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운드리 산업은 1987년 대만의 TSMC가 창업할 당시만 해도 상대적으로 부가가치가 낮았다. 반도체 생산 시설 없이 제품 설계만 하는 팹리스 산업의 부가가치가 높았으며 이들 팹리스 기업이 설계한 제품을 받아 위탁 생산하는 파운드리는 일종의 하청기업이었다. 적절한 반도체 공정 장비만 있으면 이들을 활용해 생산하는 것은 고난도의 기술은 아니었고 오히려 고성능의 공정 장비를 만드는 것이 더 어려웠다. 그래서 미국 기업들은 부가가치가 높은 팹리스와 공정 장비 기술에 집중했고 부가가치가 낮은 파운드리 산업은 TSMC 혹은 UMC 같은 대만 회사들에 넘겼다.
파운드리 산업의 중요성이 높아진 것은 공정 미세화에 따른 기술 난도의 증가 때문이다. 7나노 이하의 초미세 공정 개발에 성공한 회사는 TSMC·삼성전자·인텔뿐으로 이 회사들의 가치가 급격히 상승했다.
파운드리 산업의 강국이 대만이라면, 반도체 산업의 또 다른 축인 메모리 산업의 강국은 단연 우리나라다. 메모리반도체 산업도 파운드리 산업처럼 미국에서 처음 시작했지만 부가가치가 낮아짐에 따라 일본을 거쳐 우리나라로 넘어왔다. 원래 D램 반도체를 개발한 곳은 미국의 인텔이지만 1980년대 일본 기업들의 참여로 경쟁이 심해지자 부가가치가 높은 중앙처리장치(CPU)에 집중하기 위해 메모리를 포기했다. 파운드리 산업처럼 메모리 산업의 부가가치도 서서히 높아지고 있으며 이는 우리나라에 새로운 기회가 되고 있다.
올해 초 등장한 인공지능(AI) 챗GPT의 영향으로 반도체 산업은 또 한 번 발전의 기회를 맞고 있다. 특히 챗GPT용 AI 반도체인 그래픽처리장치(GPU)와 고대역폭메모리(HBM)가 각광받고 있다. 그런데 GPU를 생산하는 엔비디아의 수익은 크게 향상된 반면 HBM을 생산하는 국내 메모리 기업은 그렇지 못하다. 엔비디아가 HBM을 비교적 싼 값으로 구매한 후 이를 GPU와 결합해 비싸게 팔기 때문이다.
국내 기업들이 AI 시대에 메모리의 부가가치를 높이기 위해 새로운 프로세싱인메모리(PIM·Processing in Memory) 반도체를 개발하고 있다. PIM은 그 이름이 의미하듯 메모리반도체 안에 프로세싱, 즉 AI를 위한 연산 기능을 포함한다. 이 새로운 반도체는 메모리와 GPU 간의 데이터 이동을 줄여 전력 소모 및 시간 지연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어 GPU보다 AI에 훨씬 효과적일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PIM 반도체 상용화 연구는 특히 우리나라에서 활발하다. PIM이 상용화되면 우리나라가 혜택을 가장 많이 받을 수 있다. 현재 반도체 기술 전쟁의 중심은 파운드리 산업이고 가장 중요한 무기는 공정 미세화 기술이지만 PIM이 상용화되면 주요 전장이 메모리로 바뀌고 우리나라가 주도권을 쥘 수 있다. 아직 일반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한국이 준비 중인 강력한 무기인 PIM 반도체가 상용화돼 우리 반도체 산업이 한 단계 더 도약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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