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러시아의 최대 우방국인 중국 시진핑 국가주석과의 대화 의지를 다시 한 번 드러내며 러시아를 국제사회에서 고립시키려는 움직임을 강화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1년 넘게 전쟁을 치르고 있는 러시아 경제가 붕괴 위험에 직면했다는 경고가 나오고 있다. 에너지 무기화로 전쟁에서 우위를 점하려던 시도가 서방 국가들의 제재에 막히고 내수 역시 노동 경색, 소비 급감으로 위축되면서 장기 침체에 빠질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28일(현지 시간)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시 주석을 우크라이나로 초청하겠다는 의사를 재확인했다. 그는 “나는 그(시진핑)과 대화하기를 원한다”며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전 시 주석과 교류한 뒤 1년 이상 대화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앞서 미하일로 포돌랴크 우크라이나 대통령 고문이 젤렌스키 대통령이 시 주석과의 회담을 추진 중이지만 중국 측의 입장이 명확히 정리되지 않아 성사되지 않고 있다고 밝힌 지 이틀 만이다.
젤린스키 대통령의 발언은 러시아의 핵심 우방국인 중국에 중재를 위한 대화를 촉구해 양국 간 연대를 약화시키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날 인터뷰에서 젤렌스키 대통령은 시 주석이 러시아 방문 당시 무기 지원을 공식화하지 않은 점을 짚으며 “오랫동안 러시아에 우호적이었던 중국조차 더는 러시아를 지원할 의사가 없다는 것을 분명히 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전쟁으로) 모든 것을 잃은, 정보적으로 고립된 사람”이라고 표현하며 “그(푸틴)에게 동맹국은 없다”고 덧붙였다.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정치적 고립을 위해 행동에 나선 가운데 러시아 경제 역시 “우리는 견조하다”는 푸틴 대통령의 자평과 달리 내부로부터 곪아가고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이달 23일 기준 루블·달러 가치는 77.57루블을 기록하며 지난해 9월 29일(57.56루블) 대비 35% 가까이 폭락했다. 경제적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국내 소비 역시 위축됐다. 지난해 러시아의 소매판매는 전년 대비 6.7% 하락했는데 이는 2015년 이후 최대 감소폭이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러시아의 잠재성장률은 크림반도를 점령한 2014년 이전 3.5%에서 현재 1% 수준으로 떨어졌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젊은 사람들이 전쟁터로 차출되거나 징집의 두려움 때문에 러시아를 떠나면서 노동력이 급감하고 기업들은 신규 투자를 중단하고 있다”고 전했다.
에너지 무기화로 전쟁을 유리하게 끌고 나가겠다는 계산에 차질을 빚으면서 러시아 정부의 재정난 역시 심화하고 있다. 전쟁 초기 국제 유가 급등세로 덕을 봤던 러시아는 이후 서방 국가들이 빠르게 대(對)러시아 에너지 의존도를 낮추고 러시아 에너지에 가격상한제를 도입하는 등 제재 수위를 높이자 큰 타격을 받았다. 러시아 세입의 절반가량을 차지하는 석유·가스 관련 수입은 올 1~2월 전년 동기 대비 46%나 급감했다. 세입이 줄면서 올 들어 러시아 정부가 수입에 비해 과다 지출한 액수는 340억 달러(약 44조 원)에 이른다.
러시아가 막대한 전쟁 비용을 감당하고 있는 점 역시 큰 부담이다. 올 들어 러시아의 국방 지출은 5310억 루블로 전년 동기 대비 2배가량 증가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러시아는 올 들어 불특정 지출로 2조 4000억 루블 규모를 썼는데 이는 전쟁 관련 비용일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이에 전문가들은 러시아가 장기 침체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을 내놓았다. 마리아 샤기나 영국 런던 국제전략연구소 선임연구원은 “러시아의 단기 회복력에도 불구하고 장기적인 상황은 암울하다”며 “러시아는 훨씬 더 국내지향적으로 변하고 중국에 의존하게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바실리 아스트로브 빈국제경제연구소 연구원 역시 세계 에너지 시장에서 러시아의 협상력이 낮아진 점을 지적하며 “1~2년에 그칠 위기가 아니며 러시아 경제는 전혀 다른 궤적으로 향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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