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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불거지는 ‘육사 이전’…이념 논쟁으로 ‘불신’ 자초[이현호 기자의 밀리터리!톡]

육사, 독립군 흉상 이전 추진에 거센 역풍

이념 논쟁 자초로 ‘사관학교 정체성’ 훼손

육사 주류 국방부와 선긋기 거리 둔 해군

여당 일각에서도 ‘이념 과잉’ 비판도 제기

지난 3월 3일 서울 노원구 육군사관학교에서 ‘2023 육사 79기 졸업 및 임관식’이 거행되고 있다. 사진 제공=육군




국방부가 육군사관학교 교내에 설치된 독립군 흉상 철거·이전을 추진하려다 거센 역풍을 직면했다.

광복회는 공개 서한을 보내 이종섭 국방부 장관 퇴진을 요구하며 강력 반발하고, 야당도 “우리 군과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반역사적·반헌법적 처사”라고 비판하고 나섰다. 여권 일각에서도 ‘이념 과잉’ 비판이 나오며 파장이 커지면서 긁어 부스럼 격으로 ‘육사 이전론’이 재점화 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다시 불거진 육사 이전론은 육사가 이념 논쟁을 자초하며 불신을 키운 데서 비롯한다.

지난 24일 독립운동가 기념 단체들이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육사가 독립전쟁의 영웅 흉상을 철거해 독립기념관으로 옮겨 전시 또는 보관이 가능한지 검토 요청을 했다”고 밝혔다. 단체들은 육사가 국민적 공감이 필요한 일인데 특정 세력의 견해나 시각으로 일반적으로 밀어붙이며 이념 논쟁에 불을 지폈다고 지적했다.

언론이 잇따라 보도하며 논란이 확산되자, 육군사관학교는 25일 “군의 역사와 전통을 기념하는 교내 다수의 기념물에 대해 재정비 사업을 추진 중”이라며 “그중에서 생도들이 학습하는 건물 중앙현관 앞에 2018년 설치된 독립군?광복군 영웅 흉상은 위치의 적절성, 국난극복의 역사가 특정 시기에 국한되는 문제 등에 대한 논란이 있어 다수 국민들이 공감할 수 있는 곳으로 이전하기 위해 최적의 장소를 검토 중에 있다”고 밝혔다.

공산주의 경력,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 검토


주무부처 수장인 이종섭 국방부 장관이 흉상 이전 검토를 확인하면서 불을 지폈다. 이 장관은 같은 날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흉상을 철거하는 이유에 대해 “북한을 대상으로 전쟁 억제를 하고 전시에 필요한 인력을 양성하는 곳에서 공산주의 경력이 있는 사람이 있어야 하느냐는 문제가 제기됐다”고 답했다. 육사는 국가보훈부에 협조를 요청해 독립기념관에 흉상 보관 및 전시 의사를 타진했다. 대신 일제 만주군 출신 백선엽 장군 흉상 설치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28일엔 국방부까지 공산주의 활동 경력을 이유로 청사 앞에 있는 홍범도 장군의 흉상 이전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혀 이념 논쟁에 중심에 섰다. 전하규 국방부 대변인은 이날 정례 브리핑에서 이전 배경에 “(역시)홍범도 장군과 관련돼서 지난해부터 공산당 입당 또는 그와 관련된 활동이 지적되고 있다”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지난 3월 3일 서울 노원구 육군사관학교에서 열린 ‘2023 육사 79기 졸업 및 임관식’에서 이종섭 국방부 장관이 축사를 하고 있다. 사진 제공=육군


홍범도 흉상 이전 불똥은 실전에 배치돼 작전 수행 중인 해군의 1800t급 잠수함 ‘홍범도함’으로 번졌다.

전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육사에서 홍범도 장군 흉상을 철거하면 잠수함 홍범도함 이름을 바꾸느냐’는 질문에 “검토를 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면 검토한다”며 “(홍범도함 이름 변경이) 검토할 사안이나, 결정된 바 없다”고 말했다.

눈에 띄는 대목은 해군이 즉각 반발하며 시각차를 보였다는 것이다.

브리핑에 배석한 장도영 해군 서울공보팀장(중령)은 브리핑 중간에 다른 발언을 했다. 장 팀장은 “(홍범도함) 이름 변경을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했다. 공개 브리핑에서 해군이 국방부 대변인의 설명과 어긋나는 주장을 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장면이다. 정례 브리핑 전에 국방부가 합동참모본부, 육해공군, 해병대 등과 답변 내용, 메시지를 사전 조율하기에 이런 엇박자가 나지 않는다.

