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에서 23일(현지 시간) 치러진 조기 총선에서 중도 우파 야당 국민당(PP)이 136석을 확보해 집권 사회노동당(PSOE)을 제치고 제1당으로 올라섰다. 하지만 당초 예상대로 여유 있는 승리를 거두지 못한 데다 극우 세력과 손을 잡는 경우에도 과반에 못 미치면서 연정 구성을 위한 협상이 불가피해졌다. 좌우 진영 모두 과반 득표에 실패한 채 각자의 승리를 주장하는 가운데 협상이 장기화할 경우 스페인의 정치·경제적 불확실성이 커질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된다.
스페인 내무부에 따르면 이날 개표 결과 기존 제1야당인 국민당은 하원 전체 의석 350석 중 136석으로 가장 많은 의석을 확보했다. 이어 여당인 중도 좌파 성향의 사회노동당(PSOE)이 122석을 차지했다. 극우 정당인 복스와 15개 좌파 정당이 연합한 수마르는 각각 33석, 31석을 가져갔다. 단독 정부를 구성하려면 과반 의석(176석)이 필요한데 모든 정당이 실패한 것은 물론 진영끼리 합치더라도 우파(국민당·복스)가 169석, 좌파(사회당·수마르)가 153석으로 이에 못 미쳤다. 결국 제1당 대표인 알베르토 누녜스 페이호 국민당 대표는 총리직에 오르기 위해 복스의 전적인 지지는 물론 소수 정당들을 설득해 최소 7명의 지지를 추가로 끌어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이에 새 정부가 꾸려지기까지 정당들 간에 치열한 협상이 벌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협상은 다음 달 17일 새 의회가 소집된 뒤 시작된다. 협상에는 시간 제약이 없지만 첫 총리 투표가 불발되고 2개월 이내로 과반을 확보한 후보가 나오지 않으면 의회를 해산하고 총선을 다시 치러야 한다. 이 경우 재선거 시기는 올해 말이나 내년 초가 될 예정이다.
당초 외신은 이번 총선에서 국민당의 압승까지는 어렵더라도 복스와 힘을 합쳐서라도 ‘정권 우향우’에 성공할 것으로 예상했다. 앞서 5월 지방선거에서 여당이 참패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막상 의회가 해산되고 조기 총선의 뚜껑을 열어보니 딱 떨어지는 승자가 나오지 않은 것이다. 일각에서는 이민 반대, 기후변화 부정, 성소수자 권리 탄압 등을 주장해 논란이 된 복스와의 연정 가능성을 시사한 점이 국민당에 되레 악재로 작용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이로써 이탈리아·프랑스·스웨덴 등 유럽에 불고 있는 우파 열풍이 스페인에서는 일단 멈췄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에 사회당을 이끄는 페드로 산체스 총리는 우파 연합이 패배했다며 “스페인이 퇴보하기보다 계속 전진하기를 바라는 국민들이 더 많다”고 주장했다. 로이터통신도 “(비등한) 개표 결과는 산체스가 퇴임 총리가 아닌 차기 정부에서 잠재적 경쟁자로 떠올랐음을 의미한다”며 “극우 정당이 50여 년 만에 스페인 정부에 들어갈 것이라던 전망도 누그러졌다”고 분석했다. 한편 페이호 국민당 대표는 “가장 많은 표를 얻은 당의 대표로서 선거 결과에 따라 나라를 통치할 수 있도록 대화를 주도하고 노력하겠다”며 지지율 1위라는 점을 강조했다.
협상의 난항이 정국 불안은 물론 경제적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로이터는 “장기화한 협상은 하반기 유럽연합(EU) 이사회 의장직을 맡은 스페인의 주의를 분산시키고 금융시장을 혼란스럽게 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 역시 “의회의 교착상태는 EU에서 네 번째로 큰 경제를 곤경에 빠뜨릴 것”이라고 평가했다. 실제 이날 스페인 증시는 개장 직후 1.6%의 하락세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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