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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 기업가정신 깃든 길…혁신 발자취 따라가다

■진주·의령·함양 ‘리치로드’ 여행

"이십리 내 부자들이 태어날 것"

도인이 예언한 '솥바위' 주위로

이병철·구인회·조홍제 생가 자리

그들이 다녔던 진주 지수초교

K-기업가정신센터로 운영 중





경상남도 진주시와 의령군·함안군이 ‘기업가정신’을 되돌아보는 여행지로 거듭나고 있다. 중앙정부와 인근 지방자치단체, 재계, 관광 업계가 힘을 합쳐 호암 이병철(1910~1987) 삼성그룹 창업주, 연암 구인회(1907~1969) LG그룹 창업주, 만우 조홍제(1906~1984) 효성그룹 창업주의 유적지를 서로 연결하는 방식으로 K기업가정신을 일깨우는 ‘리치로드(Rich Road·부자길)’를 만들었다. 단순히 부를 쌓는 것뿐만 아니라 도전과 혁신의 상징과도 같은 그들의 발자취를 따라 개인의 성장과 함께 우리 경제도 재도약하기를 기대해본다.

경상남도 의령군을 가로지르는 흐르는 남강에 ‘솥바위’가 늠름하게 서 있다. 솥바위 전설이 실현됐다는 평가에 최근 이를 찾는 사람이 늘고 있다.


'자동차를 타고 남해고속도로를 가다 진주시와 창원시의 중간쯤에 있는 군북나들목을 나서면 바로 의령군 의령읍이다. 도로 옆 강(남강) 속에 특이한 모양의 바위가 보인다. 솥뚜껑을 엎어놓은 모양이라고 해서 ‘솥바위(鼎巖·정암)’라고 불리는 바위다.

조선 말 한 도인이 이 바위를 보고 모서리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이십리(8㎞) 내에 부자들이 태어날 것이라는 예언을 했다고 한다. 이 회장, 구 회장, 조 회장이 이 전설을 실현했다. 솥바위를 중심으로 의령군 정곡면에서 이 회장, 진주시 지수면에서 구 회장, 함안군 군북면에서 조 회장이 각각 태어났다. 풍수지리에서는 솥바위를 별자리로 본다는데 우연인지 기업 이름인 삼성(三星)과 럭키금성(金星·현재의 LG와 GS), 효성(曉星) 등 모두 ‘별 성(星) 자’가 들어간다.

의령군 정곡면 이병철 삼성 창업주 생가


의령군 정곡면 중교리에는 이 회장의 생가가 있다. 마을 입구부터 생가를 알리는 팻말이 곳곳에 붙어 있다. 국내 최대 기업군을 일군 창업주의 기운을 받으려는 방문객들이 그만큼 많다는 것이다. 솥바위 전설의 대표 격인 이곳 이 회장 생가는 실제 솥바위에서 동북쪽 직선거리로 8㎞가량 떨어져 있다.

이병철 회장 생가를 언덕위에서 본 모습이다.


풍수지리에 문외한인 기자가 봐도 생가터가 명당임을 알 수 있다. 생가는 곡식을 쌓아놓은 것 같은 노적봉(露積峯) 형상의 산자락이 이어지는 끝에 위치한다. 즉 산의 기운이 생가터에 혈이 돼 맺혀 지세가 융성하다는 것이다. 또 인근 하천은 생가를 돌아보며 천천히 흐르는 역수(逆水)를 이루고 있다.

생가의 한 관계자는 “집 앞에는 진주에서 함안을 거쳐 흐르는 남강이 있어 전형적인 배산임수 지형”이라며 “세부적으로도 풍수지리상 명당 요건은 다 갖췄다”고 설명한다.

진주시 지수면 구인회 LG 창업주 생가


남강을 거슬러 올라 진주시로 들어가면 지수면 승산마을에 LG 창업자인 구 회장의 생가가 있다. 지수면사무소 앞에 있는 이 마을 안내판을 보면 LG와 GS그룹의 전신인 럭키금성을 세운 구 씨와 허 씨로부터 파생된 주요 기업들의 인맥을 모두 볼 수 있다. 구 씨에서는 구 회장을 비롯해 구자원 LIG 회장 본가, 구자신 쿠쿠전자 회장 생가 등이 눈길을 끈다. 허 씨로는 구인회 회장과 함께했고 GS그룹의 시조로 평가되는 효주 허만정 회장의 본가가 있다. 이어 허준구·허창수 GS 회장 고가, 허승효 알토전기 회장 생가 등의 담이 잇따른다. 허구연 한국야구위원회(KBO) 총재 본가 표지도 최근 생겼다.

구인회 LG 창업주 생가의 모춘당 모습.


