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법무법인(로펌)들간에 인재 확보를 위한 ‘총성없는 전쟁’이 한창이다. 변호사 ‘3만명 시대’에 따른 경쟁 심화로 전문성을 지닌 인력 확보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서울경제신문은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고 있는 국내 법률 시장에서 각 로펌의 선봉장으로 ‘인생 2막’을 시작한 이들을 만나 지금까지 삶과 앞으로 계획 등에 대해 들어본다.
“10여년 동안 판사 생활을 하면서 죄의 경중을 판단하는 것 만큼이나 방어권 보장이 중요하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법원에서 쌓은 경험과 전문성을 바탕으로 항상 의뢰인의 의견에 귀 기울이는 형사 전문 변호사로 자리매김하고 싶습니다.”
정다주(사법연수원 31기) 법무법인 광장 파트너변호사는 2일 서울경제와 만나 지난 2021년 변호인으로 새 출발하면서 언제나 되뇌이는 단어로 경청·능동성을 꼽았다. 정 변호사는 지난 16년간 판사로 활동해 왔다. 법원·법원행정처 등에서 쌓은 경험과 노하우, 전문성이 그가 변호사로 새출발하는 밑거름이 됐다. 여기에 의뢰인의 말에 귀 기울이고, 각 사건마다 능동적으로 대처해 승소라는 성적표를 기록 중이다. 그는 “법적인 지식과 경험을 의뢰인의 눈높이에서 각 사건에 능동적으로 움직여 최고의 결과물을 만들어내고 싶다"고 말했다. 실제로 정 변호사는 대규모 수입철강재 무단 유출에 따른 거액의 손해배상 사건에서 대기업 종합물류계열회사 A사를 대리해 승소 판결을 받았다. B사의 ‘보툴렉스주’에 대한 제조판매 중지 명령·품목허가 취소 처분에 대한 집행 정지를 결정을 이끌어 낸 것도 그다. 국내 상장회사 사상 최대 규모의 횡령사건으로 꼽히는 C사 사태에서도 회사측을 대리해 피의자 은닉재산을 찾도록 하는 등 피해회복도 꾀할 수 있도록 조력했다.
변호인의 길로 들어선지 2년 만에 ‘A+급’ 성과를 도출하고 있는 건 그가 걸어온 길과 관련이 깊다. 정 변호사가 법조계에 첫 발을 디딘 건 수원지법 판사로 임관한 지난 2005년으로 거슬로 올라간다. 당시만 해도 정 변호사는 하나의 사안을 두고 집중하는 성격에 죄가 되는지에 대해 끊임없이 고찰하는 판사가 ‘천직’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심의관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그가 지닌 또 다른 능력을 발견했다.
정 변호사는 “임관 이후 8년 동안 판사로 재직하다가 2013년 2월 처음으로 법원행정처로 자리를 옮겼다”며 “법원행정처에서 인사·정책, 대(對)국회 업무, 해외 사법교류 등까지 맡으면서 기획·집행 분야를 접하게 됐다”고 회상했다. 죄가 있는지 보고, 경중을 판단하는 자리에서 정책과 같은 아이디어를 내는 분야로 이동하면서 ‘스스로 뛰는’ 업무에 대한 매력을 느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특히 의뢰인을 대신해 방어권을 행사하고, 무죄를 입증하는 변호사 업무도 역동적이라는 측면에서 법원행정처 일과 유사하다고 느껴지면서 ‘인생 2막’의 시작점으로 변호사를 선택했다.
그는 “판사가 재판을 진행하지만, 의뢰인을 적극적으로 변호한다는 점에서 변호사의 역할도 중요하다”며 “(변호 논리를 만드는 등) 변호사가 도모하지 않으면 재판에서는 (기존 혐의가 확정될 뿐)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한 사람의 운명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만큼 올바른 판결을 내리려는 판사의 노력은 물론 피의자 방어권을 확보하려는 변호사의 역할도 중요하다는 의미다. 이는 그가 2010년께 부산지법 판사 재직 시절 내린 한 건설 노동자의 사기 혐의에 대한 판결을 잊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당시 사건의 쟁점은 건설공사 현장 소장으로 일하던 A씨가 받은 투자금에 대한 변제능력·의사가 있었는지였다. A씨는 ‘본인이 단순 현장소장이 아닌 실행소장으로 월급이 아닌 이익을 분배받기로 했다’고 주장했으나 그가 이해하기는 쉽지 않았다. 건설현장에서 쓰는 용어나 관행이 무엇인지 등 배경지식이 부족한 탓이었다. 게다가 재정적으로 어려웠던 A씨는 제대로 된 변호마저 받지 못했다. 정 변호사(당시 판사)는 재판 과정에서 틈틈이 건설 분야 관계자들에게 문의해 사업상 고용·도급 계약의 과정, 특성 등을 이해했고, ‘A씨가 단순 급여가 아닌 수익을 분배받아 변제하려는 의사가 있다’고 결론내렸다. 판사 스스로가 사건의 본질에 한 발 더 접근함으로써 A씨가 ‘죄가 없다’는 판단에 도달했다. 법원행정처에서 일하며 행정·기획 업무에 대한 전문성을 쌓았다면, 판사로 재직하면서 법리는 물론 판결의 중대성과 피의자 방어권의 중요성까지 동시에 배워 온 셈이었다.
정 변호사는 “대학 재학 시절부터 범죄 성립에 대한 체계적인 요건은 물론 인간 심리·행동에 대해 고민하는 형법에 관심이 높았다”며 “변호사로 제2의 인생을 시작한 현재도 기업 뿐 아니라 개인 형사사건 분야에 대해 주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제한된 자료 내에서 적극적 대처로 변론 전략을 수립, 억울한 상황에 처해있는 의뢰인에게 직접 도움을 줄 수 있어 변호사로서 큰 보람을 느끼고 있다는 게 그의 얘기다. 이는 정 변호사가 광장 공익활동위원회(공익활동위)에서 난민불인정처분 취소 소송과 장애인 사기피해자 고소 대리 등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배경이기도 하다. 광장은 지난 2007년 한승헌 고문변호사를 초대 위원장으로 공익활동위를 발족해 공익소송, 법률자문 제동 등 활동을 진행 중이다. 현재 기획, 난민소송, 열린문 청소년재단 법률지원, 북한이탈주민 법률지원, 이주노동자법률지원, 장애인 법률지원, 청소년 멘토사업, 유니세프 법률지원, 학교법인교육 등 총 9개의 전문팀이 활동하고 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