일부에서는 육사 출신이 주류인 국방부가 지핀 이념 논쟁과 관련해, 해사 출신이 주류인 해군이 자칫하면 휘말릴 수 있을 우려를 사전에 차단하려는 것이 아니냐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해군, 즉각 반발 국방부와 시각차 드러내


해군 입장에선 기존처럼 국방부 대변인 설명만 듣고 침묵할 수 없는 사안으로 봤기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우선 해군 입장에서는 홍범도함 명침 변경 논의는 고유 권한인데 이를 침해당했다고 인식할 수 있다. 군함의 이름 짓기는 해군 고유의 권한이다. 해군 규정인 ‘부대명칭 개정 규정’에 따라 고속정급 이상의 함정은 해군본부 전력기획참모부장(소장)이 함정 확보 단계에서부터 함명 및 선체번호 제정안을 작성하고, 함명제정위원회와 해군 참모총장의 승인을 받아 진수 한 달 전 결정한 후 진수식 때 선포한다.

해군이 곤혹스러운 또 하나의 이유는 공교롭게 육사에서 흉상 철거 논란이 벌어진 독립전쟁 영웅 5명 가운데 손원일급 잠수함 이름에 3명(김좌진·이범석·홍범도)이 들어가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함명 제정 기준과 절차는 있지만 폐기, 변경 절차도 없다. 함명 변경 절차는 탓에 국군 창군 이래 군함 이름을 바꿀 일이 전혀 없다

손원일급 잠수함 함번 SS-079 ‘홍범도함’ 모습. 사진 제공=방위사업청


더불어민주당 등 야권에선 육사 내 흉상을 ‘국군의 뿌리’를 광복군 대신 친일 경력이 있는 백선엽 장군으로 바꾸려는 배경엔 다른 정치적 의도가 있을 수 있다고 경계하고 있다. 독립전쟁 영웅 5인 흉상 철거·이전 시도가 ‘문재인 정부 지우기’를 위한 행보의 연장선이라는 지적이다.

여천홍범도장군기념사업회·우당이회영기념사업회·신흥무관학교기념사업회·백야김좌진장군기념사업회는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문재인 정부 지우기를 하려다가 우리 국군의 정통성을 뿌리째 뒤흔드는 교각살우의 우를 범하지 말라”며 “반헌법적 발상으로 독립전쟁의 역사를 훼손하려는 만행의 진상을 밝히고 국민께 사과하라”고 촉구하며 날을 세웠다.

‘문재인 정부 지우기’ 위한 행보 연장선




백 장군은 한국전쟁 당시 국군 1사단장으로서 다부동전투에서 북한군을 격멸하는 등 전과(戰果)를 거뒀지만 일제강점기 항일투사들을 체포·약탈·고문한 간도특설대에서 복무한 사실이 알려지며 친일 행적이 드러났다. 백 장군도 회고록 ‘간도 특설대의 비밀’을 통해 “동포에게 총을 겨눈 것이 사실이었고 비판을 받더라도 어쩔 수 없다”라고 소회했다.

이들 단체들이 의심의 눈초리를 거둘 수 없는 이유에 대해 육사 출신 3성 장군인 국민의힘 신원식 의원의 발언을 꼬집었다. 신원식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해 10월 “6.25 전쟁사나 북한학 등이 육사 교과과정의 필수과목에서 선택과목으로 변경하는 지시를 내릴 수 있는 건 문재인 전 대통령”이라며 홍범도 장군 흉상 설치를 문제 삼기도 했다. 당시 그는 "공산주의자 간첩 신영복을 존경하고, 6·25 남침 주역인 김원봉을 국군의 뿌리라 하고 홍범도 흉상을 육사에 걸라고 하는 등 문 전 대통령이 국군을 어떻게 만들고자 했는지 다 드러났다”라고 질타했다.

지난 3월 3일 서울 노원구 육군사관학교에서 열린 ‘2023 육사 79기 졸업 및 임관식’에서 신임 장교들이 모자를 던지면 환호하고 있다. 사진 제공=육사


국방부가 제시한 흉상 철거 결정의 배경이 홍범도 장군의 공산당 가입 전력 때문이라는 것은 사실이다.

홍범도 장군은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활동하던 1927년 소련 공산당(볼셰비키당)에 가입했다. 또 홍범도 장군은 소련 공산당 군정의회를 중심으로 하는 독립군 통합을 지지했고, 소련 공산당의 자유시 참변재판에 재판위원으로 활동했다. 1921년 자유시 참변 발생 후 이르쿠츠크로 이동해 소련 적군 제5군단 소속 ‘조선여단’ 제1대대장으로 임명 등의 역사적 사실도 있다.

육사가 명분이 절대 틀린 것은 아니다. 숭고한 국가 희생 정신을 교육하고 미래의 국가 동냥을 키우는 사관학교 입장에서는 생도들의 모범이 될 인물이 논란과 흠집이 없기를 바라는 것은 당연하다.

다만 홍범도 장군은 소련 공산당으로부터도 사실상 버림받아 1937년 스탈린의 연해주 조선인 이주 정책으로 카자흐스탄으로 강제 이주됐고 1943년 사망할 때까지 극장지기를 했다. 따라서 대한민국 건국을 부정하거나 북한 공산당 정권 수립이나 6·25 전쟁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점이다.

