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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관파천 '비운의 선물' 127년만에 세상 빛 본다

◆모스크바 크렘린박물관서 5점 특별 전시

러시아 공사관 피신해있던 고종

니콜라이 황제 대관식 맞춰 선물

'흑칠나전이층농' 나전기법 돋보여

장승업 '고사인물도' 중 2점 공개

오원 장승업의 '취태백도'. 높이 174cm의 초대형 그림으로 오원 장승업의 그림 중 보기드문 대작으로 평가된다. /사진제공=국외소재문화재재단




을미사변으로 명성황후를 잃은 고종은 친일내각에 점령당한 경복궁을 떠나 1896년 2월 러시아공사관으로 피신했다. 이후 1년 여간 이어진 ‘아관파천’이다. 러시아의 보호 아래 있던 고종은 그해 5월 26일 열리는 러시아 황제 니콜라이 2세의 대관식 소식을 접한다. 민영환(1861~1905)을 전권공사로 현지 대관식에 파견했다. 고종은 감사와 축하를 담은 ‘외교선물’을 들려 보냈다. 당대 최고의 화가 오원 장승업이 그린 인물도를 비롯해 화려한 장식의 나전가구와 백동향로 등 총 17점이 러시아로 건너갔다.

고종이 러시아 황제 니콜라이 2세 대관식 선물로 보낸 '흑칠나전이층농'. 아래쪽에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나전 십장생도가 보인다. /사진제공=국외소재문화재재단


고종이 러시아 황제 대관식을 축하하며 전달한 ‘외교선물’ 총 17점 중 ‘흑칠나전이층농’ ‘장승업 고사인물도’ ‘백동향로’ 등 총 5점이 9일(현지시간) 러시아 모스크바 크렘린박물관 특별전을 통해 공개된다. 이들 유물이 모습을 드러내기는 127년 만에 처음이다. 대표작 ‘흑칠나전이층농’은 2020년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 ‘국외소재문화재 보존·복원 및 활용지원 사업’을 통해 모스크바 크렘린박물관에 복원예산을 지원했다.

크렘린박물관이 기획한 이번 특별전의 제목은 ‘한국과 무기고:마지막 황제 대관식 선물의 역사’. 1508년 러시아 황실의 무기와 보석 수장고로 조성된 ‘황실 무기고’는 러시아의 수도가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옮겨가면서 1806년 ‘무기고 박물관’이 됐고 1960년 크렘린박물관으로 공식 편입됐다. 고종이 러시아 니콜라이 2세 황제에게 전달한 ‘외교 선물’도 자연스럽게 무기고 박물관에서 크렘린박물관 소장품으로 이전됐다. 고종의 러시아 황제 외교 선물에 대한 사연은 민영환을 수행해 대관식에 함께 참석했던 윤치호의 일기를 통해 그 목록의 일부가 언급된 바 있었지만, 구체적인 실물은 한 번도 공개된 적 없다.

고종이 러시아 황제 니콜라이 2세 대관식 선물로 보낸 '흑칠나전이층농'. 아래쪽에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나전 십장생도가 보인다. /사진제공=국외소재문화재재단




‘흑칠나전이층농’의 경우 고종의 특명을 받아 가장 뛰어난 나전 장인이 제작한 작품으로 추정돼 주목을 끈다. 농 하단부에 나전 십장생(十長生)을 붙여 황제로 즉위하는 니콜라이2세의 무병장수를 기원한 점도 눈길을 끈다. 고종의 ‘외교선물’이 “19세기 조선의 수준 높은 공예 및 미술의 정수를 보여주는 중요 유물”로 평가받는 이유다. 이 유물의 복원을 지원한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측 관계자는 “그간 1920년 일본에서 ‘실톱’이 도입되면서 나전공예에 ‘끊음질’ 기법이 유행했는데, 그보다 30여 년 앞서 ‘흑칠나전이층농’에 이 기법이 월등히 적용된 것으로 확인됐다”면서 “공예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유물”이라고 강조했다.

고종이 러시아 황제 대관식 선물로 전달한 오원 장승업의 고사인물도 4점 중 장승업의 '노자출관도' 등 2점이 9일 개막하는 크렘린박물관 특별전을 통해 127년 만에 공개된다. 장승업은 서명 앞에 '조선'을 명기해 외교 선물임을 드러내고 있다. /사진제공=국외소재문화재재단


크렘린박물관이 오원 장승업의 작품 4점을 소장한 것도 이번에 처음 확인됐다. 지금껏 학계에 보고된 적도 없으며, 높이만 174㎝가 넘는 진귀한 대작이다. 각 그림의 서명에서 ‘오원 장승업’의 이름 앞에 ‘조선(朝鮮)’이라는 국호를 적어 넣은 것이 눈길을 끈다. 재단 측은 “이는 장승업 작품 가운데 처음 확인되는 희귀사례로, 이 작품이 ‘외교선물’을 전제로 창작되었음을 잘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크렘린박물관은 장승업의 ‘고사인물도’ 4점 중 2점을 이번 전시에 내놓는다.

고종이 러시아 황제의 대관식 선물로 전달한 백동향로 2점은 '천원지방' 즉 하늘은 둥글고 땅은 모나다는 뜻을 담아 '치세'를 기원한 유물로 분석된다. /사진제공=국외소재문화재재단


사각형과 원형의 ‘백동향로’는 하늘은 둥글고 땅은 모나다는 뜻의 ‘천원지방(天圓地方)’을 의미한다. 황제의 치세를 상징하는 대관식의 취지를 잘 표현한 선물로 평가된다. 은처럼 흰빛이 도는 백동의 질감이 우아하며, 길상 문자와 유려한 곡선을 뚫기 기법인 투조로 새겨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준다. 사각향로 몸체에는 향기로운 연기라는 뜻의 ‘향연(香煙)’이, 둥근향로에는 참다움과 장수와 보물을 뜻하는 ‘진수영보(眞壽永寶)’가 새겨져 있다.

국외소재 한국문화재는 약 23만 점으로 파악되는데, 그 중에는 약탈이나 반출로 인한 것도 많지만 고종의 경우처럼 외교 선물의 목적으로 전달된 사례도 상당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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