사다. 문제는 이처럼 뚝딱 발의된 법안 대부분이 시장에 미칠 영향 등을 제대로 고려하지 않은 ‘졸속·날림·불량 법안’이라는 점이다. 5공화국 시절보다도 형편없다. 요즘 민간 기업은 물론 공기업에서도 직무 및 실적 평가가 철저하게 이뤄지고 있다. 국민의 혈세를 받고 일하는 국회의원도 객관적 지표로 평가해 ‘명품 법안’을 만들 수 있도록 독려해야 한다.

-한국 정치에 과연 보수와 진보가 있느냐는 의구심이 많다.

△우리나라 진보는 ‘진부’하고 보수주의는 ‘보스(boss)’주의다. 민족주의·토착왜구 주장 등 화석이 된 사고를 ‘진보’라고 우기면서 시대에 역행하고 있다. 보스주의는 권력자에게 줄을 대는 일밖에 관심이 없다. 일말의 절박감이나 간절함도 없이 그저 자리 하나 꿰차려는 욕심만 가득하다. 좌파와 우파라는 개념도 변질됐다. 좌파는 핵심 가치와 철학이 실종된 채 이것저것 때려넣은 ‘잡파’로 추락했고 우파는 ‘욱할 때만 존재감이 드러나는 집단’으로 전락했다.

-어느 때보다 경제 상황이 좋지 않다. 이럴 때가 외려 개혁의 적기라는 말도 있는데.

△개혁은 혁명보다 어렵다고 한다. 혁명은 원샷으로 정리되지만 개혁은 지속적으로 일관되게 추진해야 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지금과 같은 여소여대(與小野大) 구도에서는 추진 동력을 얻기도 쉽지 않다. 그럴수록 지도자의 전략적 마인드가 매우 중요하다. 퍼즐 조각들을 연결해 전체적으로 어떤 그림을 그릴지 구체적인 청사진을 갖고 국민을 설득해가야 한다. 대통령이 컨트롤타워가 돼 국민으로부터 개혁에 대한 지지와 공감을 얻어내는 과정과 함께 실행 단계별로 구체적인 전략을 마련해야 성공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국민적 지지가 뒷받침되면 내년 총선에서 개혁의 추진 동력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현 정부의 인적 구성을 보면 이를 뒷받침할 전략가 그룹이 눈에 띄지 않는다는 아쉬움이 있다. 대통령이 만기친람으로 모든 것을 좌지우지하려 하지 말고 각 분야의 뛰어난 인재들이 능력과 기량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도록 국정을 시스템으로 운영해야 한다.

◆He is…

1949년 경북 김천에서 태어나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뒤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78년 인하대 경제학부 교수로 부임했으며 현재 명예교수로 있다. 참여연대 정책위원장을 거쳐 김대중 정부에서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회 경제노동분과위원장을 맡았다. 노무현 정부에서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경제2분과위원회 간사와 노동부 장관을 지냈다. 박근혜 정부에서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 위원장으로 일했으며 2021년부터는 노동계 원로,학계 및 청년그룹 등이 주축이 된 일자리연대 상임대표를 맡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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