홍범도 장군, 1927년 소련 공산당 가입


문제는 육사가 정치권에 이념 논쟁 빌미를 제공해 사관학교의 신뢰를 스스로 자초했다는 대목이다. 지금 문제의 흉상을 세운 것도 육사 스스로의 결정이었다. 육사는 이로써 자신의 뿌리가 독립군과 광복군 산실인 신흥무관학교(1919년 정식 개교)에 있음을 확인하며 신선한 충격을 줬다. 그런데 정권이 교체되면서 이를 손바닥 뒤집듯 바꾸려 하기 때문에 비난을 화살이 쏟아지는 것이다.

이 때문에 야권이 정부가 육사 출신이 주류인 국방부를 앞세워 영웅 5인의 흉상 철거를 통해 색깔론으로 부각해 지지층을 결집하려는 선동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을 제기한다.

여당 일각에서 조차 ‘이념 과잉’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홍 장군 흉상 철거 계획에 대해 “반역사다. 매카시즘으로 오해받는다”고 지적했다. 유승민 전 국민의힘 의원도 SNS에서 “윤석열 정권의 이념 과잉이 도를 넘고 있다”며 “친일매국에 대해서는 눈감고 종북·좌익에 대해서는 일제시대 이력까지 끄집어내 매도한다면 이것이야말로 이념편향이고 이념과잉”이라고 비난했다.

이준석 전 대표 역시 페이스북에서 “그렇게(흉상 철거) 할 거면 홍범도 장군에 대한 박정희 대통령이 1963년에 추서한 건국훈장을 폐지하고 하는 게 맞지 않겠나”라고 지적했고, 김웅 의원 역시 SNS를 통해 “독립운동에 좌우가 따로 있는가. 좌익에 가담했던 박정희 전 대통령의 업적도 지워야 하는가”라고 따져 물었다.

지난 3월 3일 서울 노원구 육군사관학교에서 열린 ‘2023 육사 79기 졸업 및 임관식’에서 이종섭 국방부 장관이 신임 장교에게 축하 인사를 하고 있다. 사진 제공=육사


이처럼 육사가 이념 논쟁의 빌미를 제공하며 스스로의 정체성을 훼손했다는 탓에 육사 이전론이 다시 제기되고 있다.

국방부와 육군의 반대 논리는 상징적 의미가 큰 ‘성지론’이다. 이는 최근 육사의 독립군 흉상 이전 움직임과도 맥락이 닿아있다. 국방부는 “자유민주주의와 대한민국 수호를 위한 장교 양성이라는 육군사관학교의 정체성과 사관생도 교육에 최적화된 교육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분명한 점은 육군사관학교 초대부터 13대까지 육사를 이끌었던 학교장 모두 친일 행적 논란이 일고 있다는 사실이다. 성지론이 억지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이 때문에 육사 40기인 이종섭 장관이 주도하는 국방부와 육사 출신이 주류인 육군 측이 ‘국군의 뿌리로 군의 성지라고 주장하는 육사’를 차라리 광복군과 독립군 영웅을 모신 독립기념관과 육군본부가 있는 계룡대가 있는 충남으로 옮겨야 한다는 주장이 거세지고 있다. 문재인 정부 시절 부동산 급등과 함께 높아가는 육사 이전 압력을 누그러뜨린 데에 육사의 뿌리가 독립군과 광복군 산실인 신흥무관학교(1919년 정식 개교)에 있음을 확인하며 파격적 변신으로 육사 이전론을 잠재웠다는 점을 부인하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육사 이전, 윤석열 대통령 지역공약 사항


일각에선 6·25전쟁 이전 독립운동 과정에서의 좌익활동을 문제 삼는 건 지나치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 정부 들어 독립운동가·호국영웅을 재평가하면서 친일 행적은 가볍게 보고 반공 행적은 무겁게 강조하는 등 편의적·선택적 역사 해석을 하고 있다는 주장인데, 논란은 육사가 이런 행보에 동참하며 스스로 사관학교의 상징성을 훼손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게다가 육사 이전는 윤석열 대통령의 지역공약 사항이자, 지난해 지방선거에서도 공약으로 재등장했다. 반드시 지켜야 하는 국민과의 약속이다.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캐스팅보터로서의 충청 민심과도 맞물려 이전론이 다시 불붙을 개연성이 높다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육사 출신 한 예비역 장성은 “사관학교가 왜 이념 논쟁의 한복판으로 뛰어드는지 모르겠다”며 “국방부 지휘부의 암묵적 동의가 있을 것으로 보이지만, (육사가) 이전론을 잠재우며 한숨 돌리고 나니까 저러는 거 아니냐고 지적해도 할 말이 없게 됐다”고 한탄했다.

뜬금없이 최근 흉상 논란을 자초하며 한동안 잠잠했던 육사 이전 문제에 대한 국민적 시선을 육사 스스로 다시 불러 모으는 계기를 만든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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