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순의 거장은 삶의 마지막까지도 혁신을 갈구한다.
한국의 ‘단색화’를 대표하는 화가 박서보(92)가 25일(현지시간) 미국 플로리다주 웨스트 팜비치에 위치한 화이트 큐브(White Cube) 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시작했다. 영국 런던에서 시작한 ‘화이트 큐브’는 뉴욕, 파리, 홍콩 등지에 지점을 두고 있는 세계 정상급 갤러리 중 하나다. 화이트 큐브는 “박서보는 ‘단색화’ 운동의 아버지로 알려진 한국 현대미술의 대표작가”라며 “이번 전시는 1970년대 초기 ‘묘법’부터 올해 제작된 작품까지 아우르며, 2019년 뉴욕 솔로몬 R 구겐하임 미술관 전시 이후 처음으로 미국에서 그의 작품을 볼 수 있는 기회”라고 소개했다.
이번 전시에서 주목할 것은 작가가 새롭게 도전한 원색의 도자 연작이다. 박서보의 1980년대 ‘묘법’이 여러 겹 쌓아 물에 적신 한지가 마르기 전에 무목적적이고 반복적인 행위를 통해 완성되는 것과 같은 원리로, 전문 도예가와 협업해 제작된 신작들이라는 게 갤러리 측 설명이다. 한지의 물성이 도자로 확장된 셈이다. 닥나무로 만든 한지와 흙을 구워 만드는 도자 모두 자연에서 비롯했다는 공통점이 박서보의 예술관과 통한다.
화이트 큐브는 이 작품들에 대해 “지난해 완성된 채색 도자 연작은 90대의 거장이 계속해서 혁신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평했다. 박 화백은 평소에도 “변하지 않으면 추락한다. 그러나 변한다면 그 또한 추락한다”는 말로 도전과 혁신의 중요성을 강조해 왔다. 전시는 4월 1일까지 이어진다.
한편 박 화백은 최근 자신의 SNS를 통해 폐암 3기 판정을 받았다고 밝히며 “내 나이 아흔둘, 당장 죽어도 장수했다는 소리를 들을 텐데 선물처럼 주어진 시간이라 생각한다”면서 “요즘 많이 걸으며 운동하는 것은 더 오래 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좀 더 그리기 위한 것이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작업에 전념하며 더 의미 있게 시간을 보내고 싶다고 한 박 화백은 “사는 것은 충분했는데, 아직 그리고 싶은 것들이 남았다”라며 “안부 전화하지 마라. (그 시간에) 나는 캔버스에 한 줄이라도 더 긋고 싶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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