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시장에서 기술 패권을 주도하고 있는 국가들은 모두 초격차 기술을 창출하는 연구중심대학을 다수 보유하고 있다. 당장 상용화에 이르지는 않더라도 미래 첨단 기술의 기반이 되는 원천 기술을 얼마나 많이 확보하느냐가 국가 경쟁력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2009년 개교한 UNIST(유니스트·울산과학기술원)는 한국을 대표하는 연구중심대학이자 2027년 세계 100대 대학으로의 도약을 목표로 변화와 혁신을 이어가고 있다.
올해 시장조사업체 THE가 발표한 ‘세계대학평가’에서 상위 100개 대학 중 50%는 미국, 영국, 독일의 연구중심대학이었다. 중국도 2020년 3개에서 올해 7개가 이름을 올렸지만 우리나라는 3개에 그쳤다. 2021년 기준 한국의 공공 연구개발(R&D) 예산이 총 27조 4000억 원으로 세계 5위 수준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아쉬운 결과다.
UNIST는 올해 노벨상을 수상한 석학들을 중심으로 총장국제자문위원회를 발족할 예정이다. 세계 유명 석학들과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세계 100대 연구중심대학 진입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기 위해서다. 기존 국내 대학이 답습해온 방식으로는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게 UNIST의 절박함과 간절함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용훈 UNIST 총장은 총장국제자문위원회를 구성하기 위해 지난해 8월 미국 보스톤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을 찾아 서남표 MIT 명예교수와 만났다. 서 명예교수는 MIT 기계공학과장과 KAIST(카이스트·한국과학기술원) 총장을 역임한 과학기술계의 원로다. 서 명예교수는 이 총장의 부탁을 받고 첫 자문위원을 맡았다.
UNIST는 최근 세계 100위권대 대학에 진입했다. THE 평가에서 세계 174위를 기록했고 QS 평가에서는 197위에 이름을 올렸다. 설립 50년 이내의 세계 신흥 대학으로 범위를 좁히면 UNIST는 세계 11위에 국내 1위다. 2007년 울산과학기술대학교로 개교해 2015년 울산과학기술원으로 전환한 지 7년 만에 이룬 성과다.
UNIST의 최대 강점은 교수진의 탁월한 연구력이다. 지난해 기준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연구자(HCR)’에 선정된 교수가 총 10명으로 국내 대학 중 1위다. 국내 전체 HCR 선정 교수 60명 중 10명이 UNIST 소속이라는 점에서 국내 학계는 단기간에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뒀다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UNIST는 논문의 질적 우수성을 평가하는 ‘라이덴랭킹’에서도 6년 연속 국내 1위를 지키고 있다.
UNIST는 잠재력을 갖춘 교원의 창업도 적극 지원하고 있다. 연구실에서 탄생한 우수 기술이 논문에 그치지 않고 사회의 실질적인 변화를 이끌 수 있도록 장려하는 것이 핵심이다. 이를 위해 교내 유망 기술 발굴부터 사업화, 단계별 투자 유치로 이어지는 창업지원시스템을 구축하는 한편 교원 창업을 위한 다양한 제도적 지원 체계를 마련했다.
2020년 ‘UNIST 1호 교원 창업기업’인 클리노믹스가 코스닥에 상장된 것이 대표적이다. 게놈 기반의 정밀의료 분야에 도전하고 있는 이 기업은 박종화 바이오메디컬공학과 교수가 대표를 맡고 있다. 이 외에도 안과 급속냉각 마취 기술을 개발한 리센스메디컬, 척수 손상 환자를 위한 신경재생 하이드로젤 패치를 연구하는 슈파인세라퓨틱스, 무채혈 혈당측정기를 개발하는 에스비솔루션 등 여러 기업들이 우수한 기술력을 인정받아 시장의 주목을 받고 있다.
정부가 올 1월 국내 4대 과학기술원에 대한 공공기관 지정을 해제하면서 UNIST는 세계 100대 연구중심대학이라는 목표에 한걸음 더 다가서게 됐다. 공공기관 해제로 자체 기금 등으로 예산을 편성할 수 있게 돼 국내외 우수 과학자 유치와 박사후연구원 선발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UNIST는 이번 공공기관 해제를 통해 글로벌 100대 연구중심대학으로 도약하기 위한 구심점으로 삼을 예정이다.
이 총장은 “대학에서 시작된 창업기업이 지역과 국가의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자리매김하고 이러한 성과가 다시 대학에 재투자되는 선순환 구조를 마련한 것이 UNIST의 핵심 경쟁력”이라며 “2027년 글로벌 100대 연구중심대학으로 올라설 수 있도록 체계적인 지원과 파격적인 혜택을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펼쳐나가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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