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예산 축소와 고금리로 금융권의 벤처 투자가 줄면서 대기업들이 지난해부터 세운 ‘기업형 벤처캐피털(CVC)’의 행보에 스타트업들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공정거래법 개정안(CVC법)의 시행 이후 다수의 대기업이 CVC를 설립해 금융권을 제치고 투자 기회를 선점하면서 스타트업들의 버팀목이 될수 있기 때문이다.
16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대기업 산하 CVC들의 운용자산은 약 2조 4000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CVC법 시행 이전부터 활동해온 포스코기술투자·CJ(001040)인베스트먼트·카카오(035720)벤처스·시그나이트파트너스·롯데벤처스와 더불어 지난해 출범한 GS(078930)벤처스와 F&F파트너스·효성(004800)벤처스 등이 펀드를 결성했다.
지금까지 일반 지주사 산하 CVC는 9곳이며 대기업 계열 CVC를 더하면 15곳으로 늘어난다. 대웅제약과 삼천리·LX그룹 등도 CVC 설립을 추진하는 것으로 알려져 향후 대기업 산하 CVC는 계속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대기업 CVC의 경우 단순 자본 이익을 목적으로 스타트업에 투자하기보다 모회사와의 협력을 염두에 둔다. 이에 외부 자금보다 주로 모회사나 계열사로부터 자금을 받아 결성한 펀드가 많다. 대기업과 스타트업들이 상호 성장을 도모할 수 있기 때문에 스타트업들도 선호하고 있다.
지난해 말 기준 가장 많은 운용자산을 확보한 CVC는 포스코기술투자다. 포스코(POSCO홀딩스(005490))가 최대주주인 포스코기술투자의 운용자산은 1조 339억 원으로 국내 벤처투자 업계에서 20위권에 올라 있다. 2차전지 소재, 수소·산업 가스 분야 등 포스코와 사업 협력이 가능한 곳에 투자한다.
CJ인베와 카카오벤처스도 4000억 원대의 운용자산을 자랑한다. 특히 CJ인베는 향후 5년간 총 4000억 원을 신규 출자해 문화, 플랫폼, 웰니스, 지속 가능성 부문 유망 스타트업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카카오벤처스도 올 해부터 모회사인 카카오로부터 100% 출자받은 벤처펀드 위주로 운용할 계획이다. 주요 투자 분야는 디지털 헬스케어, 콘텐츠, 플랫폼 스타트업이다.
신세계(004170)그룹의 시그나이트파트너스도 발 빠르게 운용자산을 확대하고 있다. 시그나이트의 지난해 말 기준 운용자산은 1290억 원으로 신세계와 계열사들이 계속 자본금을 늘리면서 원활한 펀드 결성이 가능했다. 소비재 및 e커머스 관련 스타트업 투자에 적극적이다. 2016년 설립한 롯데벤처스도 약 3000억 원 수준의 운용자산을 모은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설립된 CVC중에서는 GS벤처스가 투자에 가장 적극적이다. GS벤처스는 1300억 원 규모의 1호 펀드인 ‘지에스 어셈블(Assemble) 신기술 투자조합’을 이미 결성했다. 그러면서 바이오와 기후변화 대응, 자원 순환 등 GS그룹이 꼽은 신성장 분야에 집중 투자하고 있다.
F&F파트너스·효성벤처스 등도 유망 스타트업 발굴에 속도를 높이고 있다. F&F파트너스는 지난해 F&F홀딩스(007700)가 100% 출자한 400억 원 규모 ‘F&F 신기술투자조합 1호’를 결성해 주로 콘텐츠 분야 스타트업에 투자하고 있다. 효성벤처스는 500억 원 규모 펀드 결성을 앞두고 있다. 효성과 그 계열사가 300억 원을 출자하고 한국산업기술진흥원(KIAT)이 200억 원을 보태는 구조다.
한 벤처캐피털 업체 대표는 “지난해 CVC법 시행 이후 대기업들이 경쟁적으로 벤처 투자에 나서고 있다”며 “일반 VC들과 협력도 하면서 투자하기 어려운 업종이나 사업에도 돈을 투입하며 새 바람을 넣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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