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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십자각] 볼모로 잡힌 뮤지컬 팬심

박 준 호

문화부 차장


15만 원. 국내 뮤지컬 업계에서 대극장 공연 VIP석 가격의 암묵적인 상한선으로 통용되던 액수다. 코로나19의 엔데믹(풍토병)화가 시작된 지난해 말부터 이 선이 깨졌다. 뮤지컬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가 VIP석의 티켓 가격을 16만 원으로 올린 게 신호탄이다. 국내 창작 뮤지컬로 올 초 초연한 ‘베토벤’, 해외 출연진의 내한 공연으로 꾸린 ‘캣츠’는 나란히 17만 원이다. 할리우드 뮤지컬 영화를 원작으로 아시아에서 처음 공연 중인 ‘물랑루즈’는 18만 원이다. 13년 만에 다시 무대에 오르는 ‘오페라의 유령’은 다음 달 개막하는 부산 공연부터 19만 원이다. 지난해에 이어 4월 앵콜 공연을 올리는 ‘데스노트’는 15만 원에서 16만 원으로 뛰었다. 선은 처음 한 번 넘기가 힘들지, 그다음은 어렵지 않았다. 벌써 어떤 작품이 VIP석 20만 원의 벽을 허물지를 두고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일반 좌석 가격도 오르기는 마찬가지다. 구석 자리에서 오페라글라스를 꺼내야 배우의 표정이 보이는 곳까지도 10만 원에 육박하고 있다. 객석에서 VIP석이 차지하는 비중도 이전보다 늘었다. 일반적으로 VIP석은 1층 중앙 블록 전체와 2층 중앙 블록 앞부분이었다. 이제는 좌우 측면 블록 중 중앙 복도와 가까운 좌석까지 VIP석이다.

제작사 측은 글로벌 인플레이션을 이유로 든다. ‘오페라의 유령’의 경우 극의 상징 격인 거대한 샹들리에를 비롯한 각종 무대 장치를 해외에서 공수하는 비용이 급증했다고 한다. ‘물랑루즈’ 역시 배우들이 의상 제작을 위해 호주에 다녀온 것을 비롯해 각종 소품과 무대 장치를 해외 라이선스에 맞춰 제작하면서 비용이 늘었다. 다른 작품들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여러 가지 투자를 고려하면 여전히 적자 위험이 크다고 한다.



제작사들이 처한 어려움을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다. 그렇다고 그런 이유만으로 티켓 가격을 올리는 것은 관객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공연의 수준도 함께 높아지지 않으면 관객들은 비싸진 가격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벌써 티켓 예매 서비스에 올라오는 관람객 평점은 이전보다 큰 폭으로 요동치고 관련 커뮤니티나 소셜미디어에서도 혹평이 늘어나고 있다. 공연 수준을 거론하며 예매했던 티켓을 취소하고 관람 횟수를 줄였다는 글도 적지 않게 발견된다. 뮤지컬은 주요 배역의 멀티 캐스팅이 일반적이어서 같은 작품에서도 그날그날의 캐스팅에 따라 티켓 파워가 강한 스타 배우와 그렇지 않은 배우 간 티켓 판매량이 다르다. 최근 들어 이 차이가 더욱 벌어졌다. 각종 쇼핑 사이트에서 반값 수준으로 단시간 할인 판매하는 이벤트도 많아졌다. 캐스팅을 들여다보면 S급 스타 배우가 아닌 경우가 많다. 대극장 공연이 무대에 오를 때 정해진 가격이 그 공연의 진짜 가격이 아닐 수 있다는 의문이 생기는 대목이다.

뮤지컬·연극 애호가들은 배우와 작품을 향한 이른바 ‘팬심’으로 충만해 여러 차례 ‘회전문 관람’도 마다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공연계가 팬데믹의 어두운 터널을 버틸 수 있었던 원동력 중 하나다. 제작사들이 혹시라도 관객들의 팬심을 볼모로 잡아 적자 위험을 줄일 생각을 한다면 오산이다. 영화 업계는 팬데믹의 직격탄을 맞자 2년여간 세 차례 티켓 가격을 올렸다. 그들도 한 번 본 영화를 다시 보며 즐거워하는 영화 팬들의 팬심을 노렸겠지만 결과는 마스크가 사라진 뒤에도 텅텅 빈 영화관일 뿐이다. 뮤지컬이 영화의 전철을 밟을 이유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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