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서울 강남 한복판에서 온 가족이 중학생 딸을 집단으로 폭행한 사건이 발생한 가운데 가족을 상대로 한 폭력 범죄가 해마다 3만여 건 넘게 발생한 것으로 확인됐다. 가족 범죄는 혈연관계라는 특수성이 작용해 외부에 알려지지 않은 이른바 ‘암수 범죄’가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되는 만큼 사건 발생 초기부터 공권력이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22일 경찰청의 ‘최근 5년 가족(동거 및 기타 친족 포함) 상대 범죄 현황’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발생한 폭력 범죄 사건은 3만 6244건에 달했다.
폭력 범죄 유형별로 보면 최근 강남 한복판에서 부모와 오빠가 맨발의 여중생을 때린 사건처럼 폭행이 2만 4157건으로 가장 많았다. 협박과 손괴, 상해가 각각 4679건, 4242건, 3111건으로 뒤를 이었다.
경찰 안팎에서는 폭행 범죄가 많은 이유로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을 경우 수사를 진행할 수 없는 ‘반의사불벌죄’를 꼽고 있다. 가정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2조에 따라 폭행, 존속 폭행, 협박, 존속 협박, 명예훼손 등이 반의사불벌죄에 해당한다.
경제적·사회적으로 긴밀하게 연계된 가족이라는 유대감 속에 폭행이 이뤄지는 만큼 피해자가 이를 범죄로 인식하지 못하거나 주변 지인의 압박과 회유에 시달리는 경우가 적지 않아 수사가 적시에 이뤄지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실제 강남 한복판에서 가족들에게 집단 폭행을 당한 여중생 역시 무자비한 폭행에도 ‘가족에 대한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고 관계 기관에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폭력 범죄가 지속적이고 반복적으로 이어질 경우 살인 및 강간 등 강력 범죄로 확대될 가능성이 커 초기 신고 단계부터 수사기관의 강력한 개입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행법에 따르면 신고를 받은 경찰은 현장에 출동해 임시 조치 등 피해자에 대한 보호 조치를 할 수 있다. 문제는 가해자가 경찰의 현장 조사에 비협조적으로 나올 경우 마땅한 대응책이 없다는 데 있다. 가정폭력방지법 22조는 현장 조사를 거부하는 등 업무 수행을 방해하는 가정 폭력 행위자에게 500만 원의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다고 규정할 뿐 강제수사에 대한 근거가 없는 상황이다. 반면 해외에서는 가정 폭력 사건에 대해 공권력의 개입을 폭넓게 인정하고 있다. 미국과 영국은 가해자의 거부로 현장 조사가 어려운 경우에도 그대로 철수하지 않고 위험성 여부를 측정한 후 강제 진입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두고 있다.
다만 공권력 개입 강화와 함께 피해자 보호에 대한 부분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도 많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경찰의 강력한 임시 조치 등으로 최근 여성의 살인 기수 피해율이 감소한 점을 볼 때 공권력 강화라는 정책 방향성은 옳다”면서도 “피해자를 보호하고 가족의 해체를 막기 위해 아동보호시설 확장 등 사법기관과 사회적 자원을 체계적으로 연결하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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