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법률 시장에서 오랜 기간 쌓은 경험·노하우를 바탕으로 고객에게 ‘항상 최선을 다하는 변호사’로 기억되고 싶습니다.”
서울시 종로구 법무법인 태평양에서 만난 김종세 외국변호사(미국 텍사스·일리노이주)는 법률 서비스 업무의 초점이 ‘고객’에 있다고 강조했다. 국내외 최상의 법률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자부하더라도 고객이 만족하지 못하면 ‘낙제점을 줄 수 밖에 없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만큼 ‘고객에 의한, 고객을 위한, 고객의 시각’에서 맞춤형 법률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에서 태어나 자란 김 변호사가 고객 중심의 법률 서비스를 자신하는 데는 그가 걸어온 이른바 ‘도전의 시간’이 자리하고 있다. 김 변호사는 미국 시카고 대학에서 경제·물리·인류학을 복수 전공했다. ‘여러 분야를 두루 공부하고 싶다’는 그의 의지였다.
김 변호사는 “대학 졸업 후 사회에 첫 발을 내디딘 곳은 미국 증권 시장었는데 나스닥에서 4년 동안 ‘주식거래자’로 근무했다"며 “기업 가치·주가 등을 분석해 기업과 개인 등 고객 자산으로 주식을 매수·도하는 주요 업무이자, 증시에 대해 자세히 알게 되는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의 마음 한 켠에는 ‘법을 공부하고 싶다’는 새싹이 돋아났다. ‘한 분야에 국한되지 않고, 모든 부분을 아우르는 법을 제대로 알고 싶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이는 미국 하버드 로스쿨 입학이라는 ‘줄기’로 자라났고, 김 변호사가 2010년 졸업과 동시에 미국 코네티컷 주 대법원 사법보좌관으로 1년 동안 일하게 되는 주춧돌이 됐다. 또 2011년 그가 미국 일리노이주에서 변호사 자격증을 획득하는 결실로 이어졌다.
김 변호사는 “로스쿨 졸업 후 주 대법원·법원에서 취업 제안을 받았다”면서 “이 가운데 주 대법원 사법보좌관을 선택해 1년 동안 근무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동안 공부한 학문과 현장에서 배운 경험을 학생들에게 가르치기 위해 교단에 몸담게 됐다”며 “통상 로펌이나 법원 등 한 곳에서 근무하는 미국 법률시장에서도 본인이 걸어온 길은 흔치 않은 사례”고 덧붙였다. 주 대법원 근무 완료·변호사 자격증 획득과 동시에 워싱턴 대학교 세인트 트루이스 법대(2011~2013년)에서 범죄학 등을 가르치며 교육자라는 새 영역에 출사표를 던진 셈이었다. 이후 콘코디아 대학교 법대 교수(2013~2016년)로 3년 동안 교편을 잡았다. 특히 6년 만에 미국 현지 로펌에서 새 둥지를 틀면서 로스쿨·주 대법원·대학에 이른 4번째 도전을 이어갔다. 김 변호사가 미국 벡 레든(Beck Redden LLP, 2017~2018년)·그린버그 트라우리그(Greenberg Traurig LLP, 2018~2023년)에서 상사·주주권 분쟁, 계약, 규제, 에너지 등 분야를 담당했다. 그가 미국 현지 호텔 건설 관련 분쟁 당시 기계·배관 등 하청업체(고객)를 대리해 승소를 이끌어낸 것도 이 때다. 당시 호텔 시공회사 측은 ‘공사 지연 문제가 하청업체에 있다’고 주장했다. 김 변호사는 해당 논리에 전문가 진술 등 증인 심문으로 방어했고, 결국 하청업체가 시공사로부터 배상금을 받을 수 있는 길을 열었다. 또 이른바 ‘중국 산업 스파이’로 의심을 받아 미국 연방수사국(FBI)로부터 수사를 받았던 아시아계 미국인 과학자도 변호해 사실이 아니라는 점을 입증했다.
김 변호사는 지난 9월 법무법인 태평양에 합류하는 등 한국행(行)을 택하면서 5번째 도전을 진행 중이다. 그가 한국 대표 로펌 가운데 하나인 태평양에서 새 출발을 하는 이유는 두 가지다. 김 변호사는 “우선 종합 법률 서비스를 제공하는 태평양에서 모든 법적 문제의 해결 과정과 함께 역동적 성장을 이어가는 한국의 경제를 경험해볼 수 있다"며 “아울러 9살 아들을 한국에서 키우고 싶다는 열망도 한국행의 요인 가운데 하나”라고 설명했다. 여기에 한국인 2세로 부모로부터 한국인 정서를 배워 온 김 변호사가 미국 법률 등 폭넓은 지식을 지니고 있는 강점도 한국행을 이끈 배경으로 꼽히고 있다. 이는 한국인 정서·미국에서 쌓은 지식·노하우·경험을 지닌 그가 국내 법률시장에서 각종 사건을 맡을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