마을 안으로 들어서면 개울물이 흐르는 양쪽으로 한옥들이 늘어서 있다. 가장 안쪽이 구 회장 생가다. 잔디 깔린 너른 마당 너머로 두 채의 기와집이 보인다. 연암의 조부인 만회공을 추모하는 방산정이 정면에, 부친인 춘강공을 추모하기 위한 모춘당이 오른쪽에 자리 잡고 있다. 특히 오른쪽의 모춘당은 LG의 최고 기업 문화로 자리 잡은 ‘인화경영’의 발원지라 할 수 있는 곳이다. 구 회장 생가는 솥바위에서 서남쪽 직선거리로 9㎞ 떨어져 있다. 다만 현재 관리를 맡은 마을 주민이 살고 있어 방문 전에 미리 양해를 구해야 한다.

함안군 군북면 조홍제 효성 창업주 생가




효성그룹 창업주인 조 회장의 생가는 함안군 군북면 동촌리에 위치한다. 생가는 솥바위에서 동남쪽 직선거리로 8㎞ 떨어져 있다. 주위로 남강이 흐르고 백이산·숙제봉 둘러싼 마을 한가운데 당당하게 자리잡고 있다. 최근 보수를 끝내고 말끔한 모습으로 관람객들을 맞이하고 있다.

진주시 지수면에서 K-기업가정신 센터가 운영중이다.


이들 삼성·LG·효성 창업주의 또 다른 공통점은 진주시 지수면에 있는 지수초등학교(당시는 지수공립보통학교) 동창이라는 것이다. 구 회장은 당연히 같은 마을의 학교를 다녔을 테고 더불어 이 회장과 조 회장도 가까운 도시인 진주로 왔던 것이다. 1980년대 한국 100대 재벌 중에서 30여 명이 이 학교 출신이라고 하니 그 중요도를 알 만하다.

2009년 인근 학교 통폐합으로 문을 닫은 옛 지수초등학교 건물은 2018년부터 ‘진주 K-기업가정신 센터’로 변신해 운영되고 있다. 센터는 본관과 별관으로 구성된다. 본관은 1층에 전시관, 2층에 교육관이 있다. 전시관은 크게 진주의 기업가정신에 대한 뿌리를 찾고 LG·GS·삼성·효성 창업주들을 기리는 곳과 함께 한국 기업사를 정리하고 미래 기업가를 전망하는 등의 두 곳으로 나눠진다.

남명 조식 문하의 의병장들은 진주성 전투에서 혁혁한 공을 세웠다.


시에 따르면 진주 출신 기업가들의 뿌리는 남명 조식(1501~1572) 선생의 ‘경의사상(敬義思想)’이라는 해석이다. 남명은 율곡 이이, 퇴계 이황과 동시대 사람으로 살아 있을 당시의 학문적 위상이나 집권층 비중에서 두 사람에 미치지 못했다.

남명 사상의 특징은 ‘학문을 위한 학문이 아닌 적극적인 실천을 통해 하늘의 도리에 닿는’ 실사구시가 중심이었다. 특히 그의 문하에서 임진왜란의 흐름을 바꾼 진주성 전투 등의 의병장이 다수 배출되기도 했다. 더 나아가 현대에 들어서는 기업가정신의 뿌리로 여겨지게 된 것이다.

이어 별관인 상남관은 도서와 자료를 열람하고 기업가정신 체험을 할 수 있는 복합 문화 공간이다. 또 학교 교정에 있는 8m 높이의 소나무는 ‘부자소나무’라고 불린다. 조홍제·구인회·이병철 등 3인이 모여 함께 심은 나무라고 한다. 소나무는 지수초등학교 교목이다.

K-기업가정신 센터 앞 ‘부자소나무’ 모습


한편 지난 10일 ‘K-기업가정신 센터’ 상남관에 강병중 넥센 회장, 구자신 회장 등 국내 주요 기업 최고경영자(CEO)들과 오준 전 유엔대사, 유명환 전 외교통상부 장관, 성경륭 전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위원장 등 전현직 고위 관료들이 모였다. ‘진주 K-기업가정신 재단’ 창립총회 날이었다. 손길승 SK그룹 명예회장, 구자천 신성델타그룹 회장 등도 재단 발기인에 이름을 올렸다.

재단 이사장에는 정영수 CJ그룹 글로벌경영고문이, 부이사장에는 김종욱 스위스포트코리아 대표가 각각 선임됐다. 재단은 3월께 정식 출범할 예정이다. 재단은 향후 ‘K-기업가정신 확산 사업’ ‘K-기업가정신상 운영’ ‘K-기업가정신 수도 협의체 운영’ ‘K-기업가정신 생태계 구축을 위한 연구 및 포럼 운영’ 등의 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다.

재단 측은 “새로운 대한민국의 100년을 이끌 세계적인 기업인을 배출하는 게 목표”라며 “한국 경제를 새롭게 도약시키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글·사진(진주·의령·함안)=최수문기자 chs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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