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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참여 사업은 물가연동 안돼…사업장 41곳 9000억 떠안을 판

◆공공주택 사업 '빨간불'

착공전 2~3년 뛴 공사비 미반영

사업장마다 비용 20% 더 소요

중소건설 자금난에 부도위기 엄습

정부, 뒤늦게 사업비증액 지침 개정

이달 민관 PF 조정위 열렸지만

LH 등 "강제조항 아니다" 강경





민간 참여 공공주택사업은 공공과 민간이 공동 협의체를 구성해 공공기관은 토지를 제공하고 민간사업자는 주택을 건설·분양하는 사업이다. 그러나 국가계약법 시행령에 따라 계약금액을 조정할 수 있는 ‘단품슬라이딩제도’가 마련돼 있는 관급공사와 달리 민간 참여 사업은 공공주택특별법에 따라 물가 연동 조항을 적용받지 못하게 돼 있다. 이에 따라 LH 등 공공기관 발주처들은 ‘사업협약에 물가 연동 조항이 없어 공사비 증액을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업계는 공사비 상승에 따른 민간 건설사들의 손실액이 사업장 한 곳당 적게는 78억 원, 많게는 865억 원 수준으로 현재 파악된 것만 41곳, 약 9000억 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도급 순위 20위권 내 대형 건설사 4곳이 컨소시엄으로 수주한 대전의 한 한국토지주택공사(LH) 공공주택 사업장은 지난해 10월 착공해 공사를 한창 진행하고 있지만 공사비가 가파르게 올라 준공 때까지 약 700억 원의 적자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 경기지역 건설사 두 곳이 포함된 또 다른 컨소시엄은 성남시 소재의 LH 공공주택 사업장 착공을 내년 초 시작하려고 했으나 300억 원가량의 공사비 증액 협상이 이뤄지지 않아 절차를 진행하지 못하고 있다. 부산과 대전 지역의 LH 공공주택 사업장도 당초 다음 달 착공 계획이었지만 같은 이유로 연기될 가능성이 큰 상태다. 이들 모두 사업장마다 20~24%가량 공사비가 더 소요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더 문제는 이 같은 민간 참여 사업에 뛰어든 중소건설사들이 많다는 점이다. 민간 참여 사업은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입찰 조건으로 영세한 지역 건설사들을 컨소시엄에 포함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어렵게 딴 공공사업이 수익은커녕 적자만 불어나면서 재무 악화의 큰 축이 돼버린 셈이다.

실제로 대전지역 건설사인 지산종합건설은 대전도시공사로부터 2020년 사업비 700억 원 규모의 신탄진·낭월 드림타운(청년주택) 사업을 수주해 공사를 진행하고 있었으나 물가와 인건비 상승 부담을 이기지 못하고 올 9월 대전지방법원에 회생을 신청했다. 이미 부도가 발생한 국원건설과 우석건설, 대우조선해양건설도 검단신도시 AA10-1블록과 인천영종 A40블록, 고양지축 B1블록 등 민간 참여 사업에 참여하고 있었다. 이들과 같이 컨소시엄에 참여한 다른 건설사 관계자는 “공사가 진행되면서 매일매일 현금이 나가는데 재무구조가 취약한 중소건설사들은 사비 증가에 따른 자금난으로 연쇄 부도 우려가 커지고 있다”며 “한 곳에 부도가 발생하면 그 건설사가 가지고 있던 지분을 나머지 공동 도급사(컨소시엄 참여자)들이 나눠 인수해야 해 부담이 전이된다”고 토로했다. 적자가 뻔히 예상되는 사업 지분을 더 떠안아야 하는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당분간 민간 참여 사업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건설사들도 속속 나오고 있다. 지난달 LH가 공모한 화성동탄2 C-14블록 및 남양주왕숙 A-16블록 통합형 민간 참여 공공주택사업에는 DL이앤씨 컨소시엄 한 곳만 사업신청확약서를 접수해 유찰됐다. 현재 전국 8곳에서 LH 공공주택 사업을 주관하고 있는 한 건설사 관계자는 “그나마 LH는 분양 수익이 나면 지분에 따라 배분하는 구조지만 지방도시공사가 발주한 사업은 단순 도급계약이라 바늘 틈만큼도 돈이 더 나올 여력이 없다”며 “앞으로는 민간 참여 사업 수주를 하고 싶어도 못하는 곳들이 태반일 것”이라고 전했다.



정부도 이 같은 상황을 인지하고 민간이 참여하는 공공주택사업에 대해 급격한 물가 변동 발생 시 사업비 증액이 가능하도록 관련 시행지침을 개정하고 민관합동 PF 조정위원회를 10년 만에 재가동시키는 등 대책을 마련하고 있지만 실효성이 얼마나 있을지 미지수다.

국토부는 이미 올 3월 ‘민간 참여 공공주택사업 시행지침’에 사업비 재협의 절차를 신설하고 △협약체결 시 예상치 못한 물가 변동 등이 발생할 경우 사업 참여자들은 사업비를 조정할 수 있다 △아직 사업이 완료되지 않은 기존 사업장에 대해서도 협약 체결 이후 발생한 급격한 물가 변동에 대해 민간이 공공시행자에 사업비 증액을 요청할 수 있다는 내용을 추가했다.

그러나 11월 현재까지 건설사들의 요청을 받아들여 공사비 재협의에 나선 사업장은 단 한 곳도 없다. 국토부 지침이 반드시 공사비를 올려줘야 한다는 ‘강제 조항’이 아닌 ‘임의 규정’으로 해석된다는 이유에서다.

LH는 8월 말 받아든 감사원의 사전 컨설팅 결과를 토대로 지역본부가 독자적으로 판단해 민간사업자와 중재 합의하고 불발 시 법원에서 분쟁을 해결하도록 최근 방향을 정했다. LH는 국토부 지침을 자의적으로 해석해 공사비를 조정할 경우 배임 소지가 있다고 판단하고 올 6월 민간 참여 사업의 공사비 증액 여부와 관련해 감사원에 사전 컨설팅을 의뢰한 바 있다. 사전 컨설팅에는 △계약서상 물가 연동 배제 조항에 따라 손실 위험은 민간사업자가 부담 △불가피한 사정 등으로 당사자 간 합의에 의한 조정은 가능 △합의 불발 시 법원의 판결 또는 대한상사중재원의 중재로 해결 등 내용이 담겼다.

국토부가 이달부터 본격적으로 가동한 민관참여 PF 조정위에도 15건 안팎의 LH 사업장이 접수됐다. 이달 2일 열린 1차 실무위원회에서 건설사들은 “민간 참여 공공주택사업 시행지침에 따라 사업비를 재협의할 여지가 있다”며 분쟁 중재를 희망했으나 LH는 “조정할 사업비가 적지 않은 만큼 소송으로 해결하겠다”는 강경한 입장을 취한 것으로 전해졌다. 국토부 관계자는 “LH 사업장 접수가 많아 당초 대한상사중재원을 통한 조정을 요청했는데 양 측의 입장 차가 커 PF조정위에서 다루기로 했다”며 “소송으로 격화되면 시간과 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 자금 회수가 시급한 건설사들에 치명적